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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입법기구=긴급재정명령? 김용현 거드는 윤석열의 '사상누각'

[윤석열 진술 분석 ②] 하루이틀 경고성 계엄인데, 예산을 편성하라니

등록 2025.02.14 17:16수정 2025.02.1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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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많은 말을 했다. 핵심 내용을 설명하면서 그 주변 상황을 상세하게 묘사한다는 게 윤 대통령 진술의 특징이다. 자기 진술의 신빙성을 높이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변론이 거듭될수록 '그럴듯한 거짓말'일 정황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기자말]
지난 1월 23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에서 뜨거운 쟁점 중 하나는 바로 12.3 비상계엄 선포 직전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이 받은 쪽지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느냐였다.

이 쪽지에 나온 '국가비상입법기구'가 전두환 시절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국보위는 전두환 신군부가 1980년 5.17 내란을 일으키면서 설치한 임시 행정 기구이다. 전두환이 대통령직을 차지한 뒤에는 국가보위입법회의로 개편되면서 입법권을 갖게 됐다.

따라서 12.3 비상계엄 선포 뒤 국회를 대체할 국가비상입법기구를 만들려고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윤 대통령의 헌정문란 의도를 뒷받침하는 것이라 탄핵심판의 핵심 쟁점이 될 수밖에 없는 사안.

 구속 중인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이 지난 1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구속 중인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이 지난 1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헌법재판소 화면 캡춰

이날의 증인 김용현 전 장관은 이 쪽지를 자신이 직접 작성했다면서 국보위처럼 국회를 대체하는 입법 기구가 아니라고 증언했다. 김 전 장관은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말하는 것이라고 증언했다. 김 전 장관은 "이번 기회에 기재부에다가 긴급재정입법권을 해서, 입법권을 수행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가지고…"라고 말했다.

긴급재정경제명령은 헌법 76조에 다음과 같이 규정돼 있다.

"대통령은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있어서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하여 최소한으로 필요한 재정·경제상의 처분을 하거나 이에 관하여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

대통령이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내린 예로는 1993년 8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낸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명령' 즉 금융실명제 실시가 있다. 김 전 장관은 긴급재정경제명령을 통해 어떤 정책을 하려고 했느냐는 국회 측 대리인의 질문에 구체적인 답을 내놓지 못했다.


긴급재정경제명령 또한 국회가 열리지 않는 상황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국보위 같은 것은 아니라 해도 '국회 무력화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반론이 가능하다. 국회 측 대리인과 재판부도 이같은 의문을 표했다.

쪽지 작성 관여 안 했다는 윤석열 "대수비에서 얘기한 걸 들은 것 같아"


김용현 전 장관 직접심문하는 윤석열 대통령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출석해, 증인으로 출석한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을 상대로 직접 심문하고 있다.
▲김용현 전 장관 직접심문하는 윤석열 대통령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출석해, 증인으로 출석한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을 상대로 직접 심문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화면 캡춰

윤 대통령이 김 전 장관을 거들고 나섰다. 윤 대통령은 "아마 제가 민생 입법을 방해하는 거기에 대해서 비상재정경제명령, 긴급재정경제명령 같은 거를 제가 대수비(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얘기를 하고 장관도 아마 들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선제적으로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했을 때 만약에 거대 야당이 반대를 해서 불승인을 하게 되면 또 이게 전부 사상누각이 되는데 이런 계엄 같은 거를 하는 상황에 국민들의 여론이라든가 이런 게 좀 바뀐다면 이런 걸 한번 검토해 볼 수 있지 않나, 저도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는 몰랐는데 오늘 얘기하는 거를 보니 그런 거는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사상누각이라는 말은 '모래 위에 지은 집'이란 뜻으로, 부실한 건축물뿐 아니라 사상이나 논리가 탄탄하지 않을 때에도 비유적으로 쓴다. 윤 대통령이 '사상누각'을 언급한 것은 긴급재정경제명령이 가진 한계 때문으로 보인다.

긴급재정경제명령은 국회 승인 없이 발령할 수 있지만, 국회의 사후 승인을 얻지 못하면 그 명령은 효력이 정지된다고 헌법에 규정돼 있다.

'국가비상 입법기구는 긴급재정경제명령 준비 조직이다'라는 김 전 장관의 증언을 사실로 인정한다고 해도, 국회의 승인이 없다면 물거품이 될 조치를 하기 위해 준비하라고 쪽지를 준 셈이다. 다시 쪽지로 돌아가, 쓰여 있는 문장을 보자.

"국가비상 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할 것"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내리는 데에 별도의 예산이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명령은 기존 정부 부처가 준비하면 되고, 별도의 조직을 만들 필요도, 예산을 크게 들일 일도 없다. 왜 굳이 "관련 예산을 편성할 것"이라는 쪽지를, 그것도 비상계엄을 하는 긴박한 와중에 기재부장관에게 주었을까?

 최상목 당시 경제부총리가 비상계엄 당일 윤 대통령에게 받았다는 쪽지.
최상목 당시 경제부총리가 비상계엄 당일 윤 대통령에게 받았다는 쪽지. MBC화면캡처

예산 편성에도 시간은 걸린다. 따라서 예산을 편성하라는 것 자체가 하루이틀 일회성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상당한 규모의 인력을 들여 상당한 기간 동안 추진하는 일이라는 얘기가 된다. 국보위든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이든, 예산을 편성한다는 것은 상당 기간 국회가 작동하지 않을 것을 전제한 것이다.

가장 큰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은 이 쪽지 작성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윤 대통령이 김 전 장관을 거들고 나선 일이다. 김 전 장관이 직접 타이핑했고 윤 대통령은 검토도 하지 않았다는데, 그 내용이 국보위 유사 조직인지,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인지 어떻게 확신해 '지금 보니 그런 것 같다'는 식으로 장황한 설명을 하겠다고 나섰을까.

자기가 봐도 '비상입법기구=긴급재정명령' 주장은 '사상누각'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관련 기사]
[윤석열 진술 분석①] '조태용 미국에 있는 줄 알았다' 주장하는 윤석열, 대체 왜?https://omn.kr/2c7hf
#비상입법기구 #국보위 #긴급재정경제명령 #예산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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