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나는 얼가니새... 끔찍한 기억으로 1년 버텼다"

[이 사람, 10만인] 세종보 천막 농성장 지키는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등록 2025.03.07 12:04수정 2025.03.07 12:04
2
원고료로 응원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김병기

"아직도 그 비린내가 기억이 나요. 지독했고, 끔찍했죠."

4대강사업이 완공되던 해인 2012년 10월, 금강에서 발생한 수십 마리 물고기 떼죽음 사건에 대해 말할 때였다.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세종보 천막농성장에 앉아 있으면 가끔 그때가 떠오른다고 했다. 과거의 악몽이 현재의 풍찬노숙을 이어가는 힘인 셈이다.

살을 에는 칼바람이 천막의 고장 난 지퍼 틈새를 후볐다. 그때마다 천막은 펄럭이면서 요동쳤다. 바깥 기온은 영하 6~7도를 오르내렸지만, 천막 안은 그럭저럭 겉옷을 벗고 앉아 있어도 될 정도였다. 붉게 달아오른 석유난로 위의 작은 철망 안에선 고구마 3개가 노릇노릇 익고 있었다. 2월 하순이었다.

환경부의 세종보 재가동 계획 철회를 촉구하면서 지난해 4월 29일, 보 상류 500m 지점 하천 부지에 친 녹색 천막은 사계절을 지나면서 이곳의 풍경처럼 자리를 잡았다. 한두리대교 교각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둔치엔 길이 났다. 많은 사람이 다녀간 흔적이다. 일주일에 2~3번씩 이곳에서 업무를 보는 것도 이 처장의 일상이 됐다.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데 견딜 만합니다. '나귀도훈'(임도훈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 상황실장)과 '초췌은영'(박은영 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이 번갈아 가면서 지키는데요, 세종 시민들과 다른 환경단체 분들도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섭니다. 천막 안에 친 텐트 안에서 핫팩 2개쯤 터트리면 잠을 잘 만하죠."

'윤석열 부역자' 앞 피케팅 영상 조회수 150만... 댓글 5천 개

 이경호 사무처장이 김완섭 환경부 장관을 가로막고 피켓 시위를 벌이는 영상 갈무리
이경호 사무처장이 김완섭 환경부 장관을 가로막고 피켓 시위를 벌이는 영상 갈무리김병기

“대전 시민이 우스운가?”... 환경단체, 김완섭 환경부 장관에 강력 항의 #shorts ⓒ 김병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이 진행되고 있지만, 언제 끝날지 모를 싸움이다. 이 처장은 "만약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하고 새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보철거시민행동이 농성장 철수 조건으로 내세운 세종보 백지화와 물정책 정상화에 이르는 길은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면서도 "하루빨리 윤석열이 탄핵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환경 영역에선 윤석열 비상계엄 사태를 좀 일찍 겪었죠. 전 정부 때에 3년 6개월에 걸친 세종보 해체 등의 결정을 15일 만에 뒤집었잖아요. 수문 개방의 과학적 모니터링 결과나 댐 해체 등의 세계적 추세도 뒤집은 반동의 결과였습니다. 사실상 비상계엄령을 발동하고 내란을 벌인 것과 다를 바 없고, 지금도 내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12·3 계엄이 해제되고 1주일여 뒤인 12월 12일, 이 처장이 나 홀로 피켓 시위를 벌인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준설 현장 시찰차 대전 유등천을 방문한 환경부 장관의 앞을 가로막았다. 손에는 '내란 동조 김완섭 장관 사퇴하라'라고 적은 피켓을 들었다. 김 장관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오마이TV 영상 조회수는 150만 회를 넘어섰고 5,000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 처장은 "시찰 소식을 듣고 달려가서 '내란 공범자가 왜 여기에 왔느냐'고 소리치면서 사퇴하라고 했더니 '나(김완섭)는 이미 사퇴서를 냈다'고 반박을 했다"라면서 "은인자중해야 할 상황에서도 직을 유지하면서 윤석열표 하천 죽이기 정책의 하나인 무분별한 준설을 독려하려고 시찰에 나선 것에 화가 치밀었다"라고 말했다.

