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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생 79세 유튜버에게 배우고 싶은 것

복지관 어르신들의 건강한 삶의 태도... 스스로 빛나고 함께하는 순간도 소중히

등록 2025.02.17 14:06수정 2025.02.1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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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지관에서 '내 인생 풀면 책 한 권'이라는 이름으로 어르신들과 글쓰기 수업을 한다. 지난 첫 시간에는 카톡쓰기가 은근 어렵다는 여론에 따라 센스 있는 카톡 쓰기 수업을 했다(관련 기사 : 어르신들이 카톡 글쓰기가 어렵다고 하는 이유).

어르신들이 자식들과 하는 카톡으로 나는 병원 다니는 일을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반 두 번째 고령자 어르신이 딱 잘라 말씀하셨다.


"병원은 택시 불러서 알아서 가는 거야. 뭐 그런 일로 애들을 오라가라 해."

듣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이었다. 글쓰기 연습을 하겠다고 복지관 수업까지 찾아오시는 분들이라면 병원 역시 혼자 갈 수 있다. 더군다나 그 말씀을 하신 분은 허리 통증으로 지팡이를 짚으면서 아주 천천히 걸으신다. 그런 분도 병원을 혼자 간다고 하니 병원 동행에 관한 카톡 글쓰기는 쑥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어르신의 '혼자'가 중요한 이유

고령화 사회에서 어르신들이 자립적인 삶을 유지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고, 국가 예산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일상생활에서 스스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사람답게 살아가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불편한 몸이지만 이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그 어르신이 존경스러웠다.


누군가에게 의존하려는 순간, 그만큼 사회적 비용은 커지며 그 부담은 결국 모두에게 돌아온다. 자립적인 삶을 지향하는 것이야말로 나이를 떠나 누구에게나 소중한 가치다.

혼자 병원에 가신다는 그 어르신은 누가 봐도 걸음이 불편해 보인다. 일상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겠거니 라고 나는 지레 짐작했는데 내가 틀렸다. 나도 그 어르신처럼 설사 몸이 좀 불편해지더라도 끝까지 씩씩한 할머니가 되겠노라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79세 유튜버를 만나다

다음 시간이 됐다. 이번에 새로오신 수강생이다. 1946년생이신데 유튜버라 하셨다. 자막과 배경음악, 컷 편집을 모두 혼자 하면서 영상을 만든 게 벌써 3년차였다. 그분 채널에 가보니 화면 비율 바꿔 만든 숏츠도 여러 개 있었다.

"우와, 이거 광화문 그거잖아요. 사람 엄청 많다는데."
"미디어 파사드요. 이거 찍으려고 나도 부지런 떨었지."

내게는 '그거'였고 어르신에게는 정확하게 '미디어 파사드'였다. 한국전쟁 전에 태어나신 분에게 어떻게 이런 총명함이 있을 수 있는가. 아니면 내가 너무 모르는 건가. 반성했다.

지난 일주일 이야기를 쓰는 어르신 일상을 쓰다가 유튜브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지난 일주일 이야기를 쓰는 어르신 일상을 쓰다가 유튜브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최은영

그 분은 유튜브 덕에 외출이 즐겁다고 하셨다. 올봄에도 꽃이 피면 자라섬에 영상 출사를 나갈 계획이시란다. 누군가가 "자라는 옷가게 아니야? 섬도 있어?"라고 물으셨다.

질문하신 분만 아니라 다들 자라섬이 뭔지 모르는 눈치다. 가평에 있는 섬인데 음악축제로 유명하다는 설명을 그분이 덧붙이셨다. 지금 내가 46년생과 말하고 있는지, 96년생과 말하고 있는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출생률은 낮아지고 수명은 길어지면서 노년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국가에서도 늘어나는 노년층을 케어하기 위한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긴 하다. 복지관 수업에서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어떤 대책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그 태도의 기본은 '혼자'이다.

79세 어르신이 혼자 운영하는 유튜브 편집앱 사용도 척척 해내시는 1946년생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79세 어르신이 혼자 운영하는 유튜브 편집앱 사용도 척척 해내시는 1946년생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박정신 유튜브 캡처

'혼자'를 사랑하기에 '같이'도 잘한다

물론 사람은 더불어 사는 존재이긴 하다. 그렇지만 수명이 길어지면서 모든 순간을 '더불어' 살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자라섬 촬영 가신다는 어르신도 딱 잘라서 '혼자' 다닌다고 말하신다.

가볍게 혼자 가서 보고 싶은 것, 찍고 싶은 것 실컷 찍다가 집에 오고 싶을 때 오는 그 자유가 행복이라 하셨다. 혼자 돌아다니는 걸 사랑해야 인생이 즐거운 법이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인간이 독립적으로 자기 자신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인간의 최고 목표는 '행복'이며 이 행복은 외부의 것에 의존하기보다는 내면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행복을 복지관의 어르신들이 실천하고 있었다. 나는 79세 유튜버를 오래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꽃 피기 시작하면 글쓰기 수업 안 나오시는 거 아니에요?'라고 웃으며 물었다.

혼자도 잘 하지만 같이 하는 수업 역시 성실함의 끝을 보이는 분이라는 다른 분의 증언이 바로 나온다. 그러고보니 병원 혼자 가신다는 그분도 지난 학기 수업에 한 번도 결석이 없었다. 역시, 혼자 빛나는 분은 같이에서도 빛나는가 보다.

내 노년을 그려본다

수업을 마치고 복지관을 나서니 정오의 햇살이 부드럽게 퍼져 있었다. 겨울 끝자락의 해는 차갑기보다는 포근했다. 어르신의 행복론이 햇빛 끝자락에 스며든 것 같았다.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 스스로 빛나면서도 함께하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삶. 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보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며, '혼자'와 '같이'의 균형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다.

부디, 이분들이 오래도록 건강하시길. 다음 수업에서도 변함없는 웃음으로 만나길. 그들이 걸어가는 길이 오늘의 나에게 길잡이가 되어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sns에도 실립니다.
#내인생풀면책한권 #할머니유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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