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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관, 부산 갔다가 감동했다

재개발로 사라지긴 너무 아까운 곳... 감천동 문화마을과 보수동 책방이 닮은 이유

등록 2025.02.26 11:42수정 2025.02.2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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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사진이 이메일이라면 필름 사진은 손편지 정도로 여기며 천천히 세상을 담습니다. 여정 후 느린 사진 작업은 또 한 번의 여행이 됩니다. 수평 조절 등 최소한의 보정만으로 여행 당시의 공기와 필름의 질감을 소박하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사진 하단에 사진기와 필름의 종류를 적었습니다.[기자말]
지난 1월 말, 머나먼 동네 울산으로 출장이 잡혔다. 전주에서 왕복하면 7시간 가까이 될 텐데, 업무 시간까지 잡으면 어림잡아 11시간이 걸린다. 하루 일정으로 소화하기에는 벅차다. 이럴 땐 보통 한술을 더 뜬다. 앞뒤로 여행 일정을 잡는 것이다. 의무를 권리로, 숙제를 선물로 바꾸는 방법이라고나 할까.

마침 휴가기간이라 주말을 연결하여 일요일부터 여행을 꾸렸다. '언젠간 가겠지.' 생각하면서도 좀처럼 따뜻한 곳으로는 발길이 닿지 않아서 한 번도 제대로 가보지 못한 그 곳, 부산으로 향했다. 나는 언제나 고속도로 대신 국도를 이용한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뜻하지 않은 풍경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한 홍보 지붕수리 홍보 문구는 저 집 주인의 설치미술 작품인 것인가. 아니면 지나가던 지붕수리업자의 일감 찜하기인 것인가.
▲이상한 홍보 지붕수리 홍보 문구는 저 집 주인의 설치미술 작품인 것인가. 아니면 지나가던 지붕수리업자의 일감 찜하기인 것인가. 안사을

진안, 장수, 함양, 산청을 지났다. 시원한 4차선도 있었지만 구불구불한 주황선을 중심으로 사람 사는 풍경이 양쪽으로 듬성듬성 놓인 시골을 관통하기도 했다. 진주에 잠시 내려 해물육수가 기반이라는 진주냉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길에 올랐다.

여기서부터는 처음 가보는 길이다. 마산으로 들어서니 바닷가 풍경이 전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네 갯벌 속에 사는 게만큼이나 색색의 컨테이너가 즐비하다. 굴뚝 모양은 꼭 소금을 치면 쏙 올라오는 맛조개를 닮았다. 다리인지 육로인지 모를 길을 가다 보니 을숙도 위다. 이렇게 부산으로 들어왔다.

두 차례 방문한 감천문화마을

첫 번째 목적지는 감천문화마을이었다.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출발했는데 마침 가고자 하는 곳이 모여있었다. 국제시장과 깡통시장, 자갈치시장과 보수동 책방골목이었는데 숙소도 남포동에 두어서 동선을 효율적으로 잡을 수 있었다. 감천동에 도착하자 어느덧 하늘빛이 벌써 바래가고 있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주차할 곳을 찾고 전망이 좋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니 마음이 급했다. 초행길이라 더욱. 그런데 예상외로 코앞에 공영주차장이 크게 있었다. 심지어 주차비도 매우 저렴했다. 10분당 100원, 일주차 최대 2,400원. 올해 1월 직전에 완공한 새 건물이다.


내가 가진 카메라 중 가장 큰 필름 판형을 가진 녀석을 짊어진 채로 지체 없이 하늘전망대를 찾아 걸었다. 10분 만에 위치는 찾았지만 아뿔싸, 전망대의 문이 닫혀 있었다. 동절기에는 17시에 닫는다는 안내판과 함께. 아직 빛은 충분하고 눈앞의 색색깔 집이 선명한데 너무도 아쉬웠다.

