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인종차별, 그 어두운 그림자

손인서가 쓴 <다민족 사회 대한민국>(2024, 돌베개)을 읽고

등록 2025.02.17 08:56수정 2025.02.17 08:56
0
원고료로 응원
질긴 인종차별의 역사

내란 피의자 윤석열 옹호자들의 중국 혐오가 도를 넘었다. 한국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대사관 앞에서 "멸공"을 외치고, '중국인'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임신부로 추정되는 여성을 폭행한 의혹을 받고 있다. 언론은 '반중 정서'가 새로운 일인 양 중계하기 바쁘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부인은 오스트리아 출신 프란체스카(Francesca)다. 유명 사립대학교인 연세대는 홈페이지 '연혁' 맨 위 자리에 알렌(Allen), 에비슨(Avison), 언더우드(Underwood) 세 사람의 외국인 사진을 올려놓았다(연세대학교 홈페이지, www.yonsei.ac.kr, 2025년 2월 15일 검색). 네 사람은 모두 백인이다.

한국의 인종차별 역사를 그대로 드러내는 두 개 장면이다.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우리가 외국인을 어떻게 다르게 대우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마디로 한국인의 '서구 백인 우대'이다. 우대는 천대와 동시에 진행된다. 서구 백인을 향한 환대는 비서구 유색인에 대한 멸시를 낳는다.

이미 '다민족 사회'가 된 대한민국의 인종차별을 깊게 다룬 책이 있다. 손인서가 쓴 <다민족 사회 대한민국>(2024, 돌베개)이다. '단일민족' 국가에서 웬 인종차별 타령이냐고 일축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내란으로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 트럼프의 관세 부과 예고가 실시간으로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지구촌' 시대다. 삶 속에서 외국인을 마주하는 일은 흔히 벌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단일 문화 강조는 차별을 낳는다.

"우리는 미국과 유럽의 백인과 서구문화를 다문화라 부르지 않는다." (책, 33쪽)

우리에게 익숙한 '다문화'라는 말은 그 자체로 우리의 인종차별 의식을 드러낸다.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줄임말인 다문화는 서구에서도 유례가 없다(책, 31쪽). 정체불명의 이 말은 '비서구 아시아 유색인종'을 가리킬 때만 사용하는 인종차별이 담긴 단어다.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나타나는 인종주의 편견과 차별은 해당 사회 내부의 역사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고 강화되는 면이 크다. 이민정책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선진국 백인을 선호하고 개발도상국의 유색인종을 차별하며 구분 짓는 것은 한국사회가 스스로 만들어낸 인종주의 구조이다. 정책과 관행이 사회에서 특정 인종이나 특정 국가 출신 이주민에 대한 열등감이나 우월감을 사회적으로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며, 이는 사회 전반의 인종주의적 편견과 차별을 강화한다."
(책, 109쪽)

특히 우리 사회는 오래전부터 인종차별적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화교', '혼혈', '외국 입양아', '조선족', '탈북민' 등의 단어는 대한민국의 오래된 인종차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인종주의적 인식을 받아들여왔고, 그로 인한 인종차별이 존재했다. 혼혈인의 이야기는 반세기에 걸쳐 자행되었던 숨겨진 인종차별의 역사다." (책, 94쪽)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다문화 사회'

다문화 학생 현황 교육부가 발표한 2024년 4월 1일 기준 초, 중, 고등학교 '다문화 학생 현황'이다.
▲다문화 학생 현황 교육부가 발표한 2024년 4월 1일 기준 초, 중, 고등학교 '다문화 학생 현황'이다. 교육부

법무부에 따르면, 2024년 12월 말 기준으로 국내에 머무는 외국인은 2,650,783명이다(법무부 홈페이지, www.moj.go.kr). 교육부 자료에 의하면, 초, 중, 고등학교에 다니는 '다문화 학생'은 2024년 4월 1일 기준 193,814명이다(교육부, 2024년 8월 26일 보도자료, '2024년 교육기본통계조사 결과 발표', 3쪽, 교육부 홈페이지 www.moe.go.kr). 전체 학생의 3.78%다. 2014년 1%를 넘긴 이후 계속 증가 추세다. 학생 100명 가운데 4명은 '다문화 학생'이다.