이 처장은 "김완섭 장관은 임명된 지 4일 만인 지난해 7월 30일,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기후대응 댐' 후보지라면서 14곳을 발표했는데, 지난 30년 동안 우리 정부가 댐을 하나도 짓지 않았던 이유를 깡그리 무시한 발표였다"라면서 "세종보 해체 결정을 뒤집고 환경 정책을 30년 전으로 후퇴시키는 데 앞장선 김 장관은 윤석열 내란의 확실한 부역자"라고 규정했다.

죽은 강과 산 강... "200종 야생생물 호명하면서 울컥"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김병기

그는 다시 농성장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은 죽은 강과 산 강에 대한 기억이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의 금강은 죽은 강이었습니다. 2012년부터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죠. 죽음의 현장을 매일 목격했습니다. 그다음 해부터 녹조가 번성했고, 2014년에는 큰빗이끼벌레가 강을 뒤덮었습니다. 그 뒤에는 썩은 강물의 바닥에 쌓인 펄 속에서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가 득실거렸습니다.

종의 역습이었죠. 무분별하게 산림을 파헤쳐서 멧돼지들이 도시에 출몰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청산가리 독성의 6600배에 달하는 녹조가 창궐하고 시궁창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강변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눈을 못 뜰 정도로 하루살이들이 날아들었습니다. 깔따구 성충들이죠. 인근 아파트에선 창문을 열 수 없다는 민원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2017년 말부터 금강의 3개 보를 단계적으로 개방한 뒤 금강은 빠르게 회복됐다. 이 처장은 "2018년에는 강바닥에 쌓인 펄이 씻기면서 수질이 더 나쁘게 나오기도 했다"면서도 "2020년 여름에 54일간 거의 매일 비가 왔고, 비가 그친 뒤의 금강에서 극적인 변화를 목격했는데, 그건 사라졌던 모래톱의 귀환이었다"라고 말했다.

"조류 조사를 하면서 백사장을 보고 기뻐서 맨발로 뛰어다녔어요. 새들이 둥지를 지을 수 있는 모래톱이 드러나니 찾아오는 새들도 많았죠. 멸종위기종 1급 어류인 미호종개나 흰수마자도 돌아왔습니다. 모두들 신이 나서 조사를 했고, 회복된 생태계에 대한 조사 결과를 신나게 발표를 했죠."

윤석열 정부 들어서 상황은 역전됐다. 문재인 정부 때 결정했던 세종보 해체 등의 금강·영산강 보 처리 방안을 뒤집고 4대강 보 활용론을 내세우면서 지난해 5월부터 세종보를 재가동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보철거시민행동은 이틀 전인 그해 4월 29일 이곳에 천막을 쳤고, 30일부터 본격적인 농성에 돌입했다.

이 처장은 장기간의 천막 생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으로 '금강을 지켜온 200종의 생명을 위한 20+1배'를 꼽았다. 지난해 11월 16일, 천막 농성 200일 기념문화제 때 사회를 봤던 이 처장은 이곳에서 확인한 200종의 야생생물을 호명하면서 울컥하기도 했단다.

"왕버들, 수염풍뎅이, 맹꽁이, 수달, 흰목물떼새, 꼬마물떼새, 알락꼬리마도요, 멧새, 까치검은등 할미새, 황조롱이를 위해 1배를 올리겠습니다."

이 처장은 "우리가 농성장에서 쫓겨난다면, 이곳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도 세종보 수문 개방 이전처럼 이곳에서 죽거나 쫓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영혼 없는 공무원과 '미쳐있는 동지'들

 세종보 천막농성장에서 일하는 이경호 사무처장
세종보 천막농성장에서 일하는 이경호 사무처장김병기

무엇이 가장 힘들었냐고 물었다. 이 처장은 "환경부에 있는 일부 철밥통 공무원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강을 죽이는 데 앞장선 어떤 실장은 '강을 살리겠다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있었다"면서 "이런 확신범들은 정년퇴임하고 나면 끝나겠지만, 훼손된 자연과 죽어간 생명들은 무엇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냐"고 허탈해했다.

