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으로 뒤덮인 논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는 재두루미 가족.
정수근
그렇게 한참을 달렸다. 달리는 차창으로 예의 주시하는 눈이 커지면서 저 멀리서 재두루미 가족이 눈으로 뒤덮인 논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눈으로 뒤덮인 논바닥을 열심히 부리로 쪼며 재두루미 7마리가 그곳에서 열심히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반가웠다. 아직 떠나지 않았구나, 속으로 생각하면서 떠나기 전에 많이 먹어둬라, 기원도 해본다. 그러나 소먹이용으로 공급하기 위해서 곤포사일리지로 볏짚을 모두 걷어가버린 논엔 낙곡이 크게 남아있지 않아 열심히 부리로 쪼지만 허탕이 많을 듯해서 너무 안타깝게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연신 부리로 쪼고 있는 것을 보면 낙곡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 듯해 한편 안도가 되기도 한다.
그들의 고향 땅인 먼 시베리아 등지로 날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고, 그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해서는 많은 먹이를 먹어야 하는데 그 먹이가 많지를 않은 듯해 걱정인 것이다.
배고픈 겨울철새들을 위한 먹이 나눔 & 야생성을 거세하는 것 아니냐?
그래서 흑두루미와 재두루미들이 겨울을 잘 나게 하기 위해서 먹이 나눔을 하는 곳이 많다. 대표적으로 순천만과 천수만 같은 곳에선 오래 전부터 그곳을 찾는 흑두루미와 재두루미 그리고 그밖의 겨울철새들을 위해서 먹이 나눔을 오랫동안 해오고 있다.
그러나 이곳 의성에선 재두루미 도래 소식이 뒤늦게 알려져 이제사 녀석들을 위해서 "이곳에서도 먹이 나눔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들이 들여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올겨울 인근 지역의 농민회와 전교조 등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해서 먹이 나눔의 첫발을 떼본 것이다.

▲ 경북 의성의 한 논에서 열심히 먹이활동을 하는 재두루미 가족들을 만났다. 이들은 곧 그들의 고향인 시베리아 등지로 돌아갈 것이다.
정수근
재두루미 7개체를 뒤로하고 의성지역에서 유일하게 먹이 나눔을 시작한 곳으로 다시 길을 잡아 달려가 보기로 했다. 한참을 달려 다다른 논 저 멀리서 다시 30여 개체의 재두루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처럼 이들은 소규모로 분산해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분산해서 먹이활동을 하고는 저녁 잠자리는 낙동강을 찾아 그곳 모래톱에서 잠을 자는 패턴으로 녀석들은 이곳에서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두어 주 전 낙동강에서 만난 제법 많은 수의 재두루미들은 이곳에서 겨울을 나는 녀석들로 그 수가 수백은 되었다.

▲ 낙동강에 머물고 있는 재두루미. 수백의 재두루미 낙동강을 기반으로 겨울을 나고 있다.
정수근
그런데 이미 상당수의 재두루미들은 고향으로 떠난 것 같고, 그 중에 일부가 남아서 소규모로 분산해서 다니며 먹이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그 모습들을 이동하면서 간간이 만나게 된 것이었다.
녀석들도 뒤로 하고 의성에서 유일하게 먹이 나눔을 하고 있는 들판으로 향했다. 그곳이 이날의 마지막 행선지로 역시 이곳에 남은 마지막 재두루미 가족들로 보면 될 것이었다. 그렇게 다다른 논 저 멀리 또한 눈으로 뒤덮였고 잿빛의 재두루미를 쌓인 눈 때문에 더욱 분간하기가 쉽지 않았다.

