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만 줘요〉 90쪽 〈살아만 줘요〉 90쪽
송송출판사
공연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지옥 같은 현실과 다시 마주해야 했다. 반디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홀로 견디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반디가 선택한 것이 바로 '자해(自害)'이다.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이 행위를 통해 지독한 현실을 잠시나마 벗어나려고 했다. 이러한 행동은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은 여린 존재가 선택한 최후의 몸부림이다.
하지만 반디에게 새로운 사건이 발생한다. 외부가 아닌 자신 내부에서 문제를 찾게 된 것이다. 오랜 시간 의지해온 정신의학과 상담 선생님과의 소통도, 매번 자신을 위로해 주었던 다온 오빠도, 결국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힘든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의지할 존재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일어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는 자명한 사실을 반디는 감각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이 깨달음 이후, 반디는 집을 떠나 독립하기로 마음먹는다. 아마도 이 순간은 작가가 탄생하는 순간처럼 혁명적인 사건일 테다.
폭력적이면서도 무관심한 아빠, 아빠와 너무나 닮은 오빠, 이 둘을 홀로 견디며 살아가는 엄마를 등지고서라도 반디는 살기 위해 독립해야 했다. 장소와 공간이 바꾸면 관성으로 작용했던 부정의 기운을 잘라낼 수 있다. 그렇게 반디는 정서적으로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자신과 직접적으로 대면하게 된다. 그 이후 반디는 점차 건강해지고 자신을 돌보게 된다. 여전히 조울증으로 힘든 날도 많지만, 이제는 과거처럼 무작정 쓰러지지 않는다.
추한 것을 추하다고 말하기
이소베가 글을 쓰고 백종민이 만화를 그린 <살아만 줘요>는 암울한 이야기라는 점을 고려해 이야기 곳곳에 웃음 포인트를 배치했다. 아마도 이렇게 설정하지 않으면 너무나도 책이 무거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그림을 담당한 만화가 백종민의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탓도 있겠지만, 이소베의 사연과 만나 이야기는 성공적으로 만화'화' 되었다.
이 텍스트의 내용적인 측면에서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은 아무래도 조울증을 겪고 있는 반디가 용기 내 구겨진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장면일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과거의 관성으로 인해 자신의 현재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외부적이든 내부적이든 강력한 자극이 있지 않은 한, 스스로 대면하기 힘들다. 그래서 반디는 자신을 멈춰 세우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을 것이다. 이는 고통의 시간을 홀로 견디는 인내의 시간일 것이다. 만화가 이소베는 말한다.
"주인공 반디는 저와 닮은 부분이 많은 아이입니다. 마음이 힘들어서 울면서 글을 썼습니다. 그럼에도 '살아 있기만 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과 가치를 꼭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단지 숨 쉬며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삶은 벅참의 연속이니까. 하루를 버텨내며 내일을 맞이 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구질구질한 삶 같아도 살아남고 봐야 좋아질 가능성이라도 생기니까.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스스로를 너무 탓하지도 말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가면 좋겠다. 나도, 여러분들도..."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우리는 잘살고 있는가. <살아만 줘요>의 반디처럼 자신을 응시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까. 힘겹고 추한 가족의 서사를 고백하기는 쉽지 않다. 옳은 것과 정의로운 것을 말하기는 쉬워도 추한 것을 추하다고 고백하는 것은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이소베는 이 행위를 시도함으로써 온전한 용서는 아니더라도, 본인만의 방식으로 과거를 돌봤다. 독자들에게 <살아만 줘요>를 추천한다.
살아만줘요
이소베 (지은이), 백종민 (그림),
송송책방,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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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필은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이 평론집으로 2023년 5회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밖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2021)과 「좋은 곳」(2022)과 「무제」(2023)를 발표하면서 만화평론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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