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행기 안은 수많은 감정이 오가는 공간이다.
by_syeoni on Unsplash
중학생 시절, 드라마 <짝>을 통해 처음으로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다. 세련된 유니폼을 입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모습은 어린 나에게 너무나 멋있게 다가왔고, 자연스레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그때부터 내 꿈은 늘 승무원이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인하공업전문대학에서 배움을 쌓으며 대한항공 입사를 목표로 했다. 2001년 9·11 테러로 항공업계가 큰 어려움을 겪으며 입사가 1년 늦춰졌지만, 월드컵이 대한민국에서 개최된 2002년에 마침내 승무원이 되었다. 21살의 나는 꿈을 이루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다.
비행기 안은 수많은 감정이 오가는 공간이다. 설렘으로 가득한 여행객, 새로운 출발을 앞둔 이들, 그리고 가족과의 이별을 맞이한 승객들까지, 각자의 사연이 담겨 있다. 승무원은 그런 순간마다 승객들이 가장 먼저 의지할 수 있는 존재다.
한 번은 비행 내내 불만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던 외국인 승객이 있었다. 요청이 많고 다소 예민한 반응을 보였지만, 최선을 다해 응대했다. 비행이 끝날 무렵, 그 승객은 내 손을 잡으며 미소를 지으며 "덕분에 편안한 비행이었다.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말을 통해 승무원으로서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승객에게 안정감과 신뢰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23년 동안 수많은 비행을 하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 기내에서 갑작스러운 환자 발생 시 응급조치를 했고, 난기류로 불안해하는 승객들을 진정시키며 안전을 지켰다. 때로는 승객 간의 갈등을 중재해야 했고, 기내 질서를 위협하는 상황에 단호하게 대처하기도 했다. 승무원의 역할은 단순한 서비스 제공을 넘어 승객의 안전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까지 포함된다.
그러나 지금, 항공업계에서는 승무 인력이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승무원들의 피로는 누적되고 있으며, 이는 결국 승객 안전과 서비스 품질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줄어든 승무원, 다시 늘어나지 않았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기내 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내 서비스가 간소화되면서 탑승하는 승무원의 수도 줄었다. 당시에는 항공 수요가 많이 감소했기에 승무원 감축이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문제는 항공 수요가 회복된 2023년 이후에도 승무원 인력이 원상 복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한항공 직원연대지부는 2023년부터 승무 인력 복원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회사 측은 "예약 승객에 따른 승무 인원 기준표에 맞춰 적정 인원이 탑승하고 있다"며 문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기준표 자체가 회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변경되었으며, 현재는 그 기준보다도 더 적은 인력으로 운항하는 비행편이 하루 최소 50편, 많게는 100편에 달한다'는 게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승무원의 업무는 단순한 서비스 제공이 아니다. 장거리 비행에서는 승객들의 필요를 충족해야 하고 기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위급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또한, 승객 간 갈등을 중재하고, 필요할 경우 폭력적인 승객을 제압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그러나 현재처럼 승무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운항이 지속되면, 승무원 개개인의 업무 부담이 과도하게 증가한다. 특히, 장시간 근무가 필수적인 국제선 비행에서는 승무원들의 피로도가 극심해진다. 육체적 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도 커질 수밖에 없다. 업무 강도가 높아지면, 승무원들은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진다. 결국, 승객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고,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신속한 대처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승무원 인력 부족 문제는 단순히 "업무 강도가 높아졌다"는 수준을 넘어, 법적 문제로도 이어지고 있다. 대한항공 직원연대지부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여전히 "예약 승객에 따른 기준표에 맞춰 운영하고 있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가 이 기준표를 임의로 바꿔가며 운영하고 있으며, 현장에서는 심각한 인력 부족이 발생하고 있다'고 노동자들은 증언한다.
항공사는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인력 부족 상태에서 무리한 운항이 계속된다면, 그 피해는 승객에게도 돌아간다. 기내에서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신속한 대처가 어렵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승무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승객 안전이 위협받는다면, 이는 항공사의 책임 방기나 다름없다.
승무원은 승객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필수적인 노동자다. 항공사가 진정으로 승객의 안전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승무원 인력을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즉시 복원해야 한다. 또한, 노사 합의를 무시한 인력 운용이 아닌, 현장에서 근무하는 승무원들의 의견을 반영한 합리적인 인력 배치가 필요하다.
승무원의 건강 해치고 안전 방해하는 유니폼과 기내화
승무원으로 일하며 깨달은 현실은 내가 동경했던 유니폼이 실제 업무 환경에서는 많은 불편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폭이 좁은 치마와 스타킹, 몸에 밀착되는 블라우스, 그리고 딱딱한 구두는 긴 시간 동안 일하는 승무원에게 적합하지 않다.
특히, 발바닥도 발등도 딱딱하고 굽이 있는 구두는 오랜 시간 착용 시 발 건강에 큰 부담을 준다. 매 비행 1만5000보 이상을 좁은 기내 통로에서 걸어야 하는데, 발을 보호할 쿠션이 거의 없는 구두를 신어야 한다. 승무원은 14시간을 걸어서 태평양을, 대서양을 건너는데, 그로 인해 족저근막염, 무지외반증, 관절염 등 각종 근골격계 질환을 겪게 된다.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아들이 내 발을 보며 "엄마 발이 이상하게 생겼어, 아파?"라고 물은 적이 있다. 아이의 눈에 걱정이 가득했던 순간이었다. 장거리 비행 시 기내에서 승객들은 슬리퍼를 신는다. 가끔 구두 굽으로 승객의 발을 밟는 경우가 있다. 생각만으로도 등에 땀이 흐르는 순간이다.
또 승객들을 탈출시켜야 하는 비상 탈출 시에도 구두와 보폭이 짧을 수밖에 없는 좁은 치마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탈출 지휘를 해야 하는 승무원의 업무에 방해가 된다. 승무원들의 지속적인 불편 호소와 문제 제기로 인해 회사는 쿠션이 있는 구두로 교체하였지만, 여전히 '구두'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쿠션이 있다고 하더라도 구두는 구두일 뿐이다. 승무원들의 노동강도에 있어서도 승객들을 탈출시켜야 하는 안전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도 승무원에게는 운동화가 필요하다. 승무원들이 기능성 운동화를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편안함의 문제가 아니라, 승무원의 건강과 승객의 안전이 직결된 문제다.

