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고 한달 후인 2025년 1월 14일 고용노동부와 노사 합동 수시 감독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저는 현대제철에서 11년 동안 일해 온 노동자입니다. 그리고 전국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지회 부지회장이기도 합니다.
작년 12월 12일, 2020년부터 일터에서 50여 명의 동료를 떠나보낸 우리는 또다시 바로 옆의 동료를 잃는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그 동료를 다시 한 번 애도하며 현대제철 노동자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우리 제철소에는 철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농도의 CO가스(일산화탄소 가스)를 함유한 유독 가스가 이동하는 가스 배관이 약 30km에 걸쳐서 이어져 있습니다. 이 가스 배관이 온도 변화에 따라 수축·이완하며 파손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스테인리스 재질로 되어있는 주름관이 중간 중간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주름관이 2024년 11월 20일경에 길게 찢어졌습니다. 주름관은 특성상 용접이나 다른 보수가 불가능하므로 담당 관리부서는 사측에 교환 요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회사로부터 받은 지시는 주문 제작 기간과 공장 보수 기간을 고려하여 25년 4월경에나 교환이 가능하니 임시로 금속 접착제로 보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지시에 따라 보수를 진행한 결과, 12월 10일경 다시 파손되어 또 다시 같은 방식의 임시 보수를 했습니다.
사고 당일인 12월 12일에 그 동료는 혼자서 보수 부위 점검에 나섰다가 지상 6m 위 차디찬 배관 아래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사고 소식에 바로 현장으로 달려간 우리 노동조합 집행부들은 안전 담당 상무에게 산소 마스크도 착용했고 가스 감지기도 착용했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질문했지만 그 상무라는 사람은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했는지 아니면 가스를 마시고 마스크를 착용했는지 조사해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누군가 사망한 현장에서 꺼냈다는 것이 믿기 어려운 답변으로 노동조합의 분노만 사게 됐습니다.
또, 이후 도착한 전무가 아무리 자기 자신들 멋대로 만들어 놓은 인사법이라지만, 사고 현장에서 사무실 사람들에게 엄지 손가락 치켜들며 안전이라고 외치는 모습에, 우리가 과연 같은 회사에 다니며 같은 밥 먹는 사람들인가라는 생각에 좌절감마저 들었습니다.
노동조합은 이 사고는 우연히 발생한 게 아니며, 내일 당장이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전국금속노동조합과 충남지부, 전문가집단 그리고 재해 당사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측에 분노한 유가족과 함께 천안 고용노동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요구 사항을 밝히며 상황을 널리 알렸고 정확한 사고 내용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뒤 더욱더 분노가 치미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5개월이 걸린다던 부품이 불과 2주도 안 되어 교체되어 버렸습니다. 현대제철에서는 사람이 죽어야지만 바꾸고 고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죽지 않고 다치기만 한다면 다친 사람만 죄인으로 몰아가는 말도 안 되는 안전 수칙까지 있습니다.
현대제철이 과거에는 무재해 운동을 앞세워 산재 은폐에 급급하기만 했다면 현재는 SCR(Safety Core Rules 10대 핵심안전수칙)이라는 제도로 사측의 모든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며 노동자 징계에만 급급합니다. 사업주의 책임을 이행하지 않는, 기업 윤리가 실종된 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무재해 운동 때 일어난 일입니다. 부서 동료가 손등에 2,000도가 넘는 전로 슬래그 불똥이 날아와 화상을 입는 사고가 났습니다. 그런 화상 사고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기에 동료들은 재해자에게 화상 연고와 밴드만 붙이면 된다고 했지만 제가 보기엔 심상치 않아 보였습니다. 당시 노동조합 대의원이었던 저는 정밀 진단을 받아볼 것을 권유했고 재해자는 한강성심병원으로 방문해 피부 이식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가 현장에 이 사실을 알리자 돌아온 대답은 "메디폼만 붙이면 되는데 일 크게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재해 배수가 깨질 것을 우려한 회유와 압박이 이어졌습니다. 이런 식으로 과거 무재해 운동은 무재해 배수(무재해 지속 달성)를 앞세워 산재를 노동자 개인의 책임으로 돌렸습니다.
현재의 SCR 역시 문제투성이입니다. 회사는 어느 순간부터 작업장 모든 의자에 '손잡이를 잡고 의자에 앉으시오'라는 스티커를 붙이러 다녔습니다. 어떤 생산 현장에서도 볼 수 없고 사회 생활을 위해 배워야 한다는 유치원이나 학교 어느 곳에서도 하지 않는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운전실에는 붙이지 말라고 막으며 '스티커 붙인 의자에 앉다가 사고 나면 노동자 책임이고, 스티커 붙이지 않은 의자에 앉다가 사고 나면 사측 책임인 거냐'라고 따지니 아무 대답도 못 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이렇게 정작 중요한 설비 개선은 뒷전이고 SCR이라는 안전 규칙은 세세하게 노동자의 행위만을 문제 삼으며 책임을 물으려 합니다. 이러한 작은 것 하나까지 오로지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측의 무책임한 행태에 때론 치가 떨리기까지 합니다.
이번 사고로 노동조합과 고용노동부가 공동으로 전 공장 수시감독 그리고 SCR의 문제점을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노동조합은 다시 한 번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근로감독관들의 소극적인 감독 활동부터 실제로 사고가 났던 가스 배관은 감독 배제까지,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방해를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가 여러 차례 "더 이상 옆의 동료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 도와 달라"며 애원하다시피 했지만 '수시 감독에서는 장비가 없다', '근로감독관들의 안전도 중요하다'는 등의 이유로 다음 안전 진단으로 넘기겠다고 합니다.
안전진단이 고용노동부의 명령으로 내려오면 사측은 그때야 준비합니다. 사고 직후인 지금도 이런 지경인데, 나중에는 얼마나 정확히 검사가 될지, 실제 우리 노동자들이 원하는 대로 될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고용노동부는 'SCR은 노동자들의 안전 활동 참여를 위해 필수 불가결인 요소다. 그러나, 문제가 조금 있으니 이에 대해 수정하라'는 지시를 냈습니다.
사업주의 책임은 방기한 채, 노동자의 책임만을 묻는 이 SCR이 과연 아주 약간의 문제만 있는 건지, 이런 제도를 필수 불가결이라 해야 하는 건지 묻고 싶습니다. SCR을 폐기하고 노동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는 새로운 안전 수칙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가 앞장서서 사업주에게 유리한 길을 열어준 게 아닌지, 이를 빌미로 사측은 또 어떤 행태로 노동자들을 압박해 올지 앞으로가 더욱 걱정됩니다.
현재 사측은 개선된 안이라며 개정된 SCR 관련 서류를 들고 와 노동조합에 들이밀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의견은 배제한 채 노동자 일방의 책임만을 문제삼는 SCR이라면 없어져야 할 제도 아니겠습니까.
우리 노동자들은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으며, 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위해 사업주는 책임을 다해야만 합니다. 이는 법에 명시된 의무이기도 합니다. '더 이상 나의 동료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는 것이 그렇게 큰 바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이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현대제철이라는 거대 자본을 이기긴 쉽지 않습니다. 더 나은 일터와 삶을 위해 멈추지 않고 싸울 힘을 내려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이들이 우리를 지지하고 때론 함께 알리면서 응원해 준다면, 우리에겐 큰 힘이 될 겁니다. 노동자의 안전이 곧 시민의 안전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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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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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가 다치거나 죽어간 일터에서 우리는 꾸준히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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