사회 곳곳에서 이주민을 쉽게 만날 수 있지만, 한국사회와 한국인은 얼마나 그들과 함께 살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정부 정책과 제도는 사람이 아닌 '인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 마음은 어떤가? 수년 전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 도착했을 때 보였던 격렬한 반대는 사그라들었을까?

아래 그래프는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한 단체가 조사한 설문 결과 일부이다. 설문 항목은 '사람들은 전쟁이나 박해로부터 우리나라를 포함해 다른 나라로 피할 수 있어야 한다.'이다. 이에 대해 '동의한다', '동의하지 않는다'라는 두 가지 답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난민을 대하는 태도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한 단체가 조사한 설문 결과 일부이다. 설문 항목은 ‘사람들은 전쟁이나 박해로부터 우리나라를 포함해 다른 나라로 피할 수 있어야 한다.’이다. 이에 대해 ‘동의한다’, ‘동의하지 않는다’라는 두 가지 답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난민을 대하는 태도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한 단체가 조사한 설문 결과 일부이다. 설문 항목은 ‘사람들은 전쟁이나 박해로부터 우리나라를 포함해 다른 나라로 피할 수 있어야 한다.’이다. 이에 대해 ‘동의한다’, ‘동의하지 않는다’라는 두 가지 답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Ipsos

설문에 참여한 국가는 52개였다. 한국은 '동의한다(agree)'라는 답변이 50%를 넘지 않은 유일한 국가이다(Ipsos, 2024, <세계 난민의 날, 난민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국제 조사>, 9쪽, www.ipsos.com. 2025년 2월 15일 검색). 난민에 대한 적대감은 같은 조사의 다른 질문 항목에서 일관된 경향을 보였다.

왜 한국인은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을 거두지 않는 것일까? 사실 이 질문은 틀렸다. 앞에서 본 연세대학교 홈페이지에 있는 외국인 선교사, 미국 국기를 자랑스럽게 흔드는 사람들은 서구 백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 공장주도 외국인 노동자를 겁내지 않는다. 철저하게 이해관계에 따라 '비서구 유색인종' 외국인이 '선을 넘어' 권리를 주장하지만 않는다면 빵 부스러기를 뜯어준다.

"한국을 다문화 사회라고 할 때 우리는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이주민을 생각하기 쉽지만, 한국의 이주민 가운데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것은 외국인이 아닌 중국동포다. … 중국동포는 다문화 사회의 주요 인구집단이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이들을 우리와 같은 동포로 여기지도 않고, 다문화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많은 사람은 이들을 우리와 공존할 수 없는, 더럽고 위험하고 열등한 집단으로 생각한다." (책, 144쪽)

중국동포, 조선족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한민족'이라는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들에 비난과 우월감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아무리 같은 민족이라도 가난하거나 서구 백인이 아니면 "공존할 수 없는 집단으로 인식"한다(책, 148쪽). 이런 인식은 북한 이탈 주민, 탈북민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재현된다.

실제, 차별엔 이유가 없다. 마치 동네 깡패가 지나가는 학생의 돈을 뜯으며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비슷하다. 가해자는 온갖 이유를 대며 자신을 정당화한다. 피해자 상황은 아무 상관이 없다. 조선족 말투를 써서, 한국 표준어를 사용하지 않아서, 돈이 없어서, 중국어를 잘해서 괴롭힌다.