멀리서 야옹거리는 고양이를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자니 전망대 바로 앞으로 살짝 돋워진 작은 공간이 보였다. 삼각대를 한껏 높이면 화각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노출계 앱을 켜고 셔터스피드를 계산했다(셔터스피드는 조리개로 들어온 빛을 얼마나 지속시킬지 결정하는 셔터 막의 속도로, 보통 어두울수록 오래 걸린다).


조리개(F값) 22에 30초 동안 빛을 담아야 했다. 릴리즈를 연결하고 엄지손가락으로 금속 노브를 꾹 눌렀다.

해질녘 감천문화마을 노을과 함께 담긴 색색의 집들
▲해질녘 감천문화마을 노을과 함께 담긴 색색의 집들 안사을

감천문화마을의 밤풍경 어린왕자가 앉아있는 쪽에서 바라본 모습
▲감천문화마을의 밤풍경 어린왕자가 앉아있는 쪽에서 바라본 모습 안사을

시간이 흐를수록 빛은 사라지고 셔터스피드는 길어졌다. 첫 사진을 찍은 직후에는 60초가 필요했고, 까만 밤하늘을 배경으로 한 야경은 3분 동안 릴리즈를 눌러 놓아야 했다. 후보정을 하지 않으니 디지털 사진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눈에 보이는 그대로, 지붕과 외벽에 내려앉은 진득한 어둠이 그대로 필름에 남아 있었다.

숙소는 차로 10분이면 닿는 곳이었다. 짐을 풀고 인근 맛집을 찾아 나섰다. 별점이 좋은 곳을 향해 걷다 보니 사람이 갑자기 많아졌다. 광경은 소박한데 불빛은 화려했다. 깡통시장 근처 곱창골목이었다. 플라스틱 원탁에 길거리에 2차선으로 죽 놓여 있었고 서너 명씩 둘러않은 사람들 가운데로 전골이 김을 모락모락 내며 끓고 있었다.

아침이 되어 다시 감천문화마을로 향했다. 저녁놀이 깃든 마을도 참 아름다웠지만 오전의 새 햇살이 구석구석 드리운 모습도 보고 싶었다. 마침 평일이라 주차장도 한산했다. 관광객보다 주민들이 더 많은 시각에 좁다란 골목을 거닐었다.

감히 풍경이라 할 수 없는, 오래 묵은 삶이 도처에 있었다. 널려있는 빨래마저도 햇살 조각에 총천연색으로 빛나며 우리를 몽롱하게 했다. 곳곳에 깊은 성찰이 담긴 소박한 전시관도 있었다. 수십 년 된 작은 역사들을 차마 나의 사진기에 담을 수 없었다. 다시 멀리 나가 멀리서 셔터를 누르는 것으로 만족했다.

사라질 위기, 보수동 책방 골목

오전의 감천문화마을 멀리서 보면 예쁜 퍼즐 같지만 안쪽에서 보면 깊은 삶의 흔적이 많다.
▲오전의 감천문화마을 멀리서 보면 예쁜 퍼즐 같지만 안쪽에서 보면 깊은 삶의 흔적이 많다. 안사을

자갈치시장, 국제시장, 깡통시장을 차례로 구경하고 보수동 책방골목으로 향했다. 남포동과 경계에 있어서 시장 구경을 하다가 큰길(대청로)만 건너면 되었다. 잘 숙성된 책 냄새가 물씬 느껴졌다. 외할머니댁 오래된 장롱에서 나는 것과 비슷했다. 책을 구경하는 사람들과 찾는 사람들이 뒤섞여있었다.

