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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5.03.19 15:38수정 2025.03.19 15:38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복지관에서 <내 인생 풀면 책 한 권>이라는 이름으로 어르신과 글쓰기 수업을 한다. 처음부터 글이 술술 나오지 않으니 나는 어르신들에게 자꾸 말을 건다.
말은 하겠는데 죽어도 못 쓰겠다고, 수업 철회를 고민하셨던 분이 계셨다. 4주 동안 조금씩 본인 이야기를 꺼내시더니 이제는 깜지하듯이 꽉꽉 채워 써오신다.
목이 막힌다는 어르신

▲ 죽어도 못 쓰겠다는 어르신의 4주 뒤 숙제
최은영
"시장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다. 그이는 어디가 맨날 아프다고 한다. 지금 밥을 먹어보려고 시장왔는데 누구랑 같이 먹으면 목구멍에 넘어갈 거 같다고, 나보고 밥을 같이 먹자는데 나는 또 옛 생각이 난다."
여기까지 읽으시고 갑자기 돋보기를 벗으셨다. 눈가가 빨갛다. 흠흠 헛기침을 하고 다시 읽으셨다.
"남편은 돌아가시기 전에 점심때만 되면 같이 밥 먹자고 자주 전화를 했다. 돈 벌러 나왔는데 어떻게 가냐고, 찌개랑 반찬 해놓은 거 먹으라고 했다. 자주 거절 당하면서 자주 전화하는 남편이 짜증났다."
집에서 투병하는 남편을 10년 넘게 돌보며 일을 하셨던 분이었다. 여기까지 읽으시더니 아예 돋보기를 벗고 그냥 말씀하셨다.
"선생님 그거 알아요? 늙으면 목구멍에 뭐가 막혀서 뭐가 안 넘어가. 그럴 때 앞에 사람이 있음 넘어가요. 우리 남편도 그래서 나를 찾았을텐데…"
나 빼고 다들 공감하는 눈치다. 혼밥용 유튜브를 미리 골라놓고 그 시간을 즐기는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직접 해먹으라는 것도 아니고, 다 해놓은 거 데워 먹으라고 하는 걸 남자들은 왜 그렇게 안 할까. 공감은커녕 짜증이 날 판이었다. 나는 누가 그렇게 차려놓고 나가면 황송할 거 같은데 말이다.
누군가는 내 속마음과 비슷한 말을 할 줄 알았는데 다들 안 넘어가는 목구멍만 집중하신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긴 한가보다 하면서 나는 입을 닫았다.
남편 이야기를 한참 하시던 그 분은 '시장에서 만난 맨날 아픈 그이랑 밥먹으면서 하소연을 다 들어줬다'로 끝을 맺었다. 이게 바로 제가 말씀드렸던 액자 형식이라면서 칭찬을 듬뿍 하고 끝났다.
우리엄마도 그랬구나

▲ 혼자 식사하실 때 목구멍이 막힌다는 엄마.
hellojaven on Unsplash
집에 가는 차에서 엄마에게 전화했다. 이제 칠십에 들어선 엄마는 다행히 먹고 자는데 문제가 없다며 자주 자랑했다. 자식 입장에서 그것만큼 반가운 말도 없는데 그날은 어쩐지 엄마의 목구멍을 확인해야 할 거 같았다.
사실 엄마도 그럴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늘 씩씩했으니까, 당신 본인도 그렇게 자랑했으니까. 그렇다고 모른 척 넘어가기엔 아까 교실에서의 낯선 공감이 날 놔주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더 명랑하게 말했다.
나랑 수업하는 할머니들이 엄마 또래인데 혼자서는 목구멍이 막혀서 뭘 못 먹는다 하셨다고, 어딜 봐도 엄마처럼 튼튼한 할머니는 없는 거 같다고, 엄마는 진짜 대단하다고.
'당연하지' 할 줄 알았던 엄마가 조용했다. 알 것 같지만 아니었으면 하는 정적이 잠깐 흘렀다. 그러더니 나도 그려, 하는 엄마 대답 끝에 물기가 서려 있다. 맨날 자랑하던 우리 엄마 어디갔지.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신 지 이제 1년이다. 엄마는 아빠가 식사하실 때 옆에서 계속 말을 걸었다. 엄마 열 마디에 아빠는 한 마디 할까 말까 하니 엄마는 아빠를 답답이라고 불렀다. 그 답답이가 없으니 목구멍이 답답해진다며 엄마 말문이 또 막혔다.
나는 엄마에게 "엄마도 그랬구나. 내가 몰라서 미안해"라고 했다. 아이 어릴 때 자주 했던 말, '그랬구나'는 이제 세월을 한바퀴 돌아 엄마에게 필요한 말이 됐다.
엄마는 그거면 된 거라며 울음을 삼켰다. 멀리 있고, 일 하느라 바쁜 사람인 거 다 아는데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노인네들 마음이라나. 어르신들은 '이치에 옳은 말' 말고 '마음을 알아주는 말'이 필요했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말
아니, 꼭 어르신에게만 필요한 말은 아니다. 옳은 말 모를 사람 없다. 다만 바쁜 일정에 치여 효율을 따지다보니 남을 들여다보고, 공감해 줄 시간이 아까웠던 게 아닐까.
어느 시절을 지나면 밥 한 끼는 몸이 아니라 마음으로 먹는가 보다. 함께 밥을 먹던 사람이 사라지면 목구멍이 막혀 슬퍼지고, 그 자리를 말 한 마디가 채운다. 그게 채워져야 막힌 목구멍이 뚫린다.
엄마에게, 수업에서 만난 어르신들에게, 그리고 언젠가 나 자신에게도 그런 한 마디가 필요할 것이다. 아직 마음으로 밥 한 끼 먹는 걸 모르는 나는 30년 후의 어느날을 미리 살아보고 온 기분이 들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엄마에게 더 자주 전화해야겠다. 마음을 알아주는 말 한 마디를 차곡차곡 쌓아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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