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8년 1월 25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송건호 한겨레신문 발행인이 한겨레 신문 창간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는 글을 쓸 때 마다 항상 30년, 40년 후에 과연 이 글이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라는 생각과, 또 그러한 먼 훗날에도 욕을 먹지 않는 글을 쓰겠다는 마음을 다짐하곤 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옛 사람 말대로 크게는 이 민족을 위해서 작게는 내 자식들을 위해서 어찌 '더러운 이름'을 남길 수야 있겠느냐 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 - 언론인 송건호의 좌우명.
송건호는 1927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서울의 한성상업학교를 졸업, 해방 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마치고 통신사 기자로 언론계에 투신, 한국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을 거쳐 1974년 동아일보 편집국장 재직시 기자들의 자유언론 실천선언에 동조하고 언론계를 떠났다. 박정희의 입각제의 등 회유와 탄압이 따랐으나 굽히지 않고 재야언론의 큰 기둥이 되었다.
5공 정권에서 투옥되는 등 탄압에 맞서면서 민주언론운동협의회를 주도하고 <말>지를 창간한 데 이어 새 신문을 준비하여 1987년 7월 해직기자들과 함께 <한겨레신문>을 창간, 초대 대표이사 및 발행인에 선임되었다. 6월항쟁이 군부정권을 종식시키지는 못했으나 시민의 손으로 <한겨례신문>을 창간한 데 의미를 찾는 이들이 많았다. 세계 언론사상 초유의 국민주 모금으로 1988년 5월 15일 창간한 <한겨레신문> 창간사는 송건호의 몫이었다.
한겨레신문 창간사(발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원칙에서 앞으로 새 신문을 제작하고자 한다.
첫째, 한겨레신문은 결코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을 것이며, 절대 독립된 입장 즉 국민대중의 입장에서 장차의 경치 경제 문화 사회문제들을 보도하고 논평할 것이다.
우리가 특별히 야당 여당 할 것 없이 어떠한 정치세력과도 특별히 가까이 하지도 않고, 특별히 적대시하지도 않고 오로지 국민대중의 이익과 주장만을 대변하겠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한겨레신문이 정치적으로 절대 자주독립적임을 거듭 밝히고자 한다.
둘째, 한겨레신문은 절대로 특정사상을 무조건 지지하거나 반대하지 않을 것이며, 시종일관 이 나라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분투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오늘의 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사상적으로 자유로운 입자임을 거듭 밝힌다. 한겨레신문이 이 사회에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확립하고자 하는 염원 뒤에는 어떠한 사상이나 이념과도 까닭 없이 가까이 하거나 멀리 하지 않을 것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자유롭고 독립된 언론은 권력의 방종과 부패를 막고 국민의 민권을 신장하여 사회 안정을 기할 수 있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운동이랄 것이다.
이 나라의 민주화는 남북 간의 관계개선을 위해서 특히 동족의 군사대결을 지양하고 통일을 이룩하는데 있어 절대적인 조건이 될 것이다.
따라서 민주화는 남북문제 해결에 불가결의 조건이 되나 한편 남북관계의 개선은 민주화를 위해 불가결의 조건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민주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한 가지 문제의 표리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남북통일 문제는 한민족의 이해관계와 직결된 생사가 걸린 문제로서, 어느 누구도 이를 독점할 수 없으며, 이런 뜻에서도 민주화는 기필코 실현되어야 한다.
한겨레신문은 실로 4천만 국민의 염원을 일신에 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한겨레는 기성 언론과는 달리 집권층이 아닌 국민대중의 입장에서 나라의 정치경제사회 문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밑에서 볼 것이다.
기성언론과는 시각을 달리할 것이다.
한겨레신문 창간호. 1988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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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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