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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울면서 썼다는 만화 <살아만 줘요>

등록 2025.03.05 08:18수정 2025.03.05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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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전역 후, 학교에 복학하고 나서 텅 빈 마음 상태가 지속되었다. 허전함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확실치 않았지만, 무엇인가를 새롭게 해야 한다는 강박보다는 자유로운 이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신분이 학생이었기에 학기 말에 치르는 시험을 치러야 했고, 도서관에 방문해 분주히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야만 했다.

그런데 도서관 휴게실에 나의 이목을 끄는 노란색 작은 스티커 하나가 있었다. '야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대학생을 찾는다는 거였다. 유심히 보았고 몇 달을 고민한 끝에 전화를 걸었다. 그 당시 나는 사범대나 교육학과도 교원자격증은 물론 학원 경력도 없었다. 군대를 갓 졸업한 3학년 국문과 학생이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지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야학교 교무 선생님과 대화해 본 결과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곳 학생들이 '검정고시'를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안정을 찾을 수 있게 정서적으로 함께 소통하는 것이 전부였다. 학생들과 함께 소통하는 것이 지금은 정말 어려운 것임을 잘 알고 있지만, 그때 당시에는 막연하게 같이 잘 놀면 될 거라고 믿었다. 야학교 시절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곳은 정규학교가 아니었고, 낮이 아닌 오후 7시가 되어서야 첫 수업이 시작되는 말 그대로 '야학교'였다. 야학에 오는 학생들의 사연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성실한 부모님을 만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란 보통의 친구들이라기보다는 가출해 쉼터에서 지내는 소외당한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함께 나누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도 듣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20대인 나는 더 철이 없었으니 여러 가지로 부족했다.

신간 만화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개인적인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최근에 간행된 만화가 이소베(글)와 백종민(그림)의 합작품 <살아만 줘요>(송송 출판사, 2024) 때문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말할 수 없는 통증을 안고 살아가는 학생들이 떠올랐다.

자해 행위를 그만두고 다시 일어나기

〈살아만 줘요〉 표지 〈살아만 줘요〉 표지
▲〈살아만 줘요〉 표지 〈살아만 줘요〉 표지 송송출판사

주인공 '반디'에게 폭력은 일상이었다. 견디기 힘든 가정폭력 속에서 유년과 청년 시절을 힘겹게 통과했다. 소녀가 기억하는 폭력의 첫 모습이 "아빠가 엄마를 엘리베이터 앞까지 질질 끌고" 간 장면이라는 점에서 이 가족은 흔들리다 못해 모래성처럼 손쉽게 무너진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아빠가 엄마의 머리채를 잡은 이유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기독교에 대한 부정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를 싫어했다. 하지만 엄마가 종교에 기댄 이유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남편의 무심함과 가족 역할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살려고' 종교에 기댄 것이다. 엄마의 삶 속에는 휴식처가 없다. 이런 부모 밑에서 어린 두 남매는 성장한다.

 〈살아만 줘요〉 5쪽과 13쪽
〈살아만 줘요〉 5쪽과 13쪽 송송출판사

폭력도 유전되는 것일까. 반디의 오빠 역시 폭력성을 갖추게 된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그는 방황했다. 학교 가는 것이 두려웠고 힘들었다. 하지만 반디의 부모님은 학교에 가야만 한다고 몰아세웠다. 그는 결국, 자퇴하게 된다. 이 결과는 원망을 키우게 된다. 그는 학교를 그만두게 된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부모님의 강요 때문이라고 믿는다. 잘못이 자신에게 없다고 믿으니,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


그 외부가 바로 친밀한 가족이다. 따라서 오빠의 모든 원망을 가족은 견뎌야 했다. 원망의 기운이 감도는 집에서 반디는 숨 쉴 수 없다. 도움이 필요할 때 아빠는 곁에 없다. 돈 버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돈만 벌어올 뿐, 무엇 하나 신경 쓰지 않는다. 그 누구도 이 가족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더욱이 아빠가 일하러 떠난 상황 속에서 물리적으로 가장 힘이 센 반디의 '오빠'는 막무가내로 폭력을 행사한다. 엄마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반디를 몰아세운다. 이 가족은 점점 바닷속으로 침몰한다.

