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경새재길
김병모
입신양명을 꿈꾸며 걸었던 옛 선비들의 새재 길은 시간이 멈춘 듯하다. 과거시험을 위해 먼 길을 나선 선비들이 숙조령(宿鳥嶺)에 무거운 봇짐을 내려놓고 막걸리 한 사발로 한숨 돌리고 조령 제2 관문 조곡관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과거 급제를 기원하는 소원의 탑에 돌 하나 올린 것도 잊지 않았으리라.
특히 국가 문화유산으로 알려진 조령 제1 관문 주흘관(主屹關)을 지나 조령 제2 관문 조곡관(鳥谷關)으로 걸어 오를수록 계곡으로 흐르는 물은 산을 넘보지 않고, 산은 물에 넉넉한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조선 중기 최고 선비 남명 조식(1501∼1572)이 쓴 <유두류록(遊頭流錄)>에서 말했듯이, 과연 간수간산 간인간세(看水看山 看人看世)로다. 물을 보고 산을 보고,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았다는 의미이다. 필자 역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면서 걸어보리라.
문경새재의 길을 한 걸음 더 들어가니 옛 선비들의 흔적들이 세월을 가르고 있다. 문경 현감이나 경상 지역 관찰사 재임 시 선정을 베풀었다는 비석들도 새재 길거리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것이 이채롭다.
계곡의 세찬 바람으로 발걸음은 느리지만 눈빛만은 반짝인다. 조선 중기 문신 구지정(1647∼1713)이 새겼다는 '용추(龍湫)' 바위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언덕 배기에 교귀정(交龜亭) 정자(亭子)가 고풍스럽다. 1470년경(성종 초) 건립된 교귀정은 한양에서 새로 부임한 경상감사가 떠나는 감사와 만나 업무를 인수인계 했던 이·취임 장소란다. 지금도 인 걸은 없고 거대한 노송과 용추 각자(龍湫 刻字)만이 남아 강물처럼 흐르는 세월을 지켜보고 있다.
더불어 이 용추 각자 근처 너럭바위에서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 궁예가 최후를 맞는 장면을 촬영했다고 한다. 문경새재 길로 계속 걸으면서 조선 후기 국내 유일의 순수 한글 비석 '산불됴심' 붉은 글씨체도 볼 수 있다. 고개를 들어 언덕을 보니 누구든 올라 쉬는 사람이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무주암(無主巖) 바위가 새 주인을 기다린 것 같다.
세상은 걷는 속도만큼 보인다고 하던가. 문경새재를 넘어 한양에 이른 한 선비가 과거에 급제했다는 소식이 가장 먼저 문경새재로 전해지자 그 기쁜 소식은 순식간에 경상 전역으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세상은 항상 녹록하지 않듯 어디 기쁜 소식만 전해졌겠는가. 슬프고 고달픈 사연도 문경새재를 통해 들려왔으리라.
필자는 계곡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찬바람을 견디며 조령 제2 관문 조곡관에 이르자 슬슬 허기를 느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던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문경새재를 오간 옛 선비들의 뭇 사연을 뒤로 하고 근처 맛집으로 서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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