"한국에서 중국동포는 한국인이 아니다. 한국인이 되기 위해서는 동포인 티를 내지 말고 한국인과 지내야 한다. 나를 만난 중국동포가 한 말이다." (책, 166쪽)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한국인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유산인 인종주의는 여전히 서구 중심적 글로벌 경제와 정치를 통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국외에서 한국인은 열등한 아시아 인종으로서 인식되고 국내에서 유사 백인으로서 타 인종을 차별하는 현실은 세계적 인종주의의 유산을 반영하고 있다."
(책, 178쪽)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는 지난 12일 트럼프(Trump) 행정부가 베네수엘라(Venezuela) 출신 이민자들 수십 명을 쿠바 관타나모(Guantánamo) 미군 기지에 가두고 있다고 보도했다(뉴욕 타임즈, 2025년 2월 12일, '트럼프가 관타나모로 보낸 이민자 일부, 군 경비대에 억류 중', www.nytimes.com, 2025년 2월 15일 검색). 이민자들이 갇힌 곳은 전쟁 시 알카에다 용의자들을 구금하려고 만든 감옥이라고 전했다. 뉴욕타임즈는 군 경비대가 억류 중인 53명의 명단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이 뉴스를 보며, 2021년 경기도 화성 외국인보호소 뉴스가 떠올랐다. 당시 마치 새우처럼 팔다리를 뒤로 묶여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의 난민 신청자 사진이 공개됐었다. 작년 5월, 1심 법원은 대한민국이 그에게 1,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했다. 그래도 이름에 '보호소'가 들어가 있고,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자도 아닌데, 무작정 가둬두고 고문하며 인간 존엄을 훼손했다. 그런데 고작 배상금 얼마로 그가 입은 신체적, 정신적 피해가 없던 일이 될 수 있을까?

"인종주의는 생물학적 차이나 민족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근대에 백인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비백인 국가들을 상대로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문화이자 지식이다. … 비대칭적인 글로벌 질서가 인종주의를 지속시키고 재생산한다. … 세계화와 다민족의 시대에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도 국경을 넘어가면 열등한 동양인으로 취급받는다." (책, 192쪽)

손흥민이 유럽에서 당하는 인종차별은 예외적 현상이 아니다. 백인이 아닌 동양인을 무시하는 우리도 외국, 특히 유럽이나 북미 대륙에 가면, 중국인이나 동남아시아인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그저 '노란색의 아시아인', 즉 '유색인종'일 뿐이다.

모든 외국인을 차별 없이 대하는 정책과 제도, 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다(책, 206쪽). 다문화주의는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적용돼야 한다. 지역과 세대에 따라 문화가 다를 수 있다. 개인이나 가정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사회경제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가 민주주의 공동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을 지향한다. 그가 어디에서 왔건, 어떤 환경에서 자랐든, '공존'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는 가능하다. 차별과 배제를 제일 먼저 없애야 한다. 외국인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실질적 다민족 사회, 다문화 사회를 만들려면, 인종주의적 편견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문화의 공존은 시작될 수 있다.

"이미 우리는 정부와 대학과 언론이 반복해서 주입한 대로, 이주노동자를 열등한 존재로, 중국동포를 범죄자로, 결혼이주여성을 순종적인 가정부로 여기기 때문이다. 문화가 아니라 인종주의가 문제다. … 다민족 사회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
(책, 207~208쪽)

다민족 사회 대한민국 - 이주민, 차별, 인종주의

손인서 (지은이),
돌베개, 2024


#다민족사회대한민국 #손인서 #돌베개 #인종차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해안도로 곳곳에 나타나는 '경고'... 강릉 바다가 위험하다 해안도로 곳곳에 나타나는 '경고'... 강릉 바다가 위험하다
  2. 2 '평택' 밑으로는 인재 못 간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또 어딨나 '평택' 밑으로는 인재 못 간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또 어딨나
  3. 3 황혼 육아 고단함 날린, 며느리의 뜻밖의 선물 황혼 육아 고단함 날린, 며느리의 뜻밖의 선물
  4. 4 "설마 너도 그렇게 생각해?" 판사 제자에게 묻고 싶은 말 "설마 너도 그렇게 생각해?" 판사 제자에게 묻고 싶은 말
  5. 5 박찬대 40.5%, 박남춘 9.8%, 김교흥 5.4%...박찬대, 유정복에 오차밖 우세 박찬대 40.5%, 박남춘 9.8%, 김교흥 5.4%...박찬대, 유정복에 오차밖 우세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