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의원연맹 주호영 국회부의장 일행이 류코쿠대학을 방문하여 안중근 의사 유묵 글씨를 관람하고 대학 관계자들의 연구, 교류, 학술 활동 업적을 치하했습니다.
박현국
류코쿠대학은 1997년부터 안중근 의사 유묵 글씨 세 점을 맡아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류코쿠대학 졸업생인 츠다(津田雅行) 스님이 자신이 주지로 일하는 절(浄心寺, 岡山県)에 안중근 의사 유묵 글씨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절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이후 츠다 스님은 자신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보다 대학에 기증하여 활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겠다고 여겨서 모교인 류코쿠대학에 맡겼습니다. 이후 2010년 다시 안중근 의사 글씨 한 점이 더해졌습니다.
츠다 스님은 자신의 작은 할아버지 츠다 준이치(津田海純)가 '교회사(敎誨師)'로서 일하던 여순 감옥에서 안중근 의사를 만나서 글씨를 직접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사'는 일본에서 1872년부터 시행되던 형무소 제도로서 일본 불교 스님 가운데 희망자를 모집하여 '교회사'로 임명했습니다. '교회사'는 관리 즉, 법무 공무원입니다.
일본에 여러 불교 종파가 있지만 교회사 제도에 참가한 스님은 주로 '정토계(淨土系)'였다고 합니다. 정토계 불교 종파는 불법승을 강조하는 정통불교에서 조금 벗어나 일본 사회 현실에 적응된 신흥 불교에 가깝습니다. 이 정토계 불교 사찰은 일본 현실 속에서 사람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지금도 교토 역 앞에 있는 히가시혼간지절, 니시혼간지 절이 중심입니다.
그때 교회사는 말 그대로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온 사람들을 회계시키는 것이 주 임무였습니다. 다만 안중근 의사는 형사범으로 나쁜 죄를 짓고 형무소에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안중근 의사는 국가와 민족, 동양 평화를 위해서 주모자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0-1909.10)를 저격했던 양심범입니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미군정 아래서 정교 분리 원칙에 따라 '교회사' 제도는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관리 즉 공무원이 아니고 자원 봉사 형태로 남아있습니다.
우리에게 안중근 의사는 독립 영웅입니다. 일본의 간악한 의도를 간파하고, 주모자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서 일제의 심장을 제거했습니다.

▲ 안중근 의사 유묵 글씨 ’독립’입니다. 이 글씨는 2010년 6월 히로시마 간센지(願船寺) 절 시타라 마사즈미(設樂正純)가 소장하고 있다가 대학에 기증했습니다. 이 글씨는 시타라 마사즈미의 조부 시타라 마사오(設樂正雄)가 뤼순 감옥에서 간수로 일하면서 안중근 의사에게 받았습니다.
박현국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중국 하얼빈 역에서 조선 통감을 역임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습니다. 이후 일본 정부는 형식적인 재판을 통해서 1910년 2월 14일 안중근에게 사형을 언도합니다. 한 달 뒤 3월 26일 안중근 의사의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일본 제국은 한반도와 만주에 진출하여 자기 세력을 넓혔고, 그 한가운데 이토 히로부미가 있었습니다. 이토의 마지막에 안중근 의사의 저격이 있었다는 사실은 일본 국사 교육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안중근 의사와 일본 사람이 인식하고 있는 안중근 의사는 다릅니다. 류코대학에서는 이러한 안중근 의사 유묵 글씨를 소장하고, '안중근 동양평화연구센터'를 만들어서 연구 교류 사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번 한일의원연맹 주호영 국회부의장은 한국과 일본의 인식 차이를 극복하고 일본 대학으로서 안중근 의사 유묵 자료를 소중히 보관하고 연구와 교류 사업, 교육 연구 활동을 지속해 온 학문적 업적을 높이 칭찬했습니다.
류코쿠대학에서는 봄 가을 안중근 의사 유묵 글씨를 도서관 전시실에 전시하여 학생들에게 소개합니다. 이번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방문에 맞추어 봄철 전시를 앞당겨 실시하고 있습니다. 류코쿠대학에서 소장하고 있는 안중근 의사 글씨는 모두 네 점입니다.

▲ 안중근 의사 유묵 글씨 세 점. 이 글씨는 츠다 가이준(津田海純)이 뤼순 감옥 교회사로 일하면서 안중근 의사에게 받았습니다. 이후 츠다 집안의 절에 보관하다가 손자인 류코쿠대학 졸업생 츠다 마사유키(津田雅行)가 류코쿠대학 도서관에 보관을 기탁했습니다.
박현국
獨立, 독립
戒愼乎其所不睹, 계신호, 기소부도, (뜻) 아무도 보지 않더라도 경계하라.(중용)
敏而好學, 不恥下問, 민이호학, 불치하문, (뜻) 그는 영민하고 배우기를 좋아하며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논어)
不仁者不可以久處約, 불인자불가이구처약, (뜻) 어질지 못한 사람은 오랫동안 곤궁에 처할 수 없고, (논어)
안중근 의사 유묵 글씨에는 모두 안중근 의사의 단지 동맹의 상징 수인이 찍혀 있습니다. 글씨에는 안중근 의사의 개성과 죽음을 앞둔 사형수로서의 결연함이 엿보입니다. 그 사형은 개인의 죽음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안중근 의사 유묵 글씨에는 한반도 독립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깊고 무거운 뜻과 삼천만 한겨레의 결연한 의지와 함성이 들려 오는 듯합니다.

▲ 한일의원연맹 주호영 국회부의장 일행이 류코쿠대학을 만나서 부학장, 도서관장, 안중근동양평화연구센터장들을 만나서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박현국
*참고 누리집> 류코쿠대학, https://shaken.ryukoku.ac.jp/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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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3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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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의원연맹 주호영 국회부의장, 일본 류코쿠대학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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