그는 특히 "4대강 사업으로 수십 만 마리의 물고기를 죽인 것에 대해 공무원 중 단 한 명도 징계를 받지 않았고, 금강이 시궁창 펄로 뒤덮이고 실지렁이와 깔따구가 득실거리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라면서 "문재인 정부 때 어렵사리 내린 결정을 뭉개다가 윤석열 정부 들어서 태도를 180도 바꾼 영혼 없는 공무원의 민낯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행복한 때가 더 많았단다. 지금까지 농성장을 방문한 사람은 연인원으로 1만 명쯤 되는 데, "이분들의 진심이 느껴질 때"였단다. "한 번 오신 분도 있고, 가끔 오시는 분도 있고, 거의 매일 오시는 분들도 있는데, 나보다 더 생명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갖고 있는 '미친 분'들에게 진정한 동지애를 느꼈다"라고 했다.

20년 동안 환경운동을 해왔던 이 처장은 "세종보 농성은 제가 해왔던 환경운동에서 큰 획을 그은 대단한 사건이자 전환점이기도 한 것 같다"라고 평가하면서 "여러 번 농성을 해왔는데 이번처럼 많은 분들의 지지와 격려를 받은 적은 없었다. 제가 아니라 우리들이 함께 1년 가깝게 생명을 지켜왔다"고 말했다.

"세종보 재가동으로 이곳이 물에 잠기는 일은 없을 겁니다. 설령 국가권력이 농성장을 찬탈하더라도 우리는 졌다고 생각 안 할 겁니다. 그동안 사람을 얻었습니다. 천막을 다시 치고 또 싸우면 되잖아요. 많은 이가 함께하기에 우리는 승리할 겁니다. 농성을 하면서 저는 아주 큰 힘을 얻었습니다."

'새 박사' 얼가니새의 새 이야기

 세종보 천막 농성장 앞에서 쉬고 있는 황새
세종보 천막 농성장 앞에서 쉬고 있는 황새김병기

이 처장은 '새 박사'로도 불린다. 대학교 때 탐조동아리에서 활동한 이래 지금까지 탐조 활동을 계속해 왔다. 동아리에서 얻은 그의 별칭은 '얼가니새'였다. 이 처장은 "탐조를 하다 보니 다음에 같은 곳에 갔을 때 서식처가 파괴돼 그곳에 있어야 할 새들이 사라진 것을 보고 안타까워한 적이 많았다"라면서 "새의 서식처를 지키려고 환경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처장은 최근 천막 농성장에서 격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천막 농성장 겨울 철새학교'를 열고 있다. 시민들과 함께 새 먹이를 주고 탐조 활동도 하는 '걸음아 강 살려라' 프로그램이다.

"이곳에서 사계절을 지냈습니다. 새들이 내는 소리만으로도 계절을 느낄 수 있는데요. 봄에는 노래를 합니다. 짝을 찾는 사랑의 세레나데죠. 여름은 숲과 풀이 우거져서 새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죠. 그런데 무더운 여름에 새들은 새끼를 열심히 키워냅니다. 이때 자주 들리는 울음소리는 새끼 새들을 지키려는 '경계음'이죠.

가을은 새들에게도 천고마비의 계절입니다. 먹이를 몸에 채우고 저장을 하죠, 살이 찐 새들을 많이 볼 수 있어요. 겨울엔 북시베리아나 몽골에서 날아온 새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나뭇잎이 떨어져서 시야가 확보됩니다. 새들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계절이죠. 망원경으로 보면 멀리서 볼 때 느끼지 못했던 묘한 감정이 생깁니다. 저는 겨울이 좋습니다."

새 이야기가 시작되자 이 처장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이곳에서 본 가장 인상 깊었던 새는 황새. 여기서 그치지 않고 300~400년 전에 유럽에서 잡힌 황새의 목에 화살이 꽂혀있었는데, 그 화살이 아프리카에서 만들어진 것을 확인한 뒤부터 새들이 철에 따라 이동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알게 됐다는 이야기, 한 학생이 먹황새를 봤다기에 뒤쫓아갔는데 자신은 보지 못했다면서 이런 걸 '조복이 없다'고 말한다는 이야기 등이 이어졌다.

