▲ 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분명 대보름 음식을 한가득 챙겨주셨을 것이다(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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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나물들만의 시원한 맛을 알기에는 내 입맛은 아직 어렸다. 오곡밥이 차려지는 대보름 날에는 먹는 시늉만 하고, 햄이나 계란 같은 다른 반찬을 주문하곤 했다.
그러다 내 결혼 반년을 앞두고 엄마가 돌아가셨다.
그 시절 나의 허기와 마음의 공허를 같이 달래준 것은 다름 아닌 집밥이었다. 엄마 없이 식을 치르고, 살림이란 것을 하게 된 나는 엄마의 그리움을 집밥으로 달랬다.
한 번도 살림을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는 나는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미각에 의존해 엄마 레시피를 재현해 냈다. 나의 감각을 총동원해 말이다. 내게 집밥은 그런 의미다.
대보름 오곡밥은 그래서 조금 더 특별하다.
둥근달이 뜨는 환한 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자줏빛 오곡밥과 들기름 내 풍기는 묵은 나물들은 엄마와 살아온 31년이라는 횟수만큼 받았을 밥상이다.
내겐 그리움으로 남겨진 추억의 밥상이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도 해마다 이맘때는 내가 차려준 찰밥을 떠올릴 것이다.

▲2025년 정월대보름 오곡밥 내가 차린 15번째 정월대보름 식탁이다
구혜은
새벽 수영을 다녀서 오전엔 나물과 팥을 불려뒀고, 오후엔 큰 아이 치료에 전념했다. 전날저녁 갑자기 아이 전신에 올라온 두드러기 때문이다.
치료받느라 하루 종일 굶은 아이는 난생처음 오곡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곤드레 나물도 취나물도 너무나 맛있다며 한 입 먹자마자 '엄지 척'을 해준다. 호박고지에서는 치즈 맛이 난다나?
처음엔 피자 시켜 달라던 둘째가 맛있게 먹는 누나를 보더니 어느새 쪼르르 와 식탁 자리에 앉는다. 뾰로통했던 입을 거두고 한 수저 떠 찰밥을 맛본다.
"어, 생각보다 맛있네!"
곤드레 나물이며 취나물도 제법 잘 먹는다. 반찬을 몇 수저 먹더니, 둘째도 맛있게 찰밥을 먹기 시작했다.
"엄마, 나 계란프라이 하나만 해주면 안 될까?"
그래, 생각해보면 나도 어렸을 땐 오곡밥 먹을 때면 프라이나 햄을 구워달라고 했었어. 처음이었다. 두 아이가 다 이렇게 맛있게 대보름 음식을 즐기기는 말이다.
늦게 귀가한 남편에게도 대보름 날, 오곡밥과 나물은 먹어야 한다며 억지로 한 수저 떠먹여 주었다.

▲2025년 정월대보름 보름달 정월대보름에 보는 보름달은 여느날 보다 특별해 보인다. 소원을 빌어야지
구혜은
"얘들아, 우리 보름달에 소원 빌어야지. "
집 베란다 창문을 여니 머리 위로 달빛이 쏟아진다. 올 한 해 우리 가족 모두 무탈하고 건강하기를, 아이들과 남편에게 조금 더 친절하기를,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조금 더 여물어 결실을 맺기를.
그렇게 나는 욕심쟁이처럼 세 가지나 빌었다. 아이들은 뭐라고 소원을 빌었을까?
정월대보름, 보름달이 왜인지 유난히 더 둥글고 환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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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엄마 그리운 대보름, 나도 이렇게 기억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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