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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살아온 마을에서 죽을 수 있을까?

[우리 동네 장례 이야기④] 충북 옥천 동이면 석화리가 그리는 마을요양원의 꿈

등록 2025.02.28 20:20수정 2025.02.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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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은 연결돼 있지만, 우리는 삶을 이야기할 때 그 끝의 죽음을 쉽게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이를 배경으로 장례, 지금은 거의 사라진 '마을 장례'의 기억을 더듬어봤습니다. 마을에서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어떻게 이웃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는지, 그 속에 어떤 정서와 가치가 있었는지 나눕니다. 더 많은 기사는 <월간 옥이네> 2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기자말]
충북 옥천군 동이면 석화리엔 170명 남짓한 주민이 거주한다. 대부분이 60대 후반 이상으로, 건강 악화로 인해 동네를 떠나는 주민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 '평생을 살아온 마을과 집이 아닌 낯선 병원·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이 나이대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이다. 이에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할 미래를 꿈꾸는 중이다. 이들이 함께 그리는 마을요양원 이야기를 지난 1월 22일 임덕현(62) 이장과 홍현희(63), 김미영(62)씨에게 들어봤다.

평생 살아온 집에서 가족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건 석화리 주민들만의 꿈은 아닐 터. 병원과 요양원의 등장으로 잃어버린 상호돌봄의 문화를 되찾을 수 있을지 이들의 고민을 통해 해답을 찾아보자.


마을을 떠나기 싫어서

 공동급식 시작 전, 봉숭아 물 들인 손끝을 자랑하는 주민들(2023년 7월 촬영).
공동급식 시작 전, 봉숭아 물 들인 손끝을 자랑하는 주민들(2023년 7월 촬영). 월간 옥이네

170명이 넘는 주민 중 60대 미만 주민은 10~15명 정도뿐. 주민 연령대가 높아짐에 따라 마을을 떠나 요양원에 입소하는 주민도 늘어났다. 2024년에는 2명의 주민이 마을을 떠났다고.

"마을 독거노인 가구가 15가구예요. 자제분들이 직접 모시기도 어렵고 건강 상태가 나빠지면 요양원을 택하게 되는 거죠. 어르신들이 마을을 떠나고 싶지 않아서 노력도 엄청나게 하시는데 쉽지가 않아요."

녹록지 않은 상황에 떠나는 주민의 마음도 무너지지만, 오랜 이웃을 떠나보내는 이들도 매번 속이 상한다.

"2020년에 태정숙(85)씨가 요양원 갈 예정이었어요. 마을 떠나기 전날에 '우리 마을 풍경 눈에 담고 가고 싶다'고 전동차를 끌고 동네 한 바퀴 도시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밭일 나갔다가 만났었는데, 그때 양손 붙들고 엄청나게 울었죠." (홍현희씨)


 '음양이 조화로운 돌꽃마을' 충북 옥천군 석화리.
'음양이 조화로운 돌꽃마을' 충북 옥천군 석화리. 월간 옥이네

그러나 요양원 입소 전날 코로나 확진을 받으며 계획이 무산, 마을에 조금 더 머무르게 되며 건강을 더 챙기기로 의지를 다졌단다.

"다리가 불편한 분이셔서 공동급식 할 때 도시락 배달 해드리는 주민 중 한 분이셨어요. 코로나19 앓고 회복한 이후로는 매일 걷기 운동하시고, 공동급식하러 쉼터까지 오시더라고요. 조금이라도 더 움직여서 건강해져야겠다면서요."


이후 4년을 마을에서 더 지내던 태정숙씨는 지난해 결국 마을을 떠나 요양원으로 향했다. 임덕현 이장은 "나름 건강을 유지하던 분들도 요양원에 가시면 예상보다 빨리 건강이 나빠졌다는 소식을 듣곤 한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아무리 요양원 시설이 깔끔하고 좋다지만,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많이 힘들어하시더라고요. 아무래도 마을에 있으면 집을 가꾸거나 이웃들과 왔다 갔다 하며 지낼 수 있는데, 요양원에 들어가면 다 단절되어 버리니까요."