"겨울 철새는 북위 60도선에 있는 시베리아나 몽골 등의 툰드라 지역에서 오는 새들입니다. 그곳에서 출발하기 전에 몸무게의 2배 정도로 몸을 불리죠. 장거리 비행을 위해 연료를 몸에 가득 채워서 거구가 됩니다. 대부분의 새들은 짧게는 4천km, 많게는 1만 2천km 정도의 거리를 한 번도 쉬지 않고 날아옵니다. 3일, 길게는 3주가 걸리죠.

기착지나 중간 기착지에 도착하면 몸무게는 절반 정도로 줄어듭니다. 최악의 기아 상태죠. 이곳에 먹이나 모래톱과 같은 쉴 만한 곳이 없다면 큰일 납니다. 가령 큰고니는 수심이 1m 이상이 되면 먹이를 먹을 수 없습니다. 세종보 담수로 모래톱이 사라지고 수심이 4m가 되면 그야말로 죽음이지요."

"이길 때까지 농성한다... 한바탕 축제 위해"

 세종보 천막 농성장 앞에 세운 깃발
세종보 천막 농성장 앞에 세운 깃발김병기

이 처장은 환경운동의 매력은 보고 싶은 새를 보면서 그 터전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온갖 개발과 환경 훼손에 맞선 싸움이 아니라 새를 향한 연민과 애정을 지키는 게 궁극적 목표라는 뜻이다. 동료들에게 왜 유독 새에만 집착하느냐는 말도 많이 들었단다. 이 처장은 "새가 나의 뿌리이기에 그걸 버리면 환경 운동을 할 이유가 없어진다"고 대꾸해 왔다고 말했다. 싸움의 현장에선 '그깟 새 한 마리 때문에'라는 비아냥도 많이 들었단다.

"지금이 대멸종의 시대라고 하죠. 멸종의 속도가 과거보다 1000배 정도 빨라졌다고 과학자들은 경고하고 있어요. 이 속도로 가면 망합니다. 먹이사슬의 끝에는 인간이 있지요. 새 한 종의 멸종을 막는 건 인간의 멸종을 막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깟 새 한 마리만을 지키는 게 아니라 우리의 공동체를 지키는 일이죠."

이 처장은 "죽을 때까지 환경운동을 하는 분을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다"라면서 "저는 죽을 때까지 새를 지키는 환경운동을 해 내가 걷는 길에 따라나서는 후배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그 길 위에 세종보 천막 농성장도 세워져 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농성을 할 수 있을까? 이 처장은 "이길 때까지"라고 못 박았다. "설령 다시 보가 막힌다 해도 보를 철거하는 게 우리의 최종 목표"라고 명토 박았다.

"대전 갑천의 태봉보가 철거되는 현장을 봤을 때 기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세종보 농성장에서도 그동안 함께 농성장을 지켜준 많은 분들과 이곳에 깃들어 사는 수많은 새들과 함께 한바탕 축제를 벌이고 싶습니다."
#이경호 #세종보 #천막농성 #4대강사업 #금강
댓글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8,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환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환상 궁합, 고기 먹을 때 이거 빠지면 서운합니다 환상 궁합, 고기 먹을 때 이거 빠지면 서운합니다
  2. 2 LG그룹 만년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킨 결정적 질문, 이렇게 나왔다 LG그룹 만년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킨 결정적 질문, 이렇게 나왔다
  3. 3 맞혀보세요, 둘 중 어느 쪽이 유채꽃이게요? 맞혀보세요, 둘 중 어느 쪽이 유채꽃이게요?
  4. 4 [단독사진] 윤석열, 판교 한 음식점 방문...자택 이외지역 목격은 처음 [단독사진] 윤석열, 판교 한 음식점 방문...자택 이외지역 목격은 처음
  5. 5 '저속노화' 의사가 휴직한 이유, 거기에 달린 촌철살인 댓글 '저속노화' 의사가 휴직한 이유, 거기에 달린 촌철살인 댓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