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국 사람들이 사용하던 구슬, 곱은옥, 목걸이 (복제품) 삼척시립박물관에는 동해 송정동 철기시대유적지에서 발견된 실직국 사람들의 유물 복제품을 전시해두고 있다. 진품은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소장중.
삼척시립박물관
고구려, 백제, 신라 말고 다른 나라들이 있었다니! 따지고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그저 조선시대에 익숙해져 있었던 거다. 초기 삼국시대에도 마치 조선시대처럼 강력한 왕 한 명이 나라 전체를 다스릴 거라 상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고구려, 백제, 신라 역시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크고 강한 나라는 아니었다. 그들도 작은 군장 국가와 부족 연맹체로 시작했다. 후에 점점 강력한 왕권을 가진 중앙집권적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작은 나라로 시작할 무렵, 한반도 곳곳에는 정말 많은 군장 국가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 사이 살아 숨 쉬던 작은 나라의 사람들.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드디어 여행주제와 여행지가 정해졌다. 주제는 군장 국가의 흔적, 여행지는 삼척으로 간다! 삼척 지역은 신라가 강원도를 장악하기 전, 이 땅에 존재했던 한 작은 나라, 바로 실직국(悉直國)이었다. 실직국은 삼척을 중심으로 위세를 떨쳐 그 자취가 남아 있고, 실직국은 신라 이사부 장군과 인연도 깊다. 삼척으로 역사 여행을 가면 실직국과 신라 장군 이사부의 역사를 곁들여 즐기기에도 좋다.
삼척 실직군왕릉을 찾아서
실직국의 이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적지인 '실직군왕릉'을 찾았다. 이름은 실직군왕릉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던 시절(기원전 ~ 서기 100년 즈음) 독립된 실직국 왕의 능은 아니다.
삼척 실직군왕릉은 실직국이 신라에 복속(505년)되고, 그보다 더 먼 훗날 통일신라가 고려에 복속될 무렵(10세기 고려 초), 신라 경순왕의 손자였던 김위옹이 고려 실직군왕으로 책봉되었던 흔적이다.
물론 역사학자 황윤은 저서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강원도 여행>을 통해 실직군왕릉이 5~6세기 신라계 지배층 무덤일 가능성 또한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의 설명을 따르기로 한다.
군장 국가로서 실직국 유적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실직국'의 이름을 생생하게 심어 줄 장소로는 여기 만한 곳이 없다. 무엇보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유적이다. 실직군왕릉을 보려면 높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헉헉 숨이 차고 다리가 뻐근한 보람이 있을 정도다.

▲삼척 실직군왕릉 입구 대나무 숲 사이로 난 실직군왕릉 입구. 3월초라 제법 쌀쌀했지만, 실직군왕릉의 터가 좋은지 볕은 잘 들어 따뜻하고, 대나무는 건강하게 푸르러서 봄나들이 하는 기분이 든다.
최다혜
사철 푸른 대나무와 소나무, 회양목 사이로 난 높은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아름다운 붉은 문을 만났다.

▲실직군왕릉 입구 붉은 문을 열면, 실직군왕릉으로 들어갈 수 있다.
최다혜
삐걱거리는 붉은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가면, 상상했던 것보다 크고 아름다운 능을 마주하게 된다. 보통 사람의 봉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언덕 마냥 둘레도 길고 높이도 높다.

▲삼척 실직군왕릉 실직군왕 김위옹의 릉. 김위옹은 삼척 김씨의 시조다.
최다혜
조심스레 무덤 앞에 섰다. 잘 가꾸어진 왕릉의 좌우로 문인상과 세 종류의 동물 석물(石物)이 각각 한 쌍씩 대칭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천 년 이상을 지켜온 세월의 힘 덕분일까? 박물관 밖, 진짜 유적만이 뿜어내는 기운과 현장감 때문일까? 거대한 왕릉과 석물 앞에 서니 신비롭고 기묘한 느낌에 휩싸였다.

