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월. '남민전 사건'으로 9년 3개월의 옥고 끝에 석방된 김남주 시인이 작가회의 신년 하례식 모임에 참석했다. 왼쪽부터 정희성, 이시영 시인, 현기영, 강승원 소설가, 김남주, 고은 시인, 백낙청 평론가, 문익환 시인. 1989년 1월. '남민전 사건'으로 9년 3개월의 옥고 끝에 석방된 김남주 시인이 작가회의 신년 하례식 모임에 참석했다. 왼쪽부터 정희성, 이시영 시인, 현기영, 강승원 소설가, 김남주, 고은 시인, 백낙청 평론가, 문익환 시인.
아트앤스터디
김남주는 1944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해남중학을 졸업하고 광주일고에 입학했으나 획일적인 입시위주의 교육에 반대하여 자퇴하고, 대입검정고시를 거쳐 전남대 문리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3선개헌 반대운동과 교련반대운동을 주도하고 유신체제가 선포되자 반유신 지하신문 <함성>지를 제작했다.
1973년 지하신문 <고발>지 사건으로 구속되어 1심에서 징역 10년, 항소심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투옥 8개월 만에 석방, 전남대학에서 제적당했다. 1974년 고향에 내려가 농민문제에 관심을 갖고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잿더미' 등 8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광주에서 사회과학전문서점, 민중문화연구소 초대회장 등 문화운동을 하다 1979년 이른바 남민전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 받고 투옥, 1988년 투옥 9년 3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옥중에서 쓴 <조국은 하나다>를 펴냈다.
김남주의 대표작이라 할 <조국은 하나다>라는 시집이 출간된 것은 1988년 9월이다. 광주의 <도서출판 남풍>에서 도합 202편, 375쪽의 '남풍신서6'의 넘버를 달고 나왔다. 저자는 아직 풀려나지 않는 상태였다.
제1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제2부 조국은 하나다
제3부 노동과 그날그날
제4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제5부 발문·편집후기·연보.
편집진은 후기 "<조국은 하나다>를 펴내며"에서 비장한 어조로 출간의 의미를 새긴다.
"조국통일의 봄바람이 백두에서 한라까지 가열차게 휘몰아치고 있는 현하 민족사의 전환점에서, 반제 민족해방과 조국통일에의 열망을 누구보다도 정열적으로 가장 격정적으로 노래하고 싸우는 김남주 시인의 푸담하고 실다운 '역사' 앞에 제공하는 기쁨은 실로 벅찹니다"란 헌사가 그것이다. 표제시 '조국은 하나다'는 8연에 이르는 장시다. 여기서는 앞부분을 소개한다.
조국은 하나다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꿈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남 모르게가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조국은 하나다"
권력의 눈 앞에서
양키 점령군의 총구 앞에서
자본가 개들의 이빨 앞에서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나는 이제 쓰리라
사람들이 오가는 모든 길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오르막길 위에도 내리막길 위에도
사나운 파도의 뱃 길 위에도 쓰고
바위로 험한 산길 위에도 쓰리라
밤길 위에도 쓰고 새벽길 위에도 쓰고
끊어진 남과 북의 철길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나는 이제 쓰리라
인간의 눈이 닿는 모든 사물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눈을 뜨면 아침에 맨 처음에 보게 되는 천정 위에 쓰리라
쌀밥 위에도 보리밥 위에도 쓰리라
나는 또한 쓰리라
인간이 쓰는 모든 말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탄생의 말 응아 위에 쓰리라 갓난아기가
어머니로부터 배우는 최초의 말 위에 쓰리라
저주의 말 위선의 말 공갈 협박의 말⋯⋯
신과 부자들의 말 위에도 쓰리라
악마가 남긴 최후의 유언장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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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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