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해요, 찬드라 - 불법 대한민국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삶의 이야기>의 표지. 이란주 지음, 삶창, 2003.
삶창
오늘밤 내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
찬드라 구룽 사건은 결코 우연한 불행이 아니다. 경찰의 과잉 단속, 의료진의 무관심, 공공기관의 제도적 허점이 한 사람을 '강제실종' 상태로 몰아넣었다. 피해자들은 "내게 이런 일이 닥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선감학원·삼청교육대·형제복지원 피해자 중에는 집과 직장이 있음에도 거리에서 잠시 단속원과 맞닥뜨렸다가 시설에 끌려간 이들도 있었다.
2025년 오늘까지도 과거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에 대한 국가책임 인정과 그에 따른 후속조치 없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만연한 가운데 지금도 사회적 약자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도시정화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사고가 우리 사회의 이면이라면, 비슷한 비극이 되풀이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주노동자, 장애인, 노숙인, 정신질환자 등은 여전히 인권침해에 취약하며, 구조적 보호 장치도 미흡하다. 찬드라 구룽 사건은 단지 이 모든 현실을 단숨에 보여준 사례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을 기억해야
낙오자로 찍히는 순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집단수용시설에 한 번 들어가면 정상적인 사회관계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고, 개인의 존엄과 인권은 뿌리째 흔들린다.
이제 필요한 건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를 '과거사'로만 보지 않고 '현재진행형 문제'로도 인식하는 일이다. 2기 진화위가 활동을 마쳐도, 유사 사례를 추가 발굴해 재발을 막고, 관련 법령과 조례, 공공기관의 관리·감독 시스템 등을 대대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시설 운영에 대한 투명성 확보 역시 시급하다.
나아가 "부랑인·부랑아" 같은 모호한 단속 개념을 근본적으로 폐기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도 "정화가 필요하다"거나 "겉으로 보기에 불량하다"는 식의 시선으로 약자를 배척하기보다, 이들이 왜 거리로 내몰렸고 어떻게 보호 체계에서 소외됐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결국 사회적 약자를 방치한 무관심이 집단수용이라는 국가폭력의 토대를 만들어왔다.
찬드라 구룽이 외쳤던 "나는 네팔인 찬드라 쿠마리 구룽이다"라는 외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어딘가에서는 자신을 증명하지 못한 채 시설과 병원 안에 갇혀 있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들의 목소리는 영원히 공허한 메아리로 남을 뿐이다.
집단수용시설 강제구금은 결코 과거사가 아니다. 이제라도 이 뿌리 깊은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만 또다른 '찬드라'가 생기지 않는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시민 대다수가 편하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곳'에 몰아넣어선 안 된다.
*필자인 김진희는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수용시설 인권침해를 담당했던 조사관이며 현재 선감학원피해자협의회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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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되어 사라진 사람들... 이 일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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