'마을요양원'을 꿈꾸다

 충북 옥천군 석화리 석화노인회관 모습.
충북 옥천군 석화리 석화노인회관 모습. 월간 옥이네

한평생 살아온 터전을 떠나고, 또 늘 곁을 지켰던 이웃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나누며 임일재 전 이장을 중심으로 마을요양원에 대한 이야기가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추상적인 바람이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2022년 옥천군 마을공동체활동지원사업 참여를 준비하면서부터다.

"사업을 준비하면서 회의를 하다가 마을요양원 이야기가 나왔어요. 주민들이 계속 우리 동네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시작됐죠. 다들 마을 떠나기를 싫어하니 마을 땅에 요양원을 만들면 마을 밖, 연고 없는 타지 요양원이 아니라 우리 마을에 있는 요양원에서 지낼 수 있지 않겠냐고요."

1층은 주방과 식당, 운동을 할 수 있는 공용공간으로, 2~3층은 입주자들의 주거시설로 마련하는 것이 석화리의 구상이다. 일반적인 요양원 운영과의 차이점은 마을과 요양원, 그리고 집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게 한다는 것.

"주거는 1인 1실을 기본으로 하고요. 요양원이 마을에 있으니까 꼭 요양원에서만 생활하지 않아도 돼요. 입주를 원하지 않는 분은 본인 집에서 지내고, 입주하시더라도 집에 가고 싶은 날엔 집에 갈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러면 요양원 생활을 답답하게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충북 옥천군 석화리 경로당엔 찜질방 시설이 있다. 여자 주민들이 이용하는 홀수날 저녁엔 특히나 붐비곤 한단다.
충북 옥천군 석화리 경로당엔 찜질방 시설이 있다. 여자 주민들이 이용하는 홀수날 저녁엔 특히나 붐비곤 한단다. 월간 옥이네

전 부녀회장을 맡았던 홍연희씨는 2013년, 치매가 있는 시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지난해부터는 오전 시간에 짬을 내어 요양보호사로도 일하고 있는데, 그는 "마을요양원이 생겨 주민들을 돌볼 날이 기대된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부모님 요양으로 시작했는데, 돌봄을 하다 보니 그 시선이 다른 주민들에게까지 닿더라고요. 앞으로 우리 마을에 요양원이 생겨서 요양보호사로 활동할 수 있게 된다면 열심히 해야죠."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거나 일을 하는 주민은 홍연희씨를 포함해 5명. 그러나 요양원에 필요한 인력은 요양보호사로 충분하지 않았다. 이에 김미영 씨는 2022년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따기에 이른다.

"마을에 요양보호사 일을 할 수 있는 분은 계시는데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는 분은 없더라고요. 그래서 마을요양원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 공부를 시작했어요. 공부 자체도 쉽지 않았는데, 당시 코로나19가 유행해서 실습처 구하기가 참 힘들었죠. 그래도 명확한 목표가 있으니까 힘을 낼 수 있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꾸준히 함께하는 일

 충북 옥천군 석화리 '오다가다 쉼터'.
충북 옥천군 석화리 '오다가다 쉼터'. 월간 옥이네

마을요양원에 대한 주민들의 호응과 기대도 크다. 하지만 당장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건 경제적인 부분 때문이다.

"마을회관이나 경로당 같은 시설을 지을 때는 건축비 일부를 지원받을 수 있어요. 마을요양원도 동네 주민들이 함께할 수 있는 시설이니, 관련 지원 정책이 있는지 찾아봤는데 정말 하나도 없더라고요."

이에 석화리 주민들은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공동급식이다. 공동급식은 마을 자체 예산으로 운영 중이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같이 점심을 먹어요. 거동이 불편한 분들께는 도시락 배달을 가고요. 필요한 재료는 농사지은 작물을 많이 활용하고, 식사 준비는 부녀회에서 자원봉사로 도와주고 계시죠."

 어르신 생일잔치의 모습.
어르신 생일잔치의 모습. 월간옥이네=임덕현이장 제공

임덕현 이장은 "함께 하는 감각이 있어야 훗날 마을요양원이 정말 실현 가능해졌을 때 계속할 힘이 생긴다"며 "공동급식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활동을 꾸준히 만들어 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석화리는 3년 전부터 마을 전체가 참여할 수 있는 가을 여행을 기획해 충남 보령, 충남 태안 안면도, 경남 사천을 다녀왔다. 지난해부터는 어르신 생일잔치도 시작했단다.

