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부 압력으로 제목이 수정된 KBS <시사기획 창> ‘대통령과 우두머리 혐의’ 방송 화면 갈무리
언론노조 KBS본부
윤석열 정권은 '낙하산 박민'에 이어 '파우치 박장범'을 KBS 사장으로 임명하며 공영방송 파괴를 이어갔다. 12·3 내란 보도는 그 파괴의 절정이었다. 조선시대 사화(士禍)에 버금가는 현대판 사화(史禍, 역사를 쓴 관계로 말미암아 입는 화)가 공영방송에서 재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 이튿날인 2024년 12월 4일 KBS는 "비상계엄 원인이 야당에 있다"는 여당 인사의 발언 등을 검증 없이 방송했다. 12월 5일은 더 참담했다. 계엄령 선포의 불법성과 절차적 문제는 외면했다. 내란죄 성립 여부를 따지는 리포트도 전무했다. 12·3 내란 당시 우원식 국회의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군에 의해 체포될 뻔한 상황은 아예 다루지 않았다. 그 결과 수도권 기준 KBS 메인뉴스 시청률은 SBS에게도 밀렸고, MBC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윤석열 탄핵 가결 한 달을 맞아 기획된 〈시사기획 창 : 대통령과 우두머리 혐의〉는 방영 과정에서 심각한 내부 압력에 부딪쳤다. '파우치 박장범'을 앞세운 보도본부 수뇌부는 '계엄이 불가피했던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윤석열 측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 '윤석열과 박장범의 파우치 대담 영상을 왜 포함했느냐' 등의 이유로 방영을 막으려 했다. 일관되게 내란세력이 주장하는 '계엄의 불가피성'을 KBS가 대변하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결방하겠다는 압박까지 가했지만, 제작진의 강력한 거부로 결방은 실행되지 않았다.
역사 앞에 서다 : '사화(史禍)'의 반복을 막으려면
1월 30일, MBC는 12·3 내란 당시 윤석열이 "22시에 KBS 생방송이 확정돼 있다"며 계엄 반대 의견을 묵살했다는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의 경찰수사 진술을 보도했다. 이미 언론노조 KBS본부는 지난 2024년 12월 5일 KBS 수뇌부가 계엄방송을 준비한 정황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공영방송 KBS에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부역자, 간신배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어떤 역사는 반복될 때 비극이 된다. 다행히 윤석열 정권의 이번 내란은 실패했고, KBS는 '내란방송'으로 추락하기 직전 멈춰섰다. 그러나 12·3 내란의 밤,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헌법이 부여한 국민의 알 권리를 배신한 자들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처벌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는 다시금 사화(史禍)의 비극을 반복할 것이다.
다시 역사를 돌아보자. 무오사화로 조선의 언론기관 3사를 짓밟고 폭정을 이어간 연산군의 최후는 어땠는가. 조선시대 최초로 신하들에 의한 중종반정으로 왕좌에서 끌어내려졌다. 손바닥에 '왕(王)'을 새기고 '왕'이 되고자 한 그대에게 묻고 싶다. 반정 이후 연산군의 삶을 알고 있는가. 연산군이 폐위된 뒤 기록된 <조선왕조실록>을 읽어보시길.
- 윤성구(민언련 정책위원·언론노조 KBS본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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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과 윤석열, <조선왕조실록>에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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