▲ 승무원은 14시간을 걸어서 태평양을, 대서양을 건넌다. 그로 인해 족저근막염, 무지외반증, 관절염 등 각종 근골격계 질환을 겪게 된다.
편선화
뿐만 아니라, 유니폼은 때때로 승무원을 보호하기보다 위험에 노출하기도 한다. 예전 국내선에 탑승한 아이가 "엄마! 이 이모 엉덩이 보여!"라고 크게 말한 적이 있다. 바지를 입고 있었던 승무원의 얼굴이 붉어졌었다. 기내 좌석에 앉아 있는 승객의 눈높이에서 자연스레 보이는 곳이 엉덩이이고 바지여도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디자인 때문이다.
최근 기내에서 불법 촬영 범죄가 증가하고 있으며, 실제로 경찰에 인계되는 사건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기내에서 발생하는 불법 촬영은 기내 불법행위로 경찰 인계 대상이지만, 훈방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타 국적 승객의 경우 처벌이 더욱 어려워, 피해자가 법적 소송을 원하면 회사의 도움 없이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유니폼으로 인해 불법 촬영의 대상이 되지만, 그 부담은 승무원 개인에게 돌아간다. 온라인상에 불법 촬영물이 유포되고, AI 딥페이크 기술이 악용되는 요즘, 승무원들은 더욱 불안해하고 있다. 기내에서 불법 촬영을 발견하고 휴대전화로 촬영한 사진의 삭제를 요청하더라도, 이미 클라우드나 타인에게 전송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는 지난 2019년 12월 21일,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통해 ‘자신의 몸에 대해 결코 자유롭지 못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객실 승무원의 노동권, 건강권을 요구했다. 이 당시 함께 진행한 ‘#승무원에게_운동화를’이라는 해시태그 캠페인을 2025년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다시 전개하려 한다.
공공운수노조
현재 승무원들은 유니폼으로 출퇴근하고 있다. 승무원의 출퇴근 시간은 일정하지 않아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에 이동해야 할 때도 있다. 출퇴근 중에도 불법 촬영은 물론, 또 다른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위험이 사건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는 지난 2018년 국정 감사에서 유니폼 문제를 지적하며 목소리를 냈지만, 여전히 몸에 밀착되는 디자인은 유지되고 있다.
업무 환경과 안전을 고려한 변화가 절실하다. 대한항공은 "유니폼이 회사의 이미지와 품격을 나타낸다"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유니폼이 기업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임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유니폼은 회사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동시에, 승무원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할 기능도 갖추어야 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을 앞두고 유니폼이 변경될 계획이 있다고 들었다. 이는 단순한 디자인 변화가 아니라, 현장에서 근무하는 승무원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회사의 이미지"라는 이유로 승무원의 안전과 건강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승무원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노동자이다.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한 유니폼이 아닌, 업무 특성을 고려한 기능적인 유니폼,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유니폼을 요구한다.
승무원들은 더 이상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있다. 회사가 승무원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 더 나은 근무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작은 변화가 시작된다면, 그것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중요한 발걸음이 될 것이다.
나는 대한항공 현직 승무원이자 대한항공 직원연대지부 여성부장으로서, 승무원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목소리를 낼 것이다. 안전한 비행은 충분한 인력 충원에서 시작된다. 변화는 쉽지 않지만, 우리가 함께한다면 반드시 이루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충분한 인력으로 운동화를 신고 일하는 그날이,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다.

▲ 2025년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승무원에게_운동화를! 온라인 캠페인을 전개한다.
공공운수노조

▲ 공공운수노조는 2025년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승무원에게_운동화를! 온라인 캠페인을 전개한다.
공공운수노조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2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는 다양한 업종의 노동자가 함께 하는 민주노총 산하 최대의 산별노조입니다. 공공부문, 운수부문, 사회서비스 등 부문의 모든 노동자가 함께 하는 노동조합입니다.정규직과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 뿐 아니라 실업자·퇴직자·해고자 및 조합 임용자, 예비 노동자도 가입할 수 있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