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착한 일 하는 천사' 아니고 사회복지노동자입니다

[평등으로 다시 만난 세계 : 차별에 저항하는 여성노동자의 목소리 ⑤]

등록 2025.03.12 13:10수정 2025.03.12 13:10
1
"힘든 일을 하는 그들의 혼이 작은 예술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알았다. 그렇다, 우리가 싸우는 것은 빵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장미를 위해서도 싸운다." - 제임스 오펜하임의 시 '빵과 장미' 중

2025년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우리는 성별 임금 차이 없는 평등 일터, 비정규직 차별 없는 평등 일터, 성폭력 없는 안전한 일터를 위해 한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 113년 전 미국 메사추세츠 주 로렌스지방의 섬유산업 여성 노동자들이 생존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 것처럼.

공공운수노조는 <평등으로 다시 만난 세계: 차별에 저항하는 여성노동자의 목소리> 기획연재를 통해 성차별적인 복무규율(메이크업, 유니폼, 구두 등)을 비롯해 여성 노동자의 건강권 문제, 초단시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요구, 남초 사업장에서 활동하는 여성 노동자페미니스트의 목소리를 전달할 예정이다. 탄핵 정국에서 광장으로 나온 여성 노동자들의 연대와 저항의 목소리를 들어보자.[기자말]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는 다양한 집회에 참석하며 연대의 폭을 넓히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는 다양한 집회에 참석하며 연대의 폭을 넓히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나는 장애인복지 현장에서 7년째 일하는 사회복지노동자이고, 청년 여성이다. 장애인과 그 가족을 만나 가족 안에서 해결하기 힘든 경제적, 정서적 어려움을 지원하기도 하고, 복지기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기관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공적 서비스와 제도를 안내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작년부터는 발달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자립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그 과정을 조력하고, 그들의 일상생활이 안정적이고 즐거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직업을 물어보는 사람에게 '사회복지사'라고 얘기하면, "좋은 일 하시네요", "힘드시겠어요"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매체에서도 사회복지사는 대부분 여성노동자로 아동, 노인, 장애인을 돌보는 모습으로 조명된다. 내가 사회복지사를 꿈꾸게 된 계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청소년기에 막연하게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사회복지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대학에서 공부한 사회복지는, 단순히 개인이 다른 사람을 돕는 일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복지를 전공했거나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복지국가'라는 말은 익숙하게 들어봤을 것이다. 사회복지는 국가의 가장 큰 책임 중 하나다. 모든 국민이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을 넘어서, '행복한 삶'을 추구하고 실현하도록 만드는 것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서비스를 직접 실천하는 사람들이 바로 사회복지사다.

모호한 장래희망으로 선택한 사회복지학과였지만 운이 좋게도 대학 과정에서 사회복지사로서의 미래를 그릴 수 있었다. 당시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며 파업에 동참하고 연대하는 활동에서부터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탄핵까지 많은 연대와 집회 자리에 청년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나 역시 다양한 현장에 연대했다. 전장연, 빈곤사회연대를 만나 세미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사회복지사가 되면 더 적극적인 권리옹호 현장에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연대한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우연히 하종강 교수님의 강의에서 '돈 주는 사장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노동자다.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라는 말을 들은 뒤 사회복지노동조합을 찾았고, 대학생 신분으로 가입하여 지금까지 하고 있다.

졸업 후 처음 일한 곳은 출산과 육아를 하는 장애여성들이 만든 장애인자립생활센터였고, 설립한 지 1년 정도 되는 소규모 조직이었다. 활동가들은 모두 자녀를 양육하는 장애여성이었다. 휠체어를 타는 사람, 말이 아닌 사진과 글자판으로 소통하는 사람 등 장애 유형도 다양했고 남편이 있거나 혼자 자녀를 양육하는 등 가족 구성도 다양했다.

