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최근 동아시아연구원(EAI)에서 조사한 '조용한 중도층은 무엇을 원하나' 리포트에 포함된 여론조사상 응답자의 이념 분포도.
동아시아연구원(EAI) 제공
-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도는 전체 유권자의 몇 %인가?
"46.4%로 절반에 가까웠다. 조사할 때 자신의 이념 성향을 0~10 중 선택하도록 하고,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이재명 후보 중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를 기준으로 보수, 진보로 구분했다. 0~2와 3~4는 각각 강성, 온건 진보, 5 가운데 이재명 후보에 투표한 이들을 중도 진보, 윤석열 후보에 투표한 이들을 중도 보수로 나눴다. 또 6~7은 온건 보수, 8~10은 강성 보수로 분류했다. 그중 스스로 중도(5)라고 언급한 이들이 가장 많았다."
- 그렇다면 계엄 사태 이후 줄곧 대통령 옹호에 나섰던 국민의힘은 전체 보수층이 아닌 강성 보수층만의 목소리를 대변해 왔다는 건데 왜 그랬다고 보나?
"최근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수도권에서 거의 전멸한 게 굉장히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수도권 민심은 예민하다.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데다 중도층도 제일 많다. 그런데 국민의힘 의원 대부분이 TK(대구·경북) 출신이 많지 않나. TK쪽 지지자들 중에는 아무리 계엄이 잘못됐더라도 '그렇다면 이재명은 잘했냐' 하는 정서가 크다. TK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일수록 그런 주장에 익숙할 수밖에 없다.
판세 자체도 잘못 읽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 역시 궁금했다. 계엄 사태 이후 왜 김문수, 홍준표가 뜨고 오세훈, 한동훈은 지지도가 낮게 나오는지 말이다. 그래서 조사해본 결과, 상대적으로 중도층들은 정치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정치 참여에도 적극성이 약한 데다 정치 효능감도 낮았다. '내가 말한다고 바뀔까' 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중도층은 전화 여론조사에 적극 참여를 안 했다. 여론조사에 극단적인 이들 의견이 과대 표집된 측면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도 최근 조사 결과 보도가 나가면서 이제야 정치권에서도 중도층에 관심을 두게 됐다."
'나 정도의 사람은 정부가 하는 일에 어떤 영향을 주기 어렵다'는 항목에 대해 온건 보수와 중도 보수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효능감이 확인되었다. 결국 내적 정치 효능감과 관련하여 중도층이 상대적으로 낮은 효능감을 보인다고 할 수 있으며, 특히 중도 보수의 효능감이 낮게 확인되었다.
- 동아시아연구원(EAI) '조용한 중도층은 무엇을 원하나' 보고서 중
- 그렇다면 탄핵 인용을 전제로, 그동안 윤 대통령을 보호해 왔던 국민의힘의 행태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보나?
"그렇다.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결정이 나면 국민의힘 같은 수권 정당이 '못 받아들인다'고 할 수는 없다. 국민의힘은 지금 어떤 측면에서는 결정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재명 대표를 이기기 위해, 현 국면을 '슬슬 정리해야 한다'고 여기지만 여전히 핵심 지지층이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중도층 내에서는 민주당에 뒤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기존의 강도 높은 말만 하기는 애매해졌다. 결정이 나오면 '결과를 받아들이고 이재명을 이기겠다'며 강성 지지자들을 설득하고 나설 것이다."

