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솥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안에 걸린 양은솥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정진동은 기존 선거가 금권선거였다고 비판하며 돈 안 쓰는 선거를 치르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통합선거법의 '돈은 묶고 말은 푼다'는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을 위해 민중 선교를 해온 정진동에게는 금권선거를 치를 돈이 없기도 했다.
청주도시산업선교회 내에 차려진 선거캠프의 총지휘는 김재수가 맡았다. 조직 박영호, 홍보 이광희, 정책 권오철, 사무장 김태평이 맡았다. 홍보팀 내에 전화 홍보반이 만들어졌다. 청주산선 1층에 전화기가 여러 대 설치됐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청주시장 무소속 정진동 선거운동 사무실입니다." 정진동 후보의 인지도를 높이고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마련된 전화 홍보반은 별도의 칸막이도 없이 운영됐다. 아침부터 초저녁까지 전화기는 쉴 틈이 없었다. 통화 중간중간에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전화 홍보를 하는 이들 대부분이 아이를 둔 엄마였기 때문이다.
아이가 운다고 해서 먼저 건 전화를 끊을 수는 없는 법. 옆에서 아이는 울고, 정진동 후보의 정책을 알려야는 겠고 죽을 맛이었다. 하루종일 아이와 전화기와 씨름을 한 전화 홍보반원들에게 주어지는 보수는 하나도 없었다. 순전히 자원봉사이기 때문이다.
청주산선 앞의 중앙여고 정문에는 작은 팻말을 꽂은 10여 대의 자전거가 있었다. "시민후보 정진동" "참일꾼 정진동" "청주를 푸르게" 홍보팀장 이광희의 얼굴은 새카맣게 탔다. 그는 "충북대학교와 복대초등학교를 거쳐 가경동까지 갔다 오겠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한 바퀴 돕시다"라고 제안했다.
이광희가 탄 자전거가 움직이면서 10여 대의 자전거가 뒤를 이었다. 이광희가 "시민후보"라고 외치면 뒤따르는 이들이 "정진동"을 연호했다. 자전거 유세단은 가는 곳마다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기존 후보들이 정장과 한복을 입은 유급 선거운동원 십여 명을 대동하고 거리를 휩쓸 때 정진동은 수행하는 이가 고작 1명이었다. 대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자전거 유세단을 운영했다. 작은 팻말을 꽃은 자전거 10여 대가 움직이면 누구나 "정진동 후보구나"라고 인식했다. 자전거 유세단원 역시 무급이긴 마찬가지였다.
충북여성민우회 최미애 대표는 열성적인 자원봉사자였다. 팔을 걷어붙이고 피켓을 만들었다. 선거 홍보 회의를 할 때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다. 주어진 일은 뭐든지 열성이었다. 아니 주어진 일이 아니더라도 정진동 목사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매사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준비된 원고는 '무용지물'

▲선거운동 지하상가 앞에서 홍보물을 나눠주는 선거운동원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청주 실내체육관 앞 계단에는 수백 명의 정진동 지지자가 운집했다. '청주시장 후보 정진동 선거 출정식' 현수막이 걸리고 무대가 설치됐다. 계단에 앉아 있는 참석자들의 얼굴은 상기됐다. 노동자-민중의 후보가 청주시장 선거에 도전장을 내밀었음을 시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내빈의 축사에 이어 이날의 주인공 정진동이 소개됐다.
"존경하는 청주시민 여러분~"으로 시작된 정진동의 출사표는 장중했다. 자신의 정견을 발표하는 정진동의 머릿속에는 청주시청 청소부들의 투쟁과 1988년도 택시 총파업이 스쳐 갔다. 그리고 민주화운동의 제단에 바쳐진 장남 법영의 해맑은 웃음도 이어졌다.
투쟁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가면서 정진동은 '민중을 위한 청주시장'이 되겠다고 말을 맺었다. "정진동"을 연호하는 지지자들의 목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커졌다. 땅거미가 어둑어둑해지는 초저녁 청주실내체육관 앞 계단에는 민중후보 출마라는 흥분과 감동이 어우러졌다.
6월 13일과 17일에는 각각 청주시민회관(현재의 청주아트홀)과 중앙공원에서 개인 연설회를 했다. 중앙공원에서는 충북여성민우회 최미애 대표가 찬조 연설을 했다. 최미애는 정진동 목사의 활동을 조근조근 설명하며 "노동자와 서민을 내 몸 같이 생각하는 정진동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말을 맺었다. 차분한 그의 연설은 중앙공원에 쉬러 온 시민들에게 울림을 줬다.
6월 18일 한벌국민학교에서 열린 합동연설회는 선거운동의 절정이었다. 여섯 후보가 동원한 지지자뿐만 아니라 관심있는 시민들이 운동장을 꽉 채웠다. 후보들이 입장을 했을 때였다.
후보 연설문을 작성한 권오철은 정진동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근접 수행했다. 그런데 먼저 와 있던 김현수(1937년생) 후보가 꾸벅 인사를 했다. "목사님. 잘 지내셨어요?" 1970~80년대 야당투사이자 1995년 당시에는 자민련(자유민주연합)으로 출마한 김현수는 존경의 마음을 담아 정진동에게 인사를 했다.
연단에 오른 정진동은 준비된 유세문 원고를 읽어나갔다. 출마 이유와 10대 출마 공약이 이어질 상황이었다. 행정청문회 개최, 경제정의 실현에 이어 사회복지예산 대폭 확대가 말해질 차례였다.
하지만 정진동의 연설은 원고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의 평소 지론이 거칠고 투박하게 표현됐다. 유세문을 작성한 권오철의 얼굴은 붉어졌지만 운동장에 앉아 있던 청중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정진동의 진심이 다른 후보 지지자들에게도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밥상공동체

▲밥상공동체 선거운동원들이 식사하는 모습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자전거 유세단이 다리를 절뚝이며 청주산선 철문을 열자 구수한 냄새가 진동했다. 큰 가마솥에서 밥 익는 냄새였다. "아이고! 고생했어요!" 자전거 유세단을 반기는 이들은 취사반장 김영애였다. 김영애와 청주산선 교인들은 선거운동 기간 점심과 저녁을 준비했다. 밥, 김치, 국이 전부였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난 밥상이었다. 등나무 아래 나무 의자에서 동태국과 밥을 받아든 자전거 유세단은 순식간에 그릇을 비웠다.
정진동 선거캠프는 전부 자원봉사로 운영됐는데, 유일하게 제공되는 것이 있었다. 하루에 밥 두 끼였다. 60~70명이 청주산선 1층과 2층, 그리고 마당에서 밥을 먹으며 그날 있었던 일화를 이야기했다.
투표 결과 정진동은 1만1614표를 얻었다. 사실 선거 목표는 애초부터 당선이 아니었다. 선거를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그렇더라도 정진동이 얻은 표는 함께한 이들에게 서운한 수치였다. 하지만 정진동은 "민중을 위한 정치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할말을 다했기에 후회가 없다"고 자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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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정치(?) 목사'의 선거 출마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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