장애와 여성이 교차하면 단순히 장애인이어서, 여성이어서 차별을 경험하는 것보다 훨씬 견고한 차별을 경험한다. 정책적으로도 장애인을 지원하는 활동지원서비스가 있었지만, 당시엔 여성 장애인의 자녀 양육을 지원하는 홈헬퍼 서비스와 동시에 사용할 수 없었고(개선되어 지금은 동시 사용이 가능하다), 아동 양육을 지원하는 아이 돌보미 서비스는 엄마의 장애를 이유로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돌봄 공백 속에서 장애여성은 자녀의 행동에 즉각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워 자녀가 다치는 경우도 있었고, 가까운 가족에게 양육권을 빼앗기듯 넘겨줘야 하기도 했다. 당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청과 구청을 다니며 '행정'과 '규정'이라는 것들이 메꾸지 못하는 지원 공백을 고발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활동을 했다. '장애 엄마'들이 만나 서로 연결되고 출산과 양육 경험을 나누고, 함께 겪은 일이기 때문에 공감을 넘어 통감하는 경험들을 모아나갔다.


광장에서, 세미나에서 장애여성의 이야기를 나눌 공간과 기회를 만드는 일이 즐거웠고, 꼭 필요한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보조금은 작은 단체에 관대하지 않았다. 당시 내 월급은 1년짜리 지원사업에 포함된 인건비에서 나왔다. 하지만 나와 활동가가 만들어낸 크고 작은 변화들은 지자체에서 기대했던 '실적'에 미치지 못했고, 1년 지원 기간이 끝나면 내 월급도 같이 끝날 예정이었다. 결국 나는 계약만료로 퇴사하였다. 총 근무 경력 11개월.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나와야 했다.

청년 여성노동자를 우선 채용하는 사회복지계의 저임금 구조


 유청우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조합원
유청우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조합원 공공운수노조

안정적인 직장을 꿈꾸며 사회복지관으로 입사했지만, 본질적으로 구조적 문제는 다르지 않았다. 사회복지사의 임금 상승 폭은 매우 작다. 공무원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지만 늘 그 아래를 맴돈다. 입사 이후 오랫동안 매년 1% 전후의 상승폭을 보였다. "8월이 승급달인데, 금액 차이가 안 나서 승급달인 줄 몰랐어요"라고 자조적인 농담을 할 정도였다. 실제로 내가 1년 차에서 2년 차 직원으로 승급되었을 때, 당시 오른 금액은 겨우 1만 원이었다. 그나마 수도권은 임금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 있지만, 기관이 아닌 시설이나 비수도권 지역은 더욱 열악하다.

서울시와 지방자치단체는 시범사업을 만들고 전담인력을 남발하며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다. 1~3년간의 시범사업이 종료되면 전담인력 노동자의 계약 기간도 만료된다. 2년 이상의 지원사업의 경우에도 1년마다 성과를 평가하고 다음 연도 지원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전담인력 노동자의 계약기간은 늘 1년마다 갱신한다.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며 안정적으로 운영하던 사업도, 정권이 바뀌면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도 한다. 사라지는 것은 사업뿐만이 아니다. 그 사업을 담당하는 노동자의 설 자리도, 지원을 받으며 안정적인 생활로 나아가던 이용자의 권리도 사라지게 된다. 사람을 지원하는 일에 어떻게 기한이 있을 수 있을까. 그 성과라는 것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고, 누가 그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특히 인건비를 포함한 사업은 사업비 안에 인건비가 있는 경우가 많다. 기관은 한정된 사업비 내에서 인건비 지출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가장 적은 돈을 줄 수 있는 인력을 채용한다. 서울시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인건비 지급기준에서는 군 경력 2년을 근무경력으로 인정하고 있다. 때문에 군 경력이 포함되지 않은 '5급 1호봉' 직원을 가장 우선적으로 채용한다. 사회복지학과를 갓 졸업하고 경력이 없는 20대 초반의 여성이 가장 많이 지원한다. 청년 여성은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시작할 확률이 높다.

