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분열 속 "통합의 안창호 리더십 절실하다"

3월 10일 오전 10시 30분, 도산 안창호 선생 서거 제87주기 추모식 엄수

등록 2025.03.10 16:15수정 2025.03.10 16:15
0
원고료로 응원
 김재실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장이 추모식사를 낭독하고 있다.
김재실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장이 추모식사를 낭독하고 있다. 이영일

한평생 조국의 독립과 민족 부흥을 위해 헌신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서거 제87주기 추모식이 10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강남구 소재 도산안창호기념관 강당에서 거행됐다.

[관련 기사 : '도산 안창호' 서거 87주기... 드라마·영화에 담긴 민족 지도자]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아래 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이날 추모식에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두고 혼란한 정국속에서 통합을 강조한 안창호 선생의 정신을 되새기려는 듯 수많은 시민들과 흥사단 단우들이 대거 참여했다. 추모식장을 찾았지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 문 밖에서 추모식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흥사단 단우들은 공식 추모식 40분 전에 미리 모여 안창호 선생 묘소를 직접 참배하고 헌화했고 강정애 국가보훈부장관과 강남구청장, 강남구의회 의원 등 관계자들도 추모식 시작 15분 전 미리 도착해 선생의 묘소에 참배했다.

"안창호 선생 살아 계셨다면 거짓과 허위가 난무하는 상황에 질책하셨을 것"

추모식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국민의례로 시작됐다. 사회자가 "애국가를 안창호 선생께서 작사하셨다는 마음으로 모두 불러달라"고 말하고 모든 참가자가 1절부터 4절까지 경건한 마음으로 애국가를 함께 불렀다.

 도산 안창호 선생 서거 제87주기 추모식 참가자들이 안창호 선생과 순국 선열들께 묵념하고 있다.
도산 안창호 선생 서거 제87주기 추모식 참가자들이 안창호 선생과 순국 선열들께 묵념하고 있다. 이영일

김재실 기념사업회장은 추모식사를 통해 "도산 선생은 거짓을 아주 싫어하셨다. 거짓은 이 나라를 죽인 원수라고 하셨다. 우리가 망한 것도 거짓 때문이니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마라. 꿈에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통회하라고 말씀하셨다"고 소개했다.


김 회장은 "하지만 오늘날 우리 현실은 거짓과 허위가 팽배하고 참으로 참담하다. 아마 지금 도산 선생이 살아 계셨다면 오늘의 혹독하고 불확실하고 거짓과 허위가 난무하는 상황을 두고 '100년 전과 같이 아직도 깨닫지 못하였구나'라고 질책하셨을 거다. 우리는 지금 모두 선생의 영정 앞에 머리숙여 '죄송합니다'라고 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보훈부장관 "어려운 상황... 국무위원으로 진심 죄송"


강정애 국가보훈부장관은 "안창호 선생님께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애써주신 데에 비해 오늘날 상황은 너무나 많은 어려움을 드러내고 있어 국민의 한 사람으로 국무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마음을 올린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국내는 물론 해외의 동포들을 규합하고 독립운동과 인재양성을 위해 한 평생을 바친 안창호 선생님의 애국정신은 서거 87년이 지난 지금도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며 "광복 80주년을 맞아 안창호 선생님과 함께 애국선열의 숭고한 정신을 모든 국민이 기억·계승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조현주 흥사단 이사장 직무대행이 추모식이 끝난 후 안창호 선생 영정앞에 헌화하고 있다.
조현주 흥사단 이사장 직무대행이 추모식이 끝난 후 안창호 선생 영정앞에 헌화하고 있다. 이영일

"지금이야말로 인격 혁명과 통합의 도산 리더십 절실"

조현주 흥사단 이사장(직무대행)은 "계엄 이후 국내 사정은 분열과 정쟁이 상식을 무너뜨리는 등 혼란스럽다. 사회에 만연한 분노와 극단적 대결 풍토는 공동체 자산을 훼손하고 있다. 이러한 시절에 도산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또 묻고 물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인격 혁명과 통합이라는 도산의 리더십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조 직무대행은 "도산은 시대적 과업에 누구보다 정직하게 응답하셨다. 군주국가에서 민주국가로의 전환을 앞장서 국가적 과제를 풀어나갔다. 뼛속까지 민주주의자인 도산은 2천만 국민이 다 '황제'라고 선언하면서 민주공화국 건설의 꿈을 우리에게 물려줬다. 이 가르침을 바탕으로 극단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에 대공의 바람을 불어 넣어 선한 공동체의 믿음을 회복하도록 애기애타의 정신을 전파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도산 안창호의 모든 일생은 오로지 나라사랑뿐"

1878년 11월 9일 평안남도 대동강 하류 도롱섬에서 가난한 선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안창호 선생은 1897년 18세 청소년 나이 때 평양 쾌재정에서 당시 단상에 앉은 고관들을 비판하는 일명 만민공동회 연설로 일약 전국적 명사로 떠오른다.

 평생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안창호 선생은 투옥과 석방을 반복하며 나빠진 건강을 이기지 못하고 평생 소원인 해방을 보지 못한 채 1938년 3월 10일 서거했다.
평생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안창호 선생은 투옥과 석방을 반복하며 나빠진 건강을 이기지 못하고 평생 소원인 해방을 보지 못한 채 1938년 3월 10일 서거했다. 이영일

이듬해 독립협회에 가입한 안창호 선생은 1902년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랐지만 동포의 비참한 상황을 목격하고 학업 대신 독립의 길을 걸었다. 1905년 미국에서 공립협회를, 1907년에는 국내에서 신민회와 평양 대성학교와 태극서관 등을 설립하는 등 본격적 독립운동에 뛰어든다.

1909년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을 빌미로 일제에 체포되고 1910년 한일합병이 되자 다시 미국으로 망명길에 올라 1912년대한인국민회를, 1913년에는 흥사단을 창립했다.

1919년 3.1운동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에 취임한다. 1931년에는 윤봉길 의사 홍커우공원 폭탄 사건과 관련해 일제에 체포됐고 1935년에 석방됐으나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투옥되며 급격히 나빠진 건강을 이기지 못하고 1938년 3월 10일 서거했다.

#안창호 #안창호서거87주기 #흥사단 #나라사랑 #독립운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죽어도 서울 밖으론 안 가요" "죽어도 서울 밖으론 안 가요"
  2. 2 천세대 아파트 상가인데 '텅텅'... 쓰레기 분리수거장은 '호황' 천세대 아파트 상가인데 '텅텅'... 쓰레기 분리수거장은 '호황'
  3. 3 예산 논란 무색케 하는 몸값, 순금 162kg 황금박쥐상 예산 논란 무색케 하는 몸값, 순금 162kg 황금박쥐상
  4. 4 "아빠 괜찮아, 사랑해"...이상민, 징역 7년에도 환한 미소 "아빠 괜찮아, 사랑해"...이상민, 징역 7년에도 환한 미소
  5. 5 윤석열 시절, 택시에서 자주 들었던 저주의 말들 윤석열 시절, 택시에서 자주 들었던 저주의 말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