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홈플러스 한 매장 내부 모습이다.
김예진
13일 매장에서 만난 그는 1월 대금을 하루 전에야 받았다고 했다. 원래는 2월 28일에 받았어야 할 대금이었지만, 12일이 지난 뒤 받은 것이다.
그는 "(음료 매장) 본사에 지불해야 할 대금이 밀리면 물건을 공급하지 않아 결국 내 돈을 써야 했다. 본사와는 선입금 후발주 구조"라며 "홈플러스는 대금을 미루고, 발주는 넣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았다"고 말했다.
홈플러스와 '임대을' 방식으로 계약한 이씨는 홈플러스 계산 기기를 사용하고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임대료로 내야 한다. 이에 대해 '후정산'이 이뤄진다. 이씨가 1월에 판매한 매출액에서 임대료와 관리비를 제외한 후 2월 말에 홈플러스가 이씨에게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1월에 발생한 매출을 2월 말에 받지만 (후정산), 음료 본사 매장 발주는 그 반대(선입금)다. 이씨로서는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12일 동안 들어오는 돈은 없고 지출만 계속됐다. 아르바이트생 보수와 재료비를 내야 했던 이씨는 결국 대출을 받았다. 이씨는 "다른 건 몰라도 알바비만큼은 절대 밀리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이달 5일 월급날에 대출받은 돈으로 알바비 지급했다"고 전했다.
"우리 알바생들 모두 학생이고, 1~2월 방학 기간에 한 명당 알바비가 80만 원이거든요. 알바해서 학교생활에 보태고, 엄마한테 손 안 벌리려고 휴대전화 요금 내보겠다고 나와서 일하는데... 알바비가 밀리면 이 사회초년생들이 사회생활에 얼마나 실망이 크겠어요. 밀리면... 나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알바비는 어떻게 해서든 밀리지 않게 했어요. 일한 만큼 받아야 하는 건 당연하고, 미안한 마음에 무조건 책임지겠다고 했죠."
대출까지 받아가며 3월 지출은 해결했지만, 이 구조가 계속될 수는 없는 상황. 이씨는 "맞은편 가게는 엄마에 아들까지 나와 일하고 있는데 나는 집이 멀어 도와줄 사람이 없어 3월부터는 평일 아침 오픈부터 저녁 마감까지 내가 한다"며 "알바생들의 근무 시간을 줄여 한 사람 당 보수를 80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조정했다"고 말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는 한 아들의 '엄마'이자, 한 집안의 '가장'이다

▲대형마트 2위 홈플러스가 지난 6일 잇따른 협력사 이탈로 영업 중단 고비를 맞았다가 대금을 순차적으로 지급하기 시작하면서 사태를 수습하고 있다. 식품업계에 따르면 주요 식품기업 오뚜기, 롯데웰푸드, 삼양식품 등 3곳이 9일 홈플러스 납품을 재개했거나 재개할 예정이다. 사진은 지난 9일 서울 한 홈플러스 매장의 모습.
연합뉴스
이씨는 9년 전 프랜차이즈 본사의 추천으로 홈플러스 입점을 결심했다고 했다.
"홈플러스 안에 있으니까 안심했어요. 밖에 있는 매장보다 낫겠다고 생각했고요."
'안심'은 삽시간에 '불안'으로 돌변했다. 지난 4일 홈플러스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후 그는 잠이 안 온다고 했다.
"(홈플러스 지점) 폐점 소문도 있는데, 제가 일한 거는 받아야 하잖아요. 보증금도 받아야 하는데, 그것도 못 받을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걱정의 크기가 더욱 큰 이유는 그가 집안의 가장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고3 된 아들과 친정 엄마랑 셋이 살고 있는데, 친정엄마에게 '당분간 카드 사용을 줄여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저희 엄마도 '홈플러스에서 쫓겨나는 거 아니냐' 난리가 났어요. 엄청 걱정하시죠. 일단 엄마에게 외식도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걸 말하는 것도 참..."
이씨는 "지금 한 달 대금이 밀려서 나온 건데, 두 달만 밀려도 신용불량자 될 것 같다"며 "지금 나이가 50인데 어디 취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 대출을 어떻게 메꾸나' 이 생각에 밤에 잠이 안 온다"고 한숨 쉬었다.
"도저히 안 되면 쿠팡 물류센터 가서라도 일해야죠. 그거라도 할 생각이에요."
"2월, 3월 대금 그리고 보증금까지 다 받을 수 있는 건지... 아직 불안해요"

▲홈플러스 김광일 부회장(왼쪽)과 조주연 사장이 14일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본사에서 열린 기업 회생절차(법정관리)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입장 발표에 앞서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월 대금도 이달 말일에 제때 입금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이씨는 "홈플러스 (영업점) 직원이 본사로부터 온 '3월 31일에 2월 대금 준다'는 메일을 보여주긴 했지만, 회생 절차 이후 본사로부터 직접 연락 받은 적은 없다"며 "전화나 공문도 없고, 직원에게만 (구두로) 전달 받았기에 이번엔 제때 받을 수 있을지 아직 불안하다"고 말했다.
"만약 당장 장사한 게 안 들어온다면 '이게 무슨 헛짓거리인가, 내 돈 들여서 재료비와 알바비 메꿔서 장사한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또 법정관리라는 게 '회사에서 줄 돈이 이거밖에 없는데 너희 이것만 받아라'라고 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거니까... 그게 가장 걱정이에요. (입점하면서 낸) 보증금은 돌려 받을 수 있는지도 걱정이고요."
그의 바람은 하나였다. "하루 빨리 홈플러스가 정상화되는 것"이었다.
"다들 홈플러스에 입점해서 장사하며 먹고 사는데, 하루 빨리 정상화되는 게 중요하죠. 저희 매장을 좋아하는 손님들도 많고, 저도 이곳을 좋아하거든요. 위에서 운영에 문제가 있었는지 따지든, 어떻게 처리하든... 결국 정상화되어 원래처럼 커피도 마시고 손님들과 함께 생활했으면 좋겠어요."
이씨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점주들은 얼마나 될까. 강경모 대규모점포점주협회 부회장은 14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임대을' 매장 피해 규모를 정확히 조사를 하진 않았지만, 평균적으로 점주들이 못 받은 금액이 2000만 원 정도"라며 "임대을 매장이 2000개 정도 되는데 한 점주가 1000만 원에서 1500만 원 정도 대출을 받았다고 해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강 부회장은 "12일 식음료 코너에 1월 대금이 지급되었고, 13일에 안경점 같은 잡화점에 대금이 들어왔다"라며 "잡화점은 다 받은 건 아니고 절반 정도 지급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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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받아 알바비 주고도 "미안하다"던 홈플러스 점주의 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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