이러한 구조적 불평등과 함께 직장 내 괴롭힘, 다양한 차별상황, 지원하는 과정에서의 소진 등으로 많은 동료들이 퇴사하고 현장을 떠나는 선택을 했다. 꿈을 가지고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현실을 알고 사회복지현장을 선택하지 않았다. 동료를 지키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더 잘 지원하기 위해서는 회사부터 행복하고 안전한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뜻이 맞는 선배들이 모여 2020년 3월, 기관 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대학생 때부터 사회복지노동조합의 조합원이었던 나는 소속 지회가 생겼고, 이듬해 운영위원이 되었다.

사회복지노동자 향한 해묵은 인식들, 임금 인상 막고 있어

1여 년의 교섭 끝에 2021년 사측과 단체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자랑하고 싶은 많은 조항 중 하나는 여성 노동자의 권리보장에 대한 항목이 있다는 것이다. 단체협약을 통해 임신한 직원이 편리하고 가까운 위치의 주차구역을 우선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고,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임신, 출산 시 단축근무나 휴직 등을 한 번 더 명시하여 서로 잘 지킬 수 있도록 하였다. 우리 지회는 3월 10일이 창립기념일이어서 창립 이후 3.8 여성의날을 함께 기념하고 있다. 조합원들과 빵과 장미를 나누기도 하고, 노동권과 여성인권에 대한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특히 사회복지노동자뿐만 아니라 식당 내 조리 노동자, 청소 노동자, 복지일자리나 공공일자리로 근무하는 노동자들과도 노동절, 창립기념일을 함께 하며 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기관 내에서 구조적인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사측과 임금협상을 하는 '임단협'은 단체교섭의 핵심이지만, 보조금으로 운영하는 사회복지기관에서는 사측과 임금협상을 할 수 없다. 사회복지노동자의 임금, 더 나아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지자체, 보건복지부의 역할이 핵심이다. 그러나 사회복지사는 '천사 같다', '헌신해야 한다', '숭고한 일을 하고 있다'라는 인식에 막혀 사회복지노동자의 임금 인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7년 동안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면서 여러 차별과 소진을 경험했지만, 나는 '사회복지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지금까지 일할 수 있었다. 내가 부당한 일을 당하면 나를 지원할 든든한 노동조합이 있고, 내가 만나는 이용자분들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 연대하는 경험을 하며 성장하고 있다. 더 많은 사회복지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연대하여, 권리를 존중받으며 일했으면 좋겠다. 사명을 가지고 일하는 사회복지노동자가 구조적 문제로 지쳐 현장을 떠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일하는 사회복지노동자가 행복할 때,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지원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우리는 '착한 일 하는 천사'가 아닌, 복지서비스를 실천하는 사회복지노동자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조합원입니다.
#여성노동자 #사회복지노동자 #노동조합 #공공운수노조 #차별을넘어
댓글1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는 다양한 업종의 노동자가 함께 하는 민주노총 산하 최대의 산별노조입니다. 공공부문, 운수부문, 사회서비스 등 부문의 모든 노동자가 함께 하는 노동조합입니다.정규직과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 뿐 아니라 실업자·퇴직자·해고자 및 조합 임용자, 예비 노동자도 가입할 수 있습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쓰레기 모으던 독거 노인이 '딱 한 번' 꺼낸 말, 잊을 수가 없다 쓰레기 모으던 독거 노인이 '딱 한 번' 꺼낸 말, 잊을 수가 없다
  2. 2 조용하던 익산 시골 마을에 주차요원까지... 무슨 일이람? 조용하던 익산 시골 마을에 주차요원까지... 무슨 일이람?
  3. 3 [단독영상] 청계천 백로 붙잡고 사진 찍는 외국 관광객들 [단독영상] 청계천 백로 붙잡고 사진 찍는 외국 관광객들
  4. 4 김어준씨에게 묻습니다...그게 상식에 맞습니까? 김어준씨에게 묻습니다...그게 상식에 맞습니까?
  5. 5 [단독] '연어 술파티? 외부 음식 없었다'던 수원지검... 교도관 문답서엔 "비싼 도시락" [단독] '연어 술파티? 외부 음식 없었다'던 수원지검... 교도관 문답서엔 "비싼 도시락"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