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시간 불평등> 표지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이 쓴 책, <시간 불평등>(안효상 옮김, 2024, 창비) 표지이다.
창비
"… Take it easy no stress
정해준 틀 다 깨트려 봐 봐
… Boom dynamite 미쳐가 our life's like jungle …"
(청하, 2025, 'STRESS', <Alivio>,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지금 사회에서 사람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발물을 안고 살아간다.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정글이다.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 여유롭게 시간을 누릴 수 없다. 스트레스가 쌓인다. 어느 분야보다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연예계에서 일하는 가수 청하는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최근 발매된 노래 'STRESS' 가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시간은 사람을 차별한다. 모두가 정글 속을 가로지를 수는 없다. 소수는 비행기나 헬리콥터를 타고 정글 아래를 내려다보며 여유롭게 짧은 시간에 지날 수 있다. 한때 '몇만 시간을 들이면 모두가 성공할 수 있다'라는 책이 유행한 적이 있다. 그건 그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한다.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이 쓴 책 <시간의 불평등>(안효상 옮김, 2024, 창비)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다룬다. 원서는 2023년 <시간의 정치학(The Politics of Time)>으로 출판됐으며, 한국어 번역본은 지난해 말에 나왔다. 글쓴이는 지속해서 '불안정 노동자'를 의미하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에 주목한 경제학자이다.
글쓴이는 역사적으로 시간을 네 단계로 구분한다. 여가를 중시하던 고대의 시간, 자연의 시간을 따르는 농업의 시간, 여가를 없애고 노동을 강조한 산업적 시간, 시간의 경계가 흐릿해진 현대 신자유주의 사회의 제3의 시간.
고대부터 중세 봉건사회까지 '자유민'들은 일, 노동하지 않았다. 피할수록 좋은 것이었다. 이런 태도는 18~19세기 자본주의 발달과 함께 급변했다(책, 73~75쪽). 배움과 같은 의미였던 '여가'는 게으름과 '시간 허비'를 나타냈고, 근면, 부지런함이 새로운 덕목으로 자리했다. "노동주의는 20세기에 시간의 특징이 되었다"(책, 98쪽).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됐으며,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사회적 비난과 함께 실제 생명 유지가 어려워졌다. 마르크스(Marx)는 이러한 변화를 <자본> 1권에서 잘 보여주었다. 폴라니(Polanyi)는 공유 자산과 공동체가 붕괴하고 자본주의 시장화가 전면화된 이 같은 현상을 '대전환'이라고 표현했다. 신자유주의 확산 이후 '더 많은 노동'은 '기본값'이 됐다.
"노동의 '고성과자'라는 개념은 20세기 동안 꾸준히 진화해서 '인적 자원 관리'라는 장황한 용어와 이미지 그리고 '능력주의'의 발전에 대한 믿음을 가져왔다. … 그것은 플랫폼 자본주의에서 좀 더 공격적인 '등급 매기기'로 확산되었다." (책, 127쪽)
이른바 진보, 보수 정권과 상관없이 '워크페어(work-pair, 노동 연계)' 정책은 일관성을 유지했다.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 노무현 정권의 '인적 자원',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게시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말할 것도 없다. 정부, 국가는 국민 다수의 '여가'를 두고 보려 하지 않는다. 복지와 노동이 연계되고, 교육이 일자리와 맞닿아 있다.
스탠딩은 신자유주의 등장 이후 사회 계급을 부호, 엘리트, 프로피션(profician), 살라리아트(salariat), 프롤레타리아트, 프레카리아트(precariat)로 나눈다(책, 141~146쪽). 부호는 억만장자, 엘리트 계급은 최상층 경영자와 로펌이나 금융회사 사장 등이다. 프로피션은 컨설턴트, 건축가나 의사 같은 자영 전문직, 살라리아트는 국가나 기업에 고용된 정규직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육체 노동자와 서비스직 노동자들이 해당한다.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하고 불안전한 노동을 하며, 정해진 작업장과 노동시간이 없다.
살라리아트와 프롤레타리아트는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프레카리아트 계급은 계속 늘고 있다. 이들이 '노동자 대중 계급'이 되었으며, 비정규직, 프리랜서 노동자다.
"자신의 시간에 대한 통제 감각이 없다." (책, 142쪽)
"특히 프레카리아트는 산업적 시간 체제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통제권을 상실한 것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시간 통제를 상실했다(혹은 획득하지 못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현재 시간-오늘, 이번 주, 이번 달-도 통제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 또한 자신의 과거 시간도 통제하지 못한다." (책, 146쪽)
불안정, 불안전 노동이다. 고용 계약은 분, 초 단위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주말과 평일의 구분도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주4일 근무나 주 40시간 노동은 프레카리아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알고리즘이 통제하는 일자리 계약은 고용주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다. '진짜 사장'을 찾는 일은 불가능하다. 지구 반대편에 있을 수도 있다.
우리가 '비정규직'이라고 묶어서 부르는 프레카리아트 계급은 자신의 시간이 없다. 쉬는 시간이 있더라도 그것은 피로에 지친 소진된 시간이다. 무언가를 할 신선하고 좋은 시간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프레카리아트의 시간, 시간 불평등에 주목한 스탠딩의 책은 의미가 있다.
"프레카리아트는 장기 미래는 말할 것도 없고 단기 미래에 관한 통제의 전망도 없이 지속적으로 현재를 살아야만 한다. 미래는 불길한 예감으로 그려진다. 이것은 불평등의 한 형태이다."
(책, 216쪽)
프레카리아트는 정규직 노동자들이나 부르주아가 대리인을 고용해서 처리할 수 있는 저금리 시대 복잡한 금융 투자, 복지 수급을 위한 시간 투입, 대기와 구직 기간, 일자리를 위한 훈련 등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돈을 써야 한다(책, 211~214쪽). 여가는 고사하고 쉴 시간조차 없다. 이들은 시간이나 분 단위 급여를 받는데, 다음 일을 위한 준비는 모두 돈을 받지 못하는 노동이다.
"일자리를 잃은 후 그녀(혹은 그)는 급여 신청을 해야 한다. 이는 시간 소모적인 과정이 시작되는 일인데, 그녀는 겁을 먹게 하는 서류를 채워야 하고-지원 서류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가구 구성 및 기타 개인정보를 포함해서 신청 자격 결정을 위해 설계된 기분 나쁜 질문에 답해야 한다. 대면 신청이 필요한 경우 급여 사무소나 지원센터에 가서 줄을 서기 위해 멀고 비용도 많이 드는 길을 떠나야 한다. … 이 과정은 며칠이 아니라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다. 그사이에 저축은 바닥나고, 친구의 선의를 다 써버리고, 부채가 발생하고, 집을 잃을 수도 있다. (책, 252~253쪽)
어떻게 해야 할까? 스탠딩은 "일자리는 … 목적 그 자체가 아니"라면서,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시한다(책, 345쪽).
"지대 추구 자본주의 해체를 통해 소득 분배 체제와 씨름하고 현재 거대 부호, 엘리트, 살라리아트가 가져가는 지대 소득을 환수하여 모두에게 재순환시키는 데 있다." (책, 359쪽)
글쓴이가 제시한 답의 실현 가능성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메커니즘이 우리의 시간을 통제하고 있는지 이해해야 하며, 이를 극복할 정치 전략이 필요"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책, 13쪽).
시간 불평등 - 시간의 자유는 어떻게 특권이 되었나
가이 스탠딩 (지은이), 안효상 (옮긴이),
창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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