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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방 참말로 고맙소잉"...모두를 울린 담양댁을 만났습니다

[인터뷰] 전남 곡성군 고향사랑기부 답례 손편지의 주인공, 양현숙 할머님

등록 2025.03.14 11:26수정 2025.03.1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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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양댁 어르신이 살고 있는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 흑석마을 전경. '골짝나라' 곡성에서도 교통이 많이 불편한 지역에 속한다.
담양댁 어르신이 살고 있는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 흑석마을 전경. '골짝나라' 곡성에서도 교통이 많이 불편한 지역에 속한다.이돈삼

'우리 마을에 이불 빨래방 맹그러 줘서 참말로 고맙소잉. 다들 복 많이 받을 것이오. 나도 여러분님들 덕택에 얼마 안 남았지만 편히 살다가 가겟소. 징하게 감사허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편지글의 일부분이다. 편지는 곡성군의 '마을 빨래방' 사업에 지정 기부를 한 기부자가 공개했다.

편지를 읽은 누리꾼들의 반응도 폭발적이다. 기부자가 좋은 일 했다는 칭찬에서부터 '어르신,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편지만 읽었는데 눈시울을 적신다. 진한 사투리에서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난다'는 등 감동을 받았다는 댓글이 대부분이다.

편지는 어르신 돌봄 사업의 하나로 고향사랑기부제(지정 기부)를 통한 마을 빨래방 만들기를 추진하고 있는 곡성군이 기부자에게 보냈다. 편지글은 '마을 빨래방'이 설치될 지역의 주민이 썼단다.

곡성군의 '마을 빨래방' 사업과 손편지를 쓴 어르신이 궁금해 마을을 찾았다. 손편지를 쓴 주인공은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 흑석리에 사는 담양댁, 양현숙(81)씨다. 얼굴 사진을 찍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만났다.

"큰 이불은 덮지도 못했는데...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최근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담양댁의 손편지. 어르신이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한나절 동안 쓴 글이다.
최근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담양댁의 손편지. 어르신이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한나절 동안 쓴 글이다.이돈삼

"반갑습니다. 어르신!"
"(인터뷰) 안 하고 자왔는데(싶었는데), 할 말도 없고. 그래서 거절한 건데."

"잠깐만 얘기하고 갈게요. 사진도 안 찍고. 그나저나 어르신 손편지가 화제입니다. 어떻게 쓴 겁니까?"
"(동네) 사람들이 써보자 했제. 이장도 그러고, 사람들도 그러고 해서."


마을 이장이 처음 권했고, 이웃 주민들도 거들었다는 게 어르신의 얘기였다. 하지만 한글을 깨친 지 몇 년 되지 않은 어르신이 손편지를 쓴다는 건 쉽지 않았다. 무슨 내용을 어떻게 쓸까? 잠시 고민한 어르신은 옛이야기를 끄집어냈다.

'내가 곡성으로 시집올 때만 혀도 시어머니가 형님네 애들 오줌싸개 이불 빨래를 시켜서 마을 빨래터에 가서 힘들어가꼬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르요. …(중간 생략)… 나도 인자 나이가 80이 넘어강께 무릎이랑 허리가 아파서 집에서는 이불 빨래를 아예 못허요.'

어르신의 손편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편지는 혼자 사는 어르신의 이불 빨래에 대한 어려움, 겨울에도 얇은 이불을 덮을 수밖에 없는 처지, 마을 빨래방 설치 소식으로 이어진다.


'일년에 한번 마을에 빨래차가 오면 거기 가서 헌디, 일년에 한번 온께 이불을 장롱에다 넣어놓고 아에 꺼내질 않허요. 나는 얇은 이불을 장판 뒤에 놓고 내내 살고 있소. 근디 우리 마을 이장이 우리 마을에 이불 빨래하는 곳이 생긴다고 합디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요.'

어르신의 편지는 빨래방을 만들어 준다니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편지는 지난해 8월 썼다.

