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상가옥 내부. 지붕 무게를 지탱하는 나무기동이 보인다. 또한 흙벽과 나무벽을 세웠다는 것을 생생히 확인할 수 있다. 지붕은 초가집 형태나 나무껍질, 풀잎 등을 이용해 덮었다.
이준수
"여기 또 호수네. 이 사람들도 우리처럼 호수 좋아하나 봐."
"그러게. 우리 가족도 호수가 좋아서 강릉으로 이사 왔잖아."
속초 조양동 청동기 유적에서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고성군 화진포에서도 그렇고, 속초 조양동 '청초호'도 그렇고 모두 물이 내려다보이는 장소에서 유물이 나왔다. 양양군에 있는 오산리 선사 유적지도 '쌍호'를 중심으로 거주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강릉 초당동 선사시대 집터 또한 '경포호'와 인접해 있었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특징이 너무 명확했다. 교과서였다면 이런 문장이 쓰여있지 않았을까.
'선사시대 집터는 주로 강가나 구릉지대에 위치했다. 물을 얻기 쉽고, 농사짓기 좋았기 때문이다.'
깔끔한 설명이다. 그렇지만 두 발로 각 장소를 누비며 두 눈으로 여기저기를 살피다 보면 책을 읽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지식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편하고 먹고 마실 수 있고, 생존하기 유리한 환경을 선호한다. 수천 년이 흘렀어도 사람의 욕구는 비슷하다.
속초 조양동 유적에는 실내 화덕 자리, 기둥 구멍, 저장구덩이, 작업대 등 생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특히 남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겹아가리 토기와 굽손잡이 그릇, 부채꼴 모양의 청동 도끼도 나왔다. 집 바닥에는 점토를 얇게 깔아 푹신하게 만들었다. 실제로는 점토 위에 짐승 가죽이나 마른 잎, 줄기 따위를 깔아 썼다고 한다.
청동기 유물과 유적을 공부하면서 드는 생각은 '아, 이만하면 국가가 생겨나도 이상하지 않겠다. 고조선 단군왕검이 등장하는 게 우연이 아니구나'였다. 비파형 동검과 청동 거울을 보고 있노라면 계급 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또 돌로 만든 괭이와 곡물 저장용 토기는 농경문화와 정착 생활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다음에 춘천 박물관 가면 돌칼 보고 싶다."
"화덕 안에 쏙 들어가는지 흙 그릇 크기도 재어볼 거야."
사람들은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박물관에 간다. 훌륭한 선택이다. 그러나 더 재미있는 방식이 있다. 집터나 고인돌 형식으로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현장을 먼저 방문한 뒤에 박물관을 찾는 것이다. '유튜브'와 '챗GPT'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인간은 온몸으로 배우는 것을 가장 잘 기억하게끔 설계되었다.
공부할 때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면 뇌의 여러 영역을 동시에 활성하는 효과가 있다. 우리 가족은 강원 영동 지방에서 청동기의 흔적을 찾기 위해 약 한 달가량 삼척부터 동해, 강릉, 양양, 속초, 고성을 두루 다녔다. 선사 시대 사람처럼 나무 작대기를 지팡이 삼아 언덕을 오르고 움집 안에서 비바람을 피했다.
자주 길을 잃었고, 주유비도, 식비도, 시간도 꽤 잡아먹었지만 후회는 없다. 직접 반달돌칼처럼 생긴 도구를 만들어서 풀을 꺾는 즐거움은 해 봐야지만 알 수 있다.
고조선의 기운을 느껴보고 싶다면 집 주변에 있는 고인돌부터 검색해서 찾아가 보자. 의외로 야생에 방치된 듯한 고인돌이 흔하다. 보물찾기 미션을 수행하는 느낌으로 산책 삼아 나서보는 건 어떨까. 운이 좋다면 미등록된 고인돌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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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미래의창 2024>, <선생님의 보글보글, 산지니 2021> 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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