▲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2월 25일 서울 종로구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민
- 그런데 지난 2월 24일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 결과에서는 '여당이 정권을 연장해야 한다'와 '야권이 정권 교체를 해야 한다'가 오차 범위 내였다. 현재 중도·온건 보수층의 마음은 어디에 있다고 봐야 할까?
"먼저 알아야 할 부분이 있다. 지금껏 정치 양극화는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가 두 축이었다 그래서 지금 중도층도 어느 한 쪽으로 가지 못한다. 그런데 탄핵이 인용되면 어떨까? 완전히 새로운 경쟁 구도가 펼쳐질 것이다. 정치 양극화의 한 축이 빠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 누가 들어올지 알 수 없다. 홍준표나 김문수가 될 수도 있지만 오세훈이나 한동훈이 될 수도 있다. 만약 국민의힘 후보가 선거 국면에서 윤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또 계엄 사태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차별화를 시도한다면 새로운 경쟁 구도가 생길 수 있다. 중도·온건 보수층의 표심도 달라질 수 있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몇 번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세 하위 집단(강성보수·온건보수·중도보수) 모두에서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등 각 정당보다 윤석열이나 이재명의 이념적 위치가 더 극단에 가깝다고 판단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국민의힘이나 민주당 모두 윤석열, 이재명보다 상대적으로 온건한 입장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정치적 양극화의 원인을 두 정치 지도자에게서 찾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 동아시아연구원(EAI) '조용한 중도층은 무엇을 원하나' 보고서 중
- 어떤 사례였나?
"이회창 전 국무총리도 김영삼 전 대통령 때 외환위기로 민심이 나빠지자 차별화로 부각된 인물이다. 당 이름도 신한국당에서 한나라당으로 바꿨다. '이인제'라는 인물만 없었다면 대통령이 될 만큼 득표율이 나왔다. 아마 앞으로 국민의힘 후보들도 상당한 수준의 차별화를 할 거라고 본다. 특히 오세훈이나 한동훈처럼 계엄 당시 명확한 반대 뜻을 냈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말이다."
- 그렇다면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홍준표 대구시장은 어떤 자세를 취할까?
"당내 경선 승리가 급한 만큼 일단은 주요 지지층에 호소하는 메시지를 낼 텐데 그렇게 해서는 본선에서 중도 확장이 어렵다. 그러면 지는 거다. 윤석열 프레임이 남아 있는 한, 보수가 이기기는 어렵다고 본다."
'나도 보수'라는 민주당...이재명에게 필요한 것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국회-정부 국정협의회 첫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극우라고 몰아붙이고 스스로 중도보수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런 시도가 조기 대선 국면에서 중도·
온건 보수의 표심을 끌어오는 데 좋은 영향을 미칠까?
"우선 '중도 보수'라는 말은 정치적 수사겠지만 도움은 될 수 있다. 다만 이 대표의 가장 큰 문제는 신뢰감이다. 최근 메시지를 바꾸는데 이를 달리 말하면 또다시 쉽게 말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보다는 차라리 왜 우클릭을 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게 낫다. 단순히 표심 때문이 아니라 정치·사회적 분열과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라고 설득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이다. 그런데 요즘 이 대표는 큰 틀에서의 변화라기보다 정책을 전술적으로 이 영역에서는 이렇게 맞추고 저 영역에서는 저렇게 맞추고 있다. 나라를 운영하기 위한 큰 비전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은 어떻게 달랐나?
"본인이 갖은 억압을 받았는데도 모두를 끌어안은 사람이다. 국내 정책 관련해서도 큰 틀을 제시했기 때문에 안정감을 줬고 변화의 메시지를 냈다. DJP 연합(김 전 대통령과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가 맺은 연합)으로 권력도 공유했다. 경제·사회 영역은 모두 보수 진영인 자민련에 맡기지 않았나. 장관들과 경제부총리, 비서실장까지 모두 자민련에서 나왔다. 통합을 위한 노력에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이런 모습을 이 대표가 보여줘야 한다."
- 이 대표도 최근 김부겸 전 국무총리,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박용진 전 민주당 의원과 만나면서 당내 통합 행보를 하고 있는데.
"이 대표 역시 의견이 다른 이들을 포용하겠다는 뜻으로 이런 행보를 하는 걸로 보인다. 문제는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이다. 나중에 이재명 정부가 탄생해도 그들이 중책을 맡을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있을까? 국민들이 쳐다만 보는 것 같아도 사실은 그 진정성을 읽고 있다."

▲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중도보수' 전략에 대해 "왜 우클릭을 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게 낫다"면서 "단순히 표심 때문이 아니라 정치·사회적 분열과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라고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민
- 이재명 대표가 '먹사니즘', '잘사니즘' 전략을 내놓았는데.
"글쎄. 어쩐지 1960~70년대 '잘 살아보세' 느낌이 난다. 그런데 지금은 산업이 상당히 고도화됐다. 미-중 갈등도 심화되고 청년 문제도 심각하고 굉장히 난제가 많다. 단순히 '먹사니즘'을 내놓는 건 유권자들에게 와닿기 쉽지 않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광우병 사태 때 이렇게 말했다. 국민들이 '값싸고 맛있는 소고기를 배불리 먹으면 좋아할 줄 알았다'고 했다. 그때도 국민들은 그 이상의 가치인 '건강'을 원했기 때문에 길거리로 나섰다. 이 대표의 '먹사니즘' 또는 '잘사니즘'은 소위 돈을 많이 벌게 해주겠다는 메시지인 셈인데 우리 사회가 당면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너무 낮은 단계의 이야기다."
- 이 대표가 주장하는 '중도 보수' 정체성이 민주당의 기존 지지자, 즉 '집토끼'에게도 영향을 줄까?
"그건 영향이 없다고 본다. 대선 국면에서 후보자 구도가 1:1이 되면 상대 후보에 대한 적대감이나 불신 때문에 각 당 지지자들은 원래 있던 자리로 들어온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이 대표가 점점 오른쪽으로 가는 건데, 결국은 중도의 선택이 중요하다. 그들을 설득하려면 단순한 립 서비스보다 진정성 있고, 정책 사이에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정치력도 중요하다. 낮에는 여당과 싸우더라도 물밑 협상은 계속해야 한다. 민주당이 국회에서 협상이 안 될 때 '우리끼리 하자'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더 큰 권한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만들고 있다."
"한국의 중도보수, 화해와 통합 원한다"

▲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2월 25일 서울 종로구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민
- 그렇다면 '조용한 중도층'이 다음 정권에 바라는 가장 큰 요구사항은 무엇일까.
"화해와 통합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부터 사회가 두 쪽이 났다. 심지어 요즘 벌어지는 극단의 갈등에는 내용이 없다."
- 그게 무슨 뜻인가?
"'그냥 상대방이 싫다'는 감정적 혐오만 있다는 뜻이다. 굉장히 소모적이다. 그래서 다음 정부에서는 통합이 매우 중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승자 독식의 형태로 일방주의적인 국정 운영이 돼선 안 된다. 그러면 갈등과 혼란은 더 확산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개헌도 필요하다. 선거에서 이긴 한 사람이 A부터 Z까지 모두 결정하는 시스템은 낡았다. 이제는 대통령 권한을 줄이고 중앙정부가 틀어쥐고 있던 권한을 지방정부에 내려보내는 등의 권력 분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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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택의 중도층 분석 "국힘 판세 잘못 읽어...윤석열 있으면 집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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