이런 가정을 두고 '콩가루' 집안이라고 말해야 할까. 반디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숨 쉬어야 했다. 반디가 애써 찾은 해결책은 자신의 힘든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존재를 찾는 것이다. 반디에게 그것은 음악이었다. 음악을 듣는 과정에서 잠시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견디기 힘든 '가족'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위로는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없다.
〈살아만 줘요〉 90쪽 〈살아만 줘요〉 90쪽
▲〈살아만 줘요〉 90쪽 〈살아만 줘요〉 90쪽 송송출판사

공연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지옥 같은 현실과 다시 마주해야 했다. 반디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홀로 견디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반디가 선택한 것이 바로 '자해(自害)'이다.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이 행위를 통해 지독한 현실을 잠시나마 벗어나려고 했다. 이러한 행동은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은 여린 존재가 선택한 최후의 몸부림이다.

하지만 반디에게 새로운 사건이 발생한다. 외부가 아닌 자신 내부에서 문제를 찾게 된 것이다. 오랜 시간 의지해온 정신의학과 상담 선생님과의 소통도, 매번 자신을 위로해 주었던 다온 오빠도, 결국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힘든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의지할 존재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일어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는 자명한 사실을 반디는 감각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이 깨달음 이후, 반디는 집을 떠나 독립하기로 마음먹는다. 아마도 이 순간은 작가가 탄생하는 순간처럼 혁명적인 사건일 테다.

폭력적이면서도 무관심한 아빠, 아빠와 너무나 닮은 오빠, 이 둘을 홀로 견디며 살아가는 엄마를 등지고서라도 반디는 살기 위해 독립해야 했다. 장소와 공간이 바꾸면 관성으로 작용했던 부정의 기운을 잘라낼 수 있다. 그렇게 반디는 정서적으로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자신과 직접적으로 대면하게 된다. 그 이후 반디는 점차 건강해지고 자신을 돌보게 된다. 여전히 조울증으로 힘든 날도 많지만, 이제는 과거처럼 무작정 쓰러지지 않는다.

추한 것을 추하다고 말하기

이소베가 글을 쓰고 백종민이 만화를 그린 <살아만 줘요>는 암울한 이야기라는 점을 고려해 이야기 곳곳에 웃음 포인트를 배치했다. 아마도 이렇게 설정하지 않으면 너무나도 책이 무거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그림을 담당한 만화가 백종민의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탓도 있겠지만, 이소베의 사연과 만나 이야기는 성공적으로 만화'화' 되었다.

이 텍스트의 내용적인 측면에서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은 아무래도 조울증을 겪고 있는 반디가 용기 내 구겨진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장면일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과거의 관성으로 인해 자신의 현재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외부적이든 내부적이든 강력한 자극이 있지 않은 한, 스스로 대면하기 힘들다. 그래서 반디는 자신을 멈춰 세우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을 것이다. 이는 고통의 시간을 홀로 견디는 인내의 시간일 것이다. 만화가 이소베는 말한다.

"주인공 반디는 저와 닮은 부분이 많은 아이입니다. 마음이 힘들어서 울면서 글을 썼습니다. 그럼에도 '살아 있기만 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과 가치를 꼭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단지 숨 쉬며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삶은 벅참의 연속이니까. 하루를 버텨내며 내일을 맞이 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구질구질한 삶 같아도 살아남고 봐야 좋아질 가능성이라도 생기니까.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스스로를 너무 탓하지도 말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가면 좋겠다. 나도, 여러분들도..."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우리는 잘살고 있는가. <살아만 줘요>의 반디처럼 자신을 응시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까. 힘겹고 추한 가족의 서사를 고백하기는 쉽지 않다. 옳은 것과 정의로운 것을 말하기는 쉬워도 추한 것을 추하다고 고백하는 것은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이소베는 이 행위를 시도함으로써 온전한 용서는 아니더라도, 본인만의 방식으로 과거를 돌봤다. 독자들에게 <살아만 줘요>를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러그에도 실립니다.문종필은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이 평론집으로 2023년 5회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밖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2021)과 「좋은 곳」(2022)과 「무제」(2023)를 발표하면서 만화평론을 시작했습니다.

살아만줘요

이소베 (지은이), 백종민 (그림),
송송책방, 2024


#문종필평론가 #이소베 #백종민 #만화가 #송송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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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필은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이 평론집으로 2023년 5회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밖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2021)과 「좋은 곳」(2022)과 「무제」(2023)를 발표하면서 만화평론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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