"웃말(석화리는 굴다리를 사이에 두고 웃말과 아랫말로 나뉘어 있다)에는 어르신 스무분이 계세요. 자제분들이 타지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으니 어르신들 대부분이 생일 당일에 식사도 제대로 안 챙겨 드시더라고요. 그래서 경로당에서 미역국이랑 간단한 음식을 준비해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올해부터는 아랫말 경로당에서도 해보려고요."

마을을 위한 애씀을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석화리 주민들의 바람은 60대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어려운 때가 오기 전에 마을요양원의 기틀을 잡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마을을 떠날 걱정이 없을, 그날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석화리는 오늘도, 내일도 모이기를 게을리하지 않을 테다.

 마을 공동텃밭에서 재배한 밀로 빵을 만들기도 한다.
마을 공동텃밭에서 재배한 밀로 빵을 만들기도 한다. 월간옥이네=임덕현이장 제공

한편 지난해 3월,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돌봄통합지원법)'이 제정되며 옥천에서도 노인 통합돌봄체계 구축을 위한 움직임이 생기고 있다. 돌봄통합지원법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주민(노인, 장애인 등)이 자신의 생활권에서 건강하고 자립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자 제정됐다.

돌봄통합지원법(제4조)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통합지원 대상자가 필요에 따라 의료기관과 사회복지시설 등에 입원 또는 입소하여 이용한 이후에도 자신이 살던 곳을 중심으로 끊김없이 필요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재가 완결형 통합지원 연계 체계를 마련'하는 등 '생활권 단위의 통합지원 생태계를 조성'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옥천군 행정복지국 노인복지과 김기성 주무관은 "다가오는 3월부터 통합돌봄 사업을 이미 운영하는 지자체를 방문해 옥천의 특성에 맞는 부분을 벤치마킹해 갈 예정"이며 "방문의료 상담 및 진료와 같은 의료 서비스를 중점으로 사업을 구상해 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옥천군의회 송윤섭 의원은 "주민들이 요양시설로 옮기게 되더라도 전혀 낯선 곳이 아니라 내가 살던 지역에 있는 시설에, 안면이 있는 요양사라면 덜 외로울 것 같다고 말씀하시곤 한다"며 "이러한 바람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면 단위 통합돌봄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송 의원은 "통합돌봄체계는 한두 분야의 돌봄이 각기 이뤄지는 게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부터 먹거리, 의료 등 전체적인 돌봄 시스템과 수행 주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는데,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복지체계가 정착되려면 행정 주도의 복지정책과 민간 자치 영역의 활동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23년 7월 석화리 풍경.
2023년 7월 석화리 풍경. 월간 옥이네

우리 마을은 우리가 돌본다 - 안남돌봄연대
돌봄 시설 및 서비스의 공백은 결국 마을 밖으로 주민을 내보내고 만다. 고령화된 농촌 마을에서 이러한 돌봄의 공백은 흔한 고민거리다. 이 오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안남면에서는 농림축산식품부 '농촌 돌봄서비스 활성화 지원사업'에 참여해 '안남돌봄연대'를 조직했다.

지난 2024년 5월 출범한 안남돌봄연대는 안남면에서 활동하는 6개 단체(∆옥천아는사람 협동조합 ▲정주여건 ∆안남일하는사람 사회적협동조합 ▲생활복지 ∆안남배바우 작은도서관 ▲교육문화 ∆안남두레상 사회적협동조합(준) ▲생활복지 ∆안남면 지역사회 보장협의체 ▲서비스 대상자 발굴 및 연계 ∆옥천마을미디어 사회적협동조합 ▲성과자료 제작 및 발간)가 연합해 조직, 안남면 12개 마을에 다양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안남돌봄연대는 독거노인 및 취약계층을 위한 소규모 집수리, 반찬 배달, 이불빨래 서비스는 물론 아동들을 위한 캠프와 모든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공동텃밭 경작도 진행한다. 윤성희 돌봄반장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주민이 주민을 돌보는 농촌 돌봄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이라 밝혔다. 안남돌봄연대는 다가오는 4월부터 본격적인 2년 차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월간옥이네 통권 92호(2025년 2월호)
글 사진 이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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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마을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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