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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이 뜨자 나는 훌라를 췄다

하와이 노래 '하날레이 문'과 하루키의 소설 '하날레이 해변' 그리고 마음의 치유

등록 2025.02.19 14:02수정 2025.02.1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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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베란다에서 바라본 2025년 정월대보름 베란다에서 바라본 2025년 정월대보름
▲아파트 베란다에서 바라본 2025년 정월대보름 베란다에서 바라본 2025년 정월대보름 전윤정

올해 첫 만월(滿月) 정월대보름. 아침부터 눈이 오고 미세먼지로 뿌예서 밤에 달을 볼 수 있을까 걱정했다. 아파트 베란다를 들락거리며 확인하다가 마침내 구름을 헤치고 나온 달을 보니 반가웠다. 두 손을 모으고 올해도 무탈하기를 빌었다. 그리고 나는....... 하와이안 훌라를 췄다.

훌라 멜레(노래)에는 자연을 묘사하고 그 속에 진짜 뜻을 숨긴 은유적 가사가 많다. 파도, 바람, 비, 꽃, 달 등이 자주 나오는데, 특히 달은 달의 여신 히나(Hina)를 상징하기도 한다. 고대 하와이 사람들은 아름답고 매력적인 그녀가 자연의 순환에 영향을 미쳐 인간과 영혼의 삶을 형성하고, 신과의 연결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뮤즈이자 가이드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그들이 섬기는 달의 여신 히나의 존재를 밤에 비치는 달빛에서 찾고 느꼈다.


달을 노래하는 대표적인 곡이 '하날레이 문'(Hanalei Moon)이다. 하와이 카우아이섬에는 아름다운 하날레이 베이(Hanalei Bay)가 있다. '하날레이'는 하와이어로 초승달인데, 육지 쪽으로 바다가 움푹 들어간 만(灣)의 모양이 초승달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 높고 험준한 산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푸른 바다가 펼쳐진 풍경이 장관이다. 그 아름다운 하날레이 베이에 뜬 달을 노래한다.

달빛 비추는 하날레이는
바다로 둘러싸인 천국이겠죠.

When you see Hanalei by moonlight
You will be in Heaven by the sea

팔을 머리 위로 동그랗게 만들어 달은 만드니 노란 달빛으로 가득 채워진다. 손을 허리에서부터 시작해 내 앞으로 모아 하날레이 베이를 만드니 파란 바닷물이 찰랑찰랑 고인다. 주먹 쥔 손을 올렸다가 손가락을 튕기듯 펼치니, 밤하늘엔 작은 별들이 반짝이다 사라진다.

몸을 더 낮게 더 낮게, 골반을 옆으로, 더 옆으로 옮긴다. 팔을 더 멀리 뻗어 바람을 만들고, 손을 더 구부려 바다를 만든다. 파도를 만든 손끝에서 바다 내음이 난다. 나는 바다에 사는 한 마리 물고기가 되어 달빛 비치는 훌라의 물결에 몸을 맡기고 유영(遊泳)했다.

 훌라 <하날레이 문> 중에서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둥근 달을 만들어 표현하고 있다.
훌라 <하날레이 문> 중에서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둥근 달을 만들어 표현하고 있다. 전윤정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아름다운 하날레이 베이를 배경으로 소설을 썼다. <도쿄 기담집>에 실린 단편 소설 <하날레이 해변>이다. 주인공 사치는 하날레이만 해변에서 열아홉 살 아들을 잃었다. 서핑하던 아들은 상어에게 오른쪽 다리를 물어뜯겼다. 아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만난 하와이 경찰은 이런 말을 한다.

"보시는 바와 같이 이곳의 자연은 참으로 아름답지만 동시에 때때로 거칠고 치명적인 것이 되기도 하지요. (중략) 가능하면 그렇게 생각해주세요. 아드님은 자연의 순환 속으로 돌아간 것이라고."(51~52장)

그 뒤로 사치는 해마다 그맘때쯤 하날레이 베이를 찾는다. 딱히 하는 일 없이 바닷가에 앉아 책을 읽고, 파도 타는 서퍼들을 바라본다. 그러던 어느 해, 우연히 일본인 청년 두 명과 친해지는데, 그들이 떠날 때 사치에게 묻는다. 오른쪽 다리 하나가 없는 젊은 일본인 서퍼를 본 적이 있냐고. 사치의 의자 가까이에 늘 외다리로 서 있었다고.


 단편 소설 <하날레이 해변>이 실려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 기담집
단편 소설 <하날레이 해변>이 실려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 기담집 출판사 비체

잘 알려진 대로 하루키는 서핑마니아다. 1980년대에 하와이 카우아이에서 오래 머물면서, 서핑 즐기며 글을 썼다. 아마 이 단편도 그 영향을 받았으리라. 만약 하루키가 서핑이 아닌 훌라를 배웠다면 어떤 소설이 나왔을까? 어쩌면 주인공 사치는 훌라를 추며 마음의 치유 받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훌라는 위로의 춤, 치유의 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슬픔은 심리적 감정인 동시에 신체적 반응이다. 우리의 몸은 상실과 아픔을 기억하고 있다. 몸을 움직여 춤을 추면서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 얽혀있던 마음의 타래를 풀어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특히 자연을 몸으로 표현하는 훌라를 추면, 사람도 자연의 한 조각임을 자연스럽게 깨닫곤 한다. 마음은 곧 평온해지면서 헛헛했던 마음 온도가 조금씩 올라간다.


그래서인지 훌라 수업이 끝나고 소감을 나눌 때면, 감당하기 힘든 일이 있었는데 훌라를 추면서 힐링이 되었다거나, 머릿속이 복잡했는데 훌라의 따뜻한 에너지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며 오길 잘했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고대의 많은 춤이 그렇듯 함께 훌라를 추며 슬픔을 매만지고, 아픔의 농도를 희석한다.

훌라에 깃든 위로와 치유의 숨결이 <하날레이 해변>의 주인공 사치에게도 스며들면 좋았을 텐데 싶었다. 그랬다면 하와이 경관의 말처럼 아들을 자연의 순환 속으로 보내주기가 덜 힘들지 않았을까?
#보름달 #훌라 #무라카미하루키 #하날레이 #하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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