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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지 들고 수중 발레, 날기까지... 청둥오리도 새였구나

산책 중 만난 겨울철새 청둥오리... 그냥 그 자리에 계속 있어줬으면

등록 2025.02.24 12:04수정 2025.02.2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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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추위가 매화꽃보다 더없이 화사한 아침, 금강과 인근 늪이 하얗게 얼어 붙어있고, 마른 갈대들은 검푸르게 흐르는 강을 감싸 안는 듯하다. 온 강과 대지가 반짝반짝 제빛을 낸다. 물 위로 무리를 지은 새들이 참으로 힘있게 헤엄친다. 며칠 전 금강변 산책을 하다 신비한 풍경을 만났다.

진주목걸이를 두른 듯 하얀 띠와 염색으로도 본뜨기 힘든 맑고 진한 청록색 머리. 언 강 사이로 도널드 덕처럼 몽글몽글한 꽁지를 있는 대로 하늘로 쳐들고 고개를 물속에 처박는다. 먹이활동, '자맥질'을 하는 것이다. 단체로 꽁지를 쳐들고 물속으로 뒤집어지는 모습은 혼을 쏙 빼놓을 만큼 아름답고 신비하다.


사람 같으면 물구나무서기 하다 자빠지기라도 할 텐데, 이 녀석들은 뒤집어지지도 물속으로 고꾸라지지도 않는다. 어찌 저리 균형감이 좋을꼬. 지금의 수중 발레가 여기에서 나왔는지도 모른다. 이 힘 있고 색감이 좋은 새는 누굴까.

세계에서 가장 흔한 철새 중 하나인 청둥오리다. 우리가 아는 집오리의 조상이란다.

먹이 활동하는 청둥오리 '자맥질'이라는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 영락없는 수중발레다.
먹이 활동하는 청둥오리'자맥질'이라는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 영락없는 수중발레다.pixabay

"이동? 그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야."
"연못에서 잘 살아, 안녕"

텃새가 되어 버린 아빠 청둥오리와 작별 인사를 하는 다른 철새들. 오리 가족을 다룬 애니메이션 영화 <인투 더 월드(2024)>의 한 장면이다.

아직은 곁에 있는 청둥오리떼 봄추위인듯 겨울인듯 하다. 눈이 아직 쌓여있는 금강변에 청둥오리떼가 힘차게 헤엄을 친다.
아직은 곁에 있는 청둥오리떼봄추위인듯 겨울인듯 하다. 눈이 아직 쌓여있는 금강변에 청둥오리떼가 힘차게 헤엄을 친다.김은아

어머나! 청둥오리가 날 수 있다니! 나는 청둥오리가 난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청둥오리를 음식으로(!) 먹어보기도 했던 나로선 조금 충격이었다.


같은 오리지만, 집오리는 살집이 더 많고 날개도 짧아 푸다닥거리기만 할 뿐 날지 못하는 '가축'이다.

반면 청둥오리는 철새다. 날개가 더 크고 몸은 훨씬 작다. 장거리 비행을 위해 최적화된 것이다. 해마다 약 8000km나 이동을 한다. 추운 겨울에는 한국에서 월동을 하고, 봄이 되면 먼 시베리아로 떠난다.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의 걸작이다.


요즘에는 떠나지 않는 청둥오리도 있다 한다. 기후 변화로 겨울이 따뜻해지고, 도심 하천에서 사람들이 먹이를 주니, 아예 눌러앉아 '텃새'로 살아가기도 한다. 영화 속 아빠 청둥오리처럼 말이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흰뺨검둥오리와 같은 다른 물새들과 서식지를 두고 경쟁을 해야 하고, 개체 수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수생태계를 교란할 수도 있다.

배설물이 늘어나면 하천의 부영양화로 녹조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고, 조류 인플루엔자(AI) 같은 전염병의 매개체가 될 위험성도 높아진다. 단순한 자연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의 개입이 낳은 결과일지도 모른다.

보호 대상 야생 동물인 청둥오리

청둥오리는 야생동·식물보호법에 따라 보호 대상 야생 동물로 분류되어 있다. 불법 포획 시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식당에서 파는 청둥오리는 농장에서 사육된 것으로 야생 오리와는 다르다. 일상에서 우리가 철새인 기러기나 청둥오리를 떠올릴 일은 거의 없다. 아주 특별한 이색 맛집으로 알려지거나 건강에 아주 특별한 효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청둥오리는 흔하디 흔한 철새가 맞다. 아직은 멸종될 가능성도 매우 희박하다. 그러나 살겠다고 그 머나먼 거리를 날아와 우리 곁에서 머물며, 차디찬 강물 속에 머리를 처박고 넘어질 듯한 자세로 꽁지를 하늘로 쳐드는 그들의 모습. 찬찬히 들여다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다.

아무리 철새의 운명이라지만 그 작은 날개를 몇 번을 저어야 여기까지 날아올 수 있을까. 인간처럼 서사를 사랑하는 존재도 없다. 어릴 적 들었던 이야기나 동화는 커서도 잊히지 않는다. 닐스의 모험이나 인어공주처럼 말이다. 이는 마치 열기구를 타고 붕 떠서 몽글몽글한 핑크빛 푸른 구름 사이를 다니는 것 같은 행복함과 포근함 때문 아닐까?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에 한 번쯤 눈과 귀를 내어줘도 되지 않을까?

100년이 넘은 세월 동안 각종 주방용품의 여백까지 점령한 개구쟁이 토끼 피터 래빗, 불가사리 모양의 오렌지색 두 발로 꽁지를 한껏 치켜들고 짜우뚱 짜우뚱 걷는 오리, 도널드 덕 등은 최고의 동물 스타들이다. 실제 그들을 만난다면 친구가 되고 싶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느껴지는 법이다.

악동 닐스는 처음엔 거위 '모르텐'을 장난감처럼 여기며 무척이나 괴롭혔다. 마법에 걸려 작아진 후 모르텐 등에 업혀 하늘을 날면서, 그가 얼마나 소중한 생명이자 친구임을 깨닫는다. 이제야 비로소 모르텐과 가까워졌는데, 마법에서 깨어나려면 모르텐을 추수감사절 식탁에 통구이로 올려야 한다.

"그럴 수 없어요. 모르텐은 제 친구란 말이에요."

이들의 존재가 인간에게 직접 도움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존재 자체가 중하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잘 살아주면 된다. 청둥오리가 없다면 생태계가 어떻게 되겠는가.

그들이 없는 황량한 강가를 상상해 보라. 지금 떠날 채비를 바삐 하고 있다. 그들의 중요성을 깨닫고 다시 보려 할 때는, 이미 그들은 떠나버린 뒤일지도 모른다. '단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늘 곁에 있었는데'라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로가 되는 말은 "그저 지금처럼 있어주면 돼"이지 않을까?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 그 자체가 어쩌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희망인지도 모른다.









#청둥오리 #낭만도시 #철새 #금강 #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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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있는 공간구성을 위해 어떠한 경험과 감성이 어떻게 디자인되어야 하는지 연구해왔습니다. 삶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을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것이 저의 과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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