▲실직군왕릉 문인석 왕릉의 좌우에서 공손하되 품위있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다혜

▲실직군왕릉 동물 석물(石物) 혹시 양일까?
최다혜

▲실직군왕릉 동물 석물(石物) 말을 닮았다.
최다혜

▲실직군왕릉 동물 석물(石物) 용맹하면서도 친근한 모습이 호랑이를 많이 닮았다.
최다혜

▲실직군왕릉 석물 실직군왕릉 주변을 좌우 대칭으로 각각 문인석과 세 마리의 동물 석물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다혜
삼척 옆 동해, 강릉에서 쭉 30년 넘게 살아왔지만 실직군왕릉이 있는 줄도, 실직국이란 나라가 있는 줄도 몰랐다.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기록되기에 너무 작았던 나라. 하지만 실직국을 알아야 신라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강원도 삼척과 신라 수도 경주의 거리가 어마어마하게 멀었을 텐데 그들은 어떤 사이였을까?
수로왕의 잔치가 불러온 나비 효과
실직국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처음 등장한다. 서기 102년, 삼척의 실직국은 포항의 군장 국가 음집벌국과 전쟁을 한다. 전쟁이 잘 마무리가 되지 않았던 모양인지, 두 나라는 강대국 신라의 왕을 찾아갔다. 그리고 다툼이 있던 땅에 대한 판결을 신라의 왕에게 요청했다.
"이 땅은 어느 나라의 땅입니까?"
재미있게도, 신라의 왕은 고민하다가 말한다.
"금관국(金官國)의 수로왕이 나이가 많아 지식이 많다."
당시 더 강대국이었던 금관가야의 수로왕에게 판결을 부탁한 것이다. 수로왕은 다툼이 있던 땅에 대해 이렇게 판결을 내린다.
"음집벌국의 땅이다."
판결이 끝나자 신라왕은 잔치를 벌인다. 재판관으로 초청했던 수로왕을 위한 잔치였다. 그런데 이 잔치는 황당하게도 실직국이 멸망하는 계기가 된다.

▲실직군왕릉 삼척의 풍요롭고 넓은 들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여기서 본 삼척 시내는 무척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실직국이 왜 삼척에 자리 잡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최다혜
신라왕은 신라의 6부에게 잔치를 벌이라 명했다. 6부 중 5부는 지위가 높은 사람을 보냈는데, 나머지 한 부(이름은 '한기부')는 그러지 않았다. 지위가 낮은 사람을 보내 잔치를 치르게 했다. 수로왕의 판결에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현명한 수로왕이 그 의중을 간파해버렸다. 화가 단단히 났는지, 자신의 부하 '탐하리'를 시켜 자신을 무시한 한기부의 족장 격인 '보제'를 죽인다. 탐하리는 보제를 살해했다. 금관가야의 신하가 신라의 고위 귀족을 살해했으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탐하리는 음집벌국로 도망가 숨었다.
신라의 분노가 시작됐다. 탐하리를 잡으러 갔지만, 음집벌국은 순순히 신라를 돕지 않았다. 결국 신라는 음집벌국에 전쟁을 일으킨다. 결과는 신라의 승리. 신라가 음집벌국을 정벌하니, 그 옆 나라였던 실직국도 두려워하며 신라에 항복한다. 수로왕을 위한 잔치 이후, 어처구니없게 실직국도 함께 피해를 입은 셈이다.
다만, 실직국이 신라 영토에 편입된 것은 아니다. 독립된 나라의 자격을 유지하되, 정기적으로 신라에 조공을 바쳤다고 한다.

▲삼척 실직군왕릉 실직군왕 김위옹의 릉. 김위옹은 삼척 김씨의 시조다.
최다혜
그러다 수 백 년 뒤 480년 경, 실직국은 고구려에게 완전히 점령당해 자치권을 완전히 잃었고, 그 이후 505년 경, 신라 지증왕은 다시 실직국 지역을 신라 영토로 편입하였다. 신라의 행정구역으로서 '실직주(州)'가 된 것이다.
이 때 겨우 20대의 나이로 실직주를 다스리러 온 군주로 부임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너무 익숙하고 반갑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로 우기면 지하에서 웃는 그 분. 바로 신라장군 이사부다.

▲이사부 장군 표준 영정 실직'국'은 신라의 실직'주'가 된다. 그리고 실직주의 군주로서 이사부 장군이 부임한다. 표준 영정을 그린 작가는 권오창 화백이며, 삼척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삼척시립박물관은 실직군왕릉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으며, 입장료는 무료다.
권오창, 삼척시립박물관
자연히 다음 역사 여행은 이사부 장군의 발자취를 찾아가기로 한다. 전해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머릿속에 가득 쌓여 입이 근질거려 못 참겠다.
조만간 이사부 장군의 발자취와 함께 4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2
책 읽고, 글 쓰고, 사랑합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 꿉니다.
공유하기
주몽이 고구려 세울 때, 강원도 사람들이 하고 있던 일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