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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5.02.26 17:44수정 2025.02.26 17:44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몇 년 전, 십이지장 궤양으로 꽤 오랜 시간을 고생한 적이 있었다. 그때 동네 내과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게 절대 먹지 말아야 할 음식들과 더불어 일종의 생활수칙들을 손수 메모지에 적어주셨다.
나는 그 메모지를 항상 지갑 안에 휴대하고 다녔다. 수시로 메모를 펼쳐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먹지 말아야 할 것들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철저히 확인했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건 3가지 정도다. 식사량을 줄이고 밀가루를 멀리해야 하며 최대한 천천히 먹으라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빨리 낫고 싶은 마음을 꽤 단호하게 먹었다. 무조건 평소 먹던 밥의 양에서 절반만 먹었다. 덕분에 식당에 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내게 배정된 공깃밥의 절반을 덜어내는 일이었다.
밀가루로 된 음식은 최대한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런데 꽤나 힘들었다. 그때까지는 몰랐다. 우리가 먹는 음식 중 대부분이 밀가루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심지어 어묵은 괜찮겠지 했는데, 99% 어육으로 만든 프리미엄 상품이 아닌 이상 그것 역시 밀가루가 잔뜩 들어간 음식이었다.

▲ 식사량을 줄이고 밀가루를 멀리해야 하며 최대한 천천히 먹으라는 것(자료사진).
alphabetania on Unsplash
3가지 중 제일 힘든 건, 천천히 먹는 것이었다. 나 역시 어엿한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온 평범한 직장인이었기에 늘 빨리 먹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10분 컷으로 늘 식사를 끝내던 나에게 최소한 30번 씹고 넘기라는 건 엄청난 곤욕이었다. 이 부분을 고치는 게 가장 오래 걸렸다.
처방받은 약을 복용하고 위의 3가지 수칙을 지키니 어느새 궤양은 완치될 수 있었다. 더불어 의도하지 않았던 다이어트 효과까지 톡톡히 보았다. 당시 나는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식단 조절과 습관을 바꾸는 것만으로 무려 20kg 가까이 감량을 해냈다.
63kg까지 나갔던 나의 체중이 무려 45kg가 되었다. 참고로 나의 키는 161cm다. 남자 치고는 무척이나 작은 키이기에 60kg가 넘는다는 건 과체중이었다는 말이다. 제일 보기 싫고 여성들에게 인기도 없다는 짧고 배 나온 체형, 외계인 같은 나였다.
목표에도 없던 다이어트 효과는 꽤나 극적이었다. 꿈에도 안 꾸고 있었는데 똥배는 홀쭉해졌고, 하체도 날씬해져서 여자 사이즈의 바지가 맞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왜소해 보이는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외계인 같던 이전의 체형보다는 마음에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어느 과에 가서 진료를 받든, 심지어 한의원에 다닐 때도 원장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잘 기억했다가 실천해려고 애썼다.
치료, 몸과 마음을 잘 들여다 보는 작업
현재 나는 1년이 넘도록 우울증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고 있다. 여기서도 나는 원장님과 상담 선생님이 해주시는 말씀들을 최대한 실천하고자 애쓴다. 이미 나는 의사 선생님 말대로 살아서 질병을 잘 지나가 본 경험이 있기에, 마음의 병을 대함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단순히 몸의 질병을 치료하는 과정과 마음과 심리를 다루는 치료는 엄연히 다른 부분이 많을 것이다. 특히 무기력을 동반하는 우울증 특성상 예전처럼 의사 선생님의 안내대로 모든 걸 해내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나와 횡단보도 앞에 섰다. 우울증 치료는 혼자 뛰어가는게 아닌 의사와 환자가 함께 천천히 걷는 과정이다.
직접촬영
할 수 없이 초반에는 약물의 힘을 많이 의지했다. 우울증 약을 복용해 보니 신기하게도 긴장도 풀어지고 불안감도 해소되어 갔다. 하지만 약물치료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쏟아지고 변비와 설사가 반복되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럴 때마다 증상에 대해 상담해 가며 약물을 조절했다.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상담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함께 받으면 훨씬 더 좋아질 거라고 하셨다. 직장을 관둔 마당에 상담 비용이 큰 부담이었다. 그럼에도 고민 끝에 의사 선생님의 제안대로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벌써 치료를 시작한 지 1년이 훌쩍 넘었다. 오래 걸릴 줄은 예상했던 부분이지만 확실히 이쪽 분야의 병은 꽤나 장기전을 각오해야 한다. 분명한 사실은 확실히 초반보다 많이 나아졌다는 점이다. 약물은 육체의 긴장을 해소해 주었고, 상담은 나도 몰랐던 내면 깊은 곳의 우울과 불안의 근원에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전문가의 말을 듣고 실천하는 것이 최선임이 이번에도 증명되고 있다. 인간의 육체와 정신은 세월이 갈수록 고장 나고 낡아질 수밖에 없다.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 앞에서 병원을 찾는 일은 아마도 더 늘어날 것이다.
중요한 건 이 과정을 어떤 태도를 가지고 견뎌내는 것인가 일 것이다. 전문가의 말을 경청하는 겸손한 태도와 조언대로 따르기를 매일 다짐하는 나의 의지가 함께 시너지를 이뤄야 한다. 질병의 치료는 의술로만 되지 않는다. 의사와 환자가 함께 치료해 나가는 것이다.
우울증에 완치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번 걸렸다면 치료를 통해 좋아졌더라도 다시 재발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란다.
나 또한 지금 좋아지고 있지만, 혹 언젠가 다시 나빠져도 너무 크게 낙심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에는 지금보다 훨씬 좋아지게 되는 날이 오리라 믿고 있다.
그날이 오면 예전처럼 똑같이 말할 것이다. 스스로 노력하고, 또 의사가 하라는 대로 했더니 어느 순간 좋아졌다고. 그리고 언젠가 우울증 극복기를 쓰고야 말 것이다. 나와 비슷한 아픔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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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치료 시작 1년, 계속 나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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