▲ 경북 의성에서 만난 가장 많이 남은 마지막 개체 대략 50여 개체의 재두루미 가족들이 모여 열심히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정수근
그래서 처음에 한 개체도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좀더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 그곳엔 재두루미 50여 개체가 남아 열심히 먹이활동을 하고 있는 반가운 모습을 이윽고 만날 수 있었다. 이 일대에 남은 거의 마지막 재두루미들이 아닌가 싶었다.
녀석들은 논으로 분산해서 열심히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고, 그 중 일부는 먹이 나눔을 위해 나락을 뿌려둔 농로 쪽으로 달려와 뿌려놓은 나락을 열심히 쪼아먹고 있었다. 그간 그렇게 뿌려 놓았지만 야생의 녀석들은 쉽게 이곳으로 달려오지 않았는데 이윽고 먹이 나눔을 해둔 낙곡도 녀석들이 쪼아먹고 있어서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 농로쪽에 먹이나눔으로 뿌려둔 나락을 쪼아먹고 있는 재두루미 가족들. 최근 전해듣기로 저 나락을 깨끗이 먹어치웠다 한다.
정수근
그렇게 해서 이날 모두 100여 개체가 조금 못 되는 재두루미를 만났고, 그들이 이곳 의성에 그때까지 남은 마지막 무리로 보였다. 이들이 아직도 남아서 열심히 먹이활동을 통해 에너지를 비축하는 중인 것이고 그 모습을 필자는 마지막으로 확인한 것이다.
눈으로 뒤덮인 논에서 열심히 먹이활동을 하고 있고 그중 일부는 농로로 다가와 그곳에 뿌려진 나락을 열심히 먹고 있는 모습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온 것이다. 야생의 친구들이 인간이 뿌려준 먹이를 열심히 먹고 있는 그 모습을 말이다.
인간과 야생의 공존의 질서를 위하여
인간과 야생의 공존의 장이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혹자는 야생이 친구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에 대해서 "야생성을 거세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턱없이 먹이가 부족한 현실에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고향을 돌아갈 힘을 비축하기도 쉽지 않아서 중간에 낙오하는 개체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 천수만에서 그곳을 찾는 흑두루미에게 먹이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김신환동물병원의 김신환 원장의 답변이다.

▲ 배고픈 겨울철새들을 위해 사람의 손에 의해서 뿌려진 나락을 열심히 쪼아먹고 있는 재두루미 가족
정수근
예전처럼 볏짚을 모두 걷어가지 않고, 추수시 흘린 낙곡이 적지 않았던 시절엔 먹이 나눔을 하지 않아도 됐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볏짚도 모두 걷어가 버리고 농업기술의 발달 덕분으로 추수시 흘리는 낙곡도 줄어서 논에서 먹이를 구하기가 예전보다는 어려운 현실에서 그렇게라도 먹이 나눔을 하지 않으면 겨울철새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힘을 비축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배고픈 겨울철새들에게 나누어주는 먹이가 그렇다고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다. 풍족하게 줄 먹이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주는 먹이가 그들의 야생성을 제거할 만큼 충분한 것도 아니어서 먹이 나눔으로 그들의 야생성이 거세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는 기우일 뿐일 듯했다.

▲ 재두루미 한 녀석이 눈으로 뒤덮인 논을 박차고 날아올라 창공을 날고 있다.
정수근
이렇게라도 인간과 야생의 공존의 질서가 지켜지고 있는 모습이 반가울 뿐인 것이다. "부족한 먹이지만 잘 먹고 잘 돌아가라. 그래서 다시 건강한 모습을 다시 만나자" 하는 소리가 은연중에 흘러나오게 된다.
은백의 눈으로 뒤덮인 논에서 잿빛의 재두루미 무리를 마지막으로 보면서 올겨울 마지막 인사를 그렇게 남겨본다. "잘 먹고, 잘 가거라 반가운 우리 야생의 친구들아 내년에 꼭 다시 만나자!"

▲ 수십 마리의 재두루미가 창공을 날고 있다.
정수근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간의 기사를 엮은 책 <강 죽이는 사회>(2024, 흠영)를 출간했습니다.
공유하기
함박눈 내린 낙동강, 겨울진객 재두루미 떠나보내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