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는 벚꽃
오마이뉴스 최은경
계절이 지금 보여주는 풍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작가가 소개하는 제철 행복들을 꼼꼼하게 눈에 담았다. 청명에 꽃비 맞으며 하는 산책, 곡우 무렵의 벚꽃 배웅과 돌미나리 전 먹기, 망종 즈음 열리는 산골 영화제에서 새벽에 야외 영화 보기, 추분에는 계수나무 아래서 달고나 향기에 취해보기, 첫눈이 내리는 소설 무렵 방어회 먹으러 '굳이' 제주 가기. 앞서가거나 뒤처지지 않고 딱 계절만큼의 속도로 사는 일은 우리에게 일 년에 스물네 번의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안겨준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다 보니 절기의 변화에 둔감했고 자연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어갈수록 주변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하천에서, 북한산 숲길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계절의 흐름에 따라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생명들을 보며 삶의 질서를 배우고 있다.
겨울눈의 단면을 확대 촬영한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손톱만 한 동그라미 안에 꽃잎과 새순이 겹겹이 포개져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정말 이 안에 봄이 다 들어 있구나. 작디작은 겨울눈이 열려 싱그러운 이파리가 되고, 아름다워 멈춰 서게 만드는 꽃송이가 된다니. 겨울 숲이 메마르거나 잠들어 있는 게 아니라는 건 겨울눈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매 순간 식물에게 소중하지 않은 시간은 없다는 사실도. - <제철 행복>, 315쪽
생명의 온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메마른 겨울나무가 봄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늘 내게 감동을 준다. 겨울이 소멸의 계절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잉태한 계절이라는 걸 알았을 때 처음 느꼈던 경이로움은 시간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는다.
올해로 오십이 되었다. 만 나이로는 아직 사십대지만 전통적 나이계산법으로는 쉰이 되었으니 이제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걸 받아들여야겠지. 저물어가는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끝이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지는 자연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제철 행복을 생각하니 설렌다
얼마 전 본 뉴스 영상이 떠오른다. 평균 연령 75.8세인 경남 거창 아림고등학교의 만학도반 학생들. 가족을 먼저 챙기느라 자신은 돌보지 못했던 할머니들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배움의 기쁨을 누리며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9년 전 처음 한글을 배우기 시작해 정규 교육과정을 마치고 이제 거창도립대학에 진학해 대학 새내기 생활을 시작하게 된 어르신들.
남아 있는 인생 중 가장 젊은 오늘을 아름다운 화양연화로 가꾸어가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남겼다. 노년을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으로 만들어가는 어르신들을 보며 인생의 봄과 여름이 지났다고 안타까워할 것이 아니라 지금을 충실히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현재를 잘 살기 위해서는 눈앞의 계절이 선물하는 즐거움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기별로 자신만의 연례행사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게 사는 건가'에서 '이 맛에 살지'라는 순간을 늘려가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 도다리쑥국.
오마이뉴스 최은경
일단 봄의 제철 숙제를 생각해 보자면, 우수엔 처음으로 도다리쑥국에 도전해 볼까 한다. 손질이 귀찮고 비린내가 심하다는 이유로 생선은 구이로나 먹을 뿐 식탁에 자주 오르지 않았는데 제철 도다리와 쑥으로 향긋한 봄맞이 밥상을 차려야겠다. 그리고 경칩엔 옷 정리를 해야지. 마침 이사를 앞두고 있으니 시기도 적절할 듯. 산뜻하게 정리된 집에서 봄처럼 밝은 기분으로 지낼 날들이 기대된다.
봄꽃이 만발한 청명엔 서울 시내 고택이나 한옥 찻집을 찾아 고즈넉한 봄 풍경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곡우엔 돌미나리 전을 먹으러 남양주에 가야겠다. 등나무 아래 앉아 봄향기 가득한 미나리 전을 즐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입에 침이 고인다. 식사 후 차 트렁크에서 자전거를 내려 잠시 북한강을 보며 달려도 좋을 듯.
제철 행복을 떠올리니 다가오는 계절을 좀 더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눈앞의 계절이 건네는 인사에 화답하며 현재를 소중하게 가꾸어야겠다. 지금 가장 알맞은 제철의 마음으로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인 오늘을 꽃피워야겠다.
제철 행복 - 가장 알맞은 시절에 건네는 스물네 번의 다정한 안부
김신지 (지은이),
인플루엔셜(주), 2024
꾸역꾸역은 '어떤 마음이 자꾸 생기거나 치미는 모양'을 뜻합니다. 책을 읽고 치미는 마음을 열심히 글로 잘 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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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와 책 리뷰를 적는 브런치 작가입니다. 다정하게 마음을 어루만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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