초입에서 느껴지는 규모는 책방 몇 개 정도의 작은 수준이었는데, 들어가보니 생각보다 넓었다. 만화와 무협지를 전문으로 가지고 있는 책방도 있었고 참고서와 교과서를 주로 취급하는 곳도 있었다. 헌책방의 기능을 넘어 북카페처럼 운영하고 있는 곳도 있었다. 그곳에는 다양한 기념품도 팔고 있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마음으로 부산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부산은 정말이지 거대한 역사관 같았다. 단순한 전시를 넘어 '전시된 삶'으로서의 기능을 일련의 계획에 따라 시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오래전 봤던 영화 <국제시장> 속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러다가 한 부동산 앞에서 그 가상현실이 순식간에 땅밑으로 사라졌다. 7D 상영관 출구의 안내문 같은 역할을 하는, 현수막과 간판의 문구 때문이었다. 거기엔 '재개발 추진' '아파트 단지' 등이 써 있었다. '보수동을 좋은 아파트 단지로'라는 슬로건을 보며 눈을 의심했다.

 책방골목과 사람
책방골목과 사람 안사을

"보수동을 좋은 아파트 단지로" 보수동 재개발 추진위원회의 현수막과 광고판
▲"보수동을 좋은 아파트 단지로" 보수동 재개발 추진위원회의 현수막과 광고판 안사을

평생 처음으로 부산을 거닐고 있는 여행자 따위가 참견할 일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협의와 갈등, 그리고 합의와 이해관계가 어떤 모양새로 얽혀있는지 나는 전혀 모른다. 하지만 외부인의 시각에서만 봤을 때, 관광도시로서의 부산의 가치는 고층 아파트가 얼마나 웅장하게 지어졌는지에 있지는 않다.

인구가 줄고 있다. 지역 안에서의 생산과 소비만으로 내수를 돌리는 것이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건설로 경제 규모를 부풀리는 것 또한 점차적으로 위험성이 증가할 것이다. 좋은 관광자원을 개발하고 도시와 도시를 오가는 사람들이 서로의 고장에서 돈을 써야 경기를 부양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려면 지역색이 있어야 하고 한 번 온 관광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들이 명확하게 있어야 한다. 단언컨대 부산에 놀러 온 사람들은 높은 건물만 보러 오진 않았을 것이다. 어느 지역보다 북적거리며 살아왔던, 그러면서 켜켜이 쌓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모습에 감동하지 않았을까.

깡통시장 유독 물품들이 많다. 미군에게서 나온 통조림, 일본에서 넘어온 물건 등을 팔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수입상가들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것
▲깡통시장 유독 물품들이 많다. 미군에게서 나온 통조림, 일본에서 넘어온 물건 등을 팔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수입상가들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것 안사을

밀면 소박한 음식은 해당 지역의 민중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밀면 소박한 음식은 해당 지역의 민중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안사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 경제를 그대로 내버려만 둔다면, 소소한 역사가 포함되어 있는 작은 골목들은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곧 관광자원이 사라지는 것과도 같다. 부산시가 시민들과 함께 고민해야 한다. 특히 책방골목과 같은 '살아있는 역사의 거리'는 시에서 책임지고 유지하면서,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의 생계를 합리적인 방식으로 지원해야 한다.

감천문화마을에도 빈집들이 많다. 아직 남아있는 주민들의 구성은 매우 노령화되어 있다. 역시 지자체에서 힘을 써야 한다. 예술인이나 청년을 그곳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매력적인 정책을 만들고 자본을 투자한다면, 지속가능한 관광지이자 계속해서 삶이 쌓여가는 살아있는 마을이 될 것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책방골목을 걷다가 한 책방에서 무더기로 책이 쌓여있는 모습에 눈길이 멈췄다. 아직 버려지지 않은 많은 책들이 사이좋게 서로를 의지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삶의 지층 같았다. 나도 모르게 같이 온 친구에 이렇게 말했다.

"저 책들 말이야. 감천문화마을의 집들하고 많이 닮지 않았어?"

책더미 멀리서 바라본 감천문화마을의 모습과 닮아있다고 느꼈다.
▲책더미 멀리서 바라본 감천문화마을의 모습과 닮아있다고 느꼈다. 안사을




#감천문화마을 #국제시장 #깡통시장 #필름사진 #부산울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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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해왔습니다. 2025년,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를 통해 한 아이의 양육 뿐 아니라 한국의 교육, 인류와 생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민하는 시민기자가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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