 담양댁이 살고 있는 흑석마을.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이다.
담양댁이 살고 있는 흑석마을.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이다.이돈삼

"어르신 집에 세탁기 없어요?"
"세탁기 있어도 (이불) 넣기 힘들고, 빼기도 힘들어. 무거워서 말릴 수도 없고. 그래서 큰 것은 안 덮어."

어르신은 힘든 빨래 탓에 겨울에도 두꺼운 이불을 아예 덮지 않는다고 했다. 곡성군에서 운영하는 세탁차량이 와서 큰 이불도 세탁해 주는데, 일 년 한 번에 그치기 때문이다. 때를 맞추지 못하면 일년내내 장롱에 넣어둬야 한다고.

"마을 빨래방이 생기면, 그런 걱정 다 덜겠습니다. 겨울에 두꺼운 이불도 맘대로 덮고?"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노인들 위해서 도와주는 분들한테 뭐라 고마워해야 할지 모르겄고. 고맙고 감사허요. 내 위 어른들은 더 고마워허요. 고맙고 고마워."

어르신은 연신 고맙다는 말을 거듭했다. 문득 편지를 쓰는 데 걸린 시간이 궁금했다. 몇 해 전 마을회관에 개설된 성인 문해교육을 받고 글을 읽고 쓰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어르신! 이 편지 쓰는 데 얼마나 걸렸어요? 시간이"
"글쎄, 두어 시간 걸렸나. 쓰다가 생각허고, 또 쓰다가 생각허고 했응께. 한나절은 쓴 것 같은디."

마을 빨래방 두 곳 설립 위한 목표액, 76.3% 모여

 담양댁이 살고 있는 곡성 흑석마을 골목. 돌담과 시멘트 담장이 한데 어우러져 있고, 그 담장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담양댁이 살고 있는 곡성 흑석마을 골목. 돌담과 시멘트 담장이 한데 어우러져 있고, 그 담장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이돈삼

신정화 곡성군 행정과장은 "고향사랑기부제로 혜택을 받을 분들이 기부자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기부자의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좋다"면서 "기부금이 모이면서 사업이 하나씩 가시화되고, 마을 빨래방도 조만간 만들어질 것 같다"며 흐뭇해했다.

곡성군은 지정 기부를 통한 마을 빨래방을 읍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노인 인구가 많은 입면과 석곡면 두 곳에 만들기로 하고 지난해 7월부터 1억 8860만 원 모금을 목표로 기부를 받고 있다. 3월 12일 기준 1억 4407만3200원으로 목표액의 76.3%를 모았다.

곡성군 '마을 빨래방' 만들기 사업의 '돈줄'이 되는 고향사랑기부제는 주민등록상 거주지가 아닌 다른 지자체에 연간 2000만 원까지 기부를 하고, 기부자는 기부금액의 30% 이내에서 답례품을 받는 제도다. 10만 원 이하 기부는 전액 세액공제, 10만 원 초과분은 16.5% 세액공제 혜택도 주어진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지역 소멸을 막고 지방재정 확충과 지역경제 활성화, 국가균형 발전 등을 목적으로 2023년 1월 도입됐다. 기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가능하며, 시중 은행과 플랫폼을 통해 할 수도 있다.

지자체는 기부금을 활용해 복지사업을 하고, 지정 기부를 통해 특정 사업을 추진하기도 한다. 곡성군은 지정 기부금 사업으로 마을 빨래방 설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출장 진료, 유기동물 보호센터 운영 등을 추진하고 있다. 곡성군의 인구는 한때 10만 명을 넘었으나, 지금은 2만 7000명으로 줄었다.

 오마이뉴스와 독자들에 고마움을 전하는 담양댁의 손글씨.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몇 분에 걸쳐 썼다.
오마이뉴스와 독자들에 고마움을 전하는 담양댁의 손글씨.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몇 분에 걸쳐 썼다.이돈삼
#고향사랑기부제 #담양댁 #곡성군입면흑석리 #마을빨래방 #곡성흑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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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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