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가 소장하고 있는 공병우 한영타자기와 체재타자기
강득주
한글 타자기 개발자로 본격적인 행보의 시작은 1949년 7월 10일 조선발명장려회 한글 타자기 공모에서 2등을 수상 하면서부터 이다. 공병우 박사의 한글 타자기는 초성, 중성, 종성으로 구성된 세 벌식 한글 자판으로 효율성을 중요시하던 그의 성향대로 속도 중심으로 설계된 타자기를 개발하였다.
뿐만 아니라 종성 받침 입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쌍 초점 가이드 방식을 고안하여 미국과 한국에서 특허를 출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1950년대 세로 쓰기와 한자 병행 글쓰기가 대세이던 시절에 한글만 쓸 수 있는 공병우 타자기는 대중에게 호응을 얻지 못했다. 심지어 속도 중심의 공병우 타자기는 글꼴이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빨랫줄 글꼴'이라는 조롱을 당하기도 하였다.
공병우 박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조선발명장려회 2등 수상 이후 본격적으로 타자기 생산을 준비하기 위해 미국 언더우드사에 3대의 시제품을 의뢰하고 기다리던 중에 한국전쟁이 발발한다. 서울에서 북한군에 피랍된 공병우 박사는 죽음의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으나, 오히려 전쟁 중에 그는 기회를 잡게 된다.
전쟁 중에 신속한 문서 작성이 필요했던 군의 수요와 맞아떨어지며, 당시 해군 손원일 제독의 의뢰로 1952년 공병우 박사는 해군에 한글 타자기를 납품하고 군의 타자수 양성에도 기여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공병우 박사는 한글 타자기 상용화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공병우 타자기는 한국전쟁 당시 정전 협정문 작성에 사용된 것으로 유명하다.

▲공병우타자기로 작성된 정전협정문 공병우타자기로 작성된 정전협정문 중 일부 출처 국가기록원. https://theme.archives.go.kr/next/monthly/viewMain.do?year=2007&month=07
국가기록원
한국전쟁 후, 1960년대는 한글 기계화 운동과 함께 타자기 전성시대를 맞이한다. 속도 중심의 세 벌식 자판인 공병우 타자기와 예쁜 글씨를 우선하는 다섯 벌식 자판 김동훈 타자기는 국내 시장을 60대 30의 점유율로 경쟁하게 된다. 하지만 속도를 중시하는 수요와 글꼴을 중시하는 수요가 맞물리면서 공병우 박사는 타자기 시장을 하나로 통일하지는 못한다.
김동훈 타자기의 김동훈 대표와 회사를 통합하자는 제의도 하였으나, 거절당하고 공병우 박사도 예쁜 글씨 타자기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1969년 정부는 공병우 박사나 김동훈 대표와 같이 민간에서 개발한 한글 자판을 채택하지 않고 정부에서 만든 한글 네 벌식 자판을 표준 자판으로 공포하고 만다.
아직도 회자되는 공병우 박사의 유언
공병우 박사는 정부와 대립하며 세 벌식 한글 자판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세 벌식 자판을 표준 자판으로 제정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투쟁했으며, 많은 고초를 겪기도 한다. 공병우 박사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타자기를 개발한다. 1972년에는 기계식 타자기에서 유일하게 한글과 영문을 함께 입력할 수 있는 한, 영 타자기를 개발하기도 한다.
공병우 박사는 1988년 한글 문화원을 열고 젊은 개발자들과 아래아 한글을 개발한 박흥호와 함께 세 벌식 입력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당시 젊은 프로그래머 강태진, 정내권, 이찬진 등에게 한글과 컴퓨터 창업을 지원하는 등 한글 기계화에 지속적인 열정을 보인다.

▲공병우박사와 타자기 고 공병우박사. 출처 공안과 홈페이지
공안과
안과 의사로도 큰 업적과 활약을 하였지만, 공병우 박사의 생애는 한글 기계화에 더 큰 방점이 찍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업적을 기리기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2년 12월 과학기술유공자로 공병우 박사를 지정하고, 2023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 헌정식에서 대통령 명의로 증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미 그 이 전에도 공병우 박사의 한글 사랑과 한글의 기계화와 과학화를 위해 평생을 헌신해 온 공적으로 1990년 은관 문화 훈장을, 1995년에는 금관문화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5년 88세를 일기로 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더 과학적이고, 더 빠르고, 더 배우기 쉬운' 자판 연구에 매진하며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가셨다. 서거 30주기가 되었지만 공병우 박사의 마지막 유언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나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지 말고, 장례식도 치르지 말라. 쓸 만한 장기는 모두 기증하고, 남은 시신도 해부용으로 기능하라. 죽어서 땅 한 평 차지하느니 차라리 그 자리에 콩을 심는게 낫다. 유산은 맹인 복지를 위해 써라."
공병우 박사와 한글기계화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아래의 글을 함께 읽어보시면 더욱 참고가 될 듯 합니다.
한글기계화 톺아보기(3)
https://brunch.co.kr/@rettrofit/45
공병우 체재體裁 타자기(Facit1620)
https://brunch.co.kr/@rettrofit/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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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하는 삶을 꿈꾸었으나, 문화 행정영역에서 노동자로 살고 있다. 노동 외에 타자기 연구하는 덕후이자 수집가로 한글문화와 '육아' 까지 3가지 영역에서 각각의 페르소나를 넘나들며 살고 있다. 현재 브런치 스토리에서 타자기에 대한 글을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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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과' 설립과 타자기, 이 분의 위대한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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