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9월 16일 오전 서울 중구 신당역 여성화장실 입구에 스토킹 살인사건의 희생자인 여성 역무원을 추모하는 국화꽃과 시민들이 작성해 붙인 메모가 붙어 있다.
권우성
그리고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2022년 9월 14일, 출근하여 일하고 있던 여성 노동자가 같은 직장의 남성 노동자에게 살해당했다. 사건을 접하고 우리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고 분노는 주체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긴급하게 이 사건을 작업장에서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침탈당한 것이며 직장 내 성폭력이라고 규정하고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일터, 일하다 죽지 않을 안전한 일터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우리의 요구에 여성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화답했다. 민주노총, 산별, 단위노조의 이름으로 여성 노동자들이 함께 투쟁했다. 여성이 평등한 사회, 여성이 안전한 사회를 주장하고 활동해 온 다양한 여성 단체들이 추모의 자리, 투쟁의 현장을 지켰다. 피해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장례식장을 찾고, 추모제를 열고, 추모집회를 하는 모든 자리에 작업장 밖 여성 노동자들, 여성 단체 활동가들이 함께했다.
2023년, 우리는 3.8세계여성의날 정신계승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성평등 조직상'을 받았다. 3월 8일은 여성이 삶의 주체로서 더 이상 착취와 배제, 억압과 굴종을 인내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투쟁의 역사, 여성 연대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자고 함께 결의하는 날이다. 여성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 죽지 않을 권리를 요구하며 여성 노동자들이 함께 벌였던 투쟁이었는데 우리가 상을 받은 것은 사건 현장의 당사자들에게 보내는 지지와 격려였을 것이다.

▲ 2023년 3월 8일 열린 3.8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대회에 참가한 이현경 조합원(오른쪽 맨 끝)
이현경
'우리'는 지하철에서 일하는 동료이면서 함께 책을 읽어 온 여성 노동자들이다. 모임 이름은 정직하고 간명하다. 우리는 '책 읽는 여성 노동자 모임'이다. 연령과 세대가 다르고 취향도 제각각인 열 명도 안 되는 여성 노동자들이 햇수로 7년째 꼬박꼬박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고 그 느낌과 배움을 나누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제되고 만날 수 없던 동안은 화상으로 연결하여 모임을 유지했다. 숨소리도 열기도 느낄 수 없는 평면의 공간에서 얼굴만 보는 게 답답했지만 그래도 모임을 지속했다.
책 모임에 걸맞게 그동안 우리가 함께 읽은 책은 73권이나 된다. 우리는 종이책을 읽을 뿐만 아니라 여성 예술가들의 그림과 공예, 사진을 찾아다니고, 여성의 삶을 영화로 만나고, 여성 노동자가 치열하게 싸웠던 역사적 장소를 걸으며 지난 투쟁의 의미와 현재성을 만나기도 하였다. 우리가 투쟁하는 자리에 연대하러 온 동지들의 뜨거운 마음을 받아 감격하기도 하였고 힘든 싸움을 해나가고 있는 동지들에게 머릿수라도 보태고 싶어서 그 곁에 가서 함께 서 있기도 하였다.
우리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같이 읽을 것이고 다른 여성 노동자들에게도 같이 공부하고 놀자고 권할 것이다. 퇴근 후 혼자 가볍게 오던 모임에 지금은 엄마가 되어 잠투정하는 아이를 달래서 업고 오기도 하고, 야간근무 후 금쪽같은 휴일 저녁에 두 시간 고속버스를 타고 와서 모임에 참여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몇 년 후 퇴직하면 퇴직자 읽기 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혼자서는 읽지 않았을 책들, 함께 읽으면서 알게 된 여성과 여성 노동자의 수많은 이야기들, 몰라서 지나치고 용기 내기 힘들어서 외면했을 여성 노동자의 투쟁과 삶을 공유하고 동참하자고 서로를 계속 채근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외칠 것이다. "세상을 바꾸자!", "우리가 평등이다!"
작업장의 페미니즘
이현경 (지은이),
산지니,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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