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splash Image
tokyo_boy on Unsplash
학교는 지금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전자기기와 끝 모를 전쟁 중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학생 인권과 학교의 현실 사이에서 교육이 방향타를 잃은 채 무기력에 빠져들고, 교사들의 교육적 효능감은 나날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교육청의 방침과 교육력 제고를 위해 도입된 법과 제도가 도리어 교육을 방해하는 장애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교육은 아이들 각자의 잠재된 역량을 일깨우는 일이다. 그러나 천방지축 아이들의 되바라진 행동과 습관을 바루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성숙하고 올곧은 시민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훈육'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
학교가 일과 중 스마트폰 사용을 통제하는 건 인권침해라는 진정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모양이다. 인권위는 학교에 서면 진술서와 함께 학교의 생활 규정과 학교운영위원회 회의록, 동의서 등 관련 자료의 제출을 요구했다. 해마다 제기되는 문제라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학교를 상대로 아이(또는 그의 보호자)가 인권위에까지 진정서를 내는 경우는 처음 겪는다.
학교는 학생 대표 기구인 학생자치회와 협의를 거쳐 해마다 생활 규정을 손 보고 있다. 상위법인 학생인권조례와 충돌되는 건 없는지, 또 현실과 동떨어져 사문화한 건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 수정하거나 보완한다. 그렇게 두발 등 용모 규정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고, 교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 역시 종이호랑이에 불과한 규정이 됐다.
남은 건 전자기기 사용 제한 규정뿐인데...
지금껏 아이들을 옥죄어 온 생활 규정 중에 남은 거라곤 사실상 전자기기 사용을 제한하는 규정뿐이다. 생활 규정에는 출결과 교내외 활동 등에 관한 숱한 유의 사항이 열거돼 있지만,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학교생활에 대한 아이들의 불만은 오로지 전자기기 사용 문제, 하나뿐이다. 입학식 날 만난 한 신입생의 첫 질문도 이것이었다.
"일과 중에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나요?"
집에 과제물을 놓고 와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데, 주머니에 스마트폰이 없으면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마트폰부터 켜고, 스마트폰을 보며 잠드는 게 그들의 일상이다. 요즘 아이들은 집에 불이 나면 가족보다 먼저 스마트폰부터 챙겨 나오게 될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들이 아침마다 담임교사에 의해 스마트폰을 수거당하니 충격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반나절일지언정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스마트폰과의 '강제적 이별'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학생자치회를 통해 학교에 건의도 하고 '국민 신문고'에 민원도 제기했으나 이렇다 할 변화가 없자 인권위의 문을 두드린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권리를 구제하기 위해 스스로 나서는 행동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한 적극적인 참여 태도를 기르는 것이야말로 교육이 지향하는 바다. 다만, 인권위까지 찾아가 구제하려는 권리가 고작 일과 중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해달라는 것이라는 점에선 뒷맛이 개운찮다. 지금 학교 교육에서 스마트폰의 자유로운 사용은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
교사의 수업 내용을 불법 녹음하거나 촬영하는 범죄 행위에 대한 우려는 차라리 부차적이다. 언론 보도도 잇따른 데다 형사 처벌 규정까지 명확한 까닭에 교육을 통해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스마트폰이 사회에 나가기 전 학교 교육을 통해 배우고 익혀야 할 태도와 습관, 경험 등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아이들의 손에 스마트폰을 쥐여주면, 하는 거라곤 게임과 유튜브, SNS 대화가 전부다. 예외가 거의 없다. 자신의 책상에 앉아 수업 시작종이 울릴 때까지 미동도 없이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린다. 교실이 왁자지껄 소란할 때, 조용히 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에게 스마트폰 사용을 허용하는 거다.
누구나 예습과 복습을 위해 인터넷 강의를 들어야 한다는 이유를 대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새 게임과 유튜브에 푹 빠져 있는 아이들을 본다. 여느 '쇼 프로그램'과 다를 바 없는 인터넷 강의를 통해 공부하는 것도 탐탁지 않지만, 유튜브 알고리즘에 포획되어 자극적인 콘텐츠를 넋 놓고 보는 모습이 안타깝다. 옆에 누가 오는지도 모를 정도다.
스마트폰이 장악한 처참한 교실 풍경

▲ This is Brazil.
flpschi on Unsplash
인터넷 극우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는 아이들도 적잖이 눈에 띈다. 그곳에서 생겨난 낯 뜨거운 신조어들이 어느새 일상 용어가 되어 그들 사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통용된다. 대개는 여성과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조롱하는 말들로, 자주 쓰이다 보니 그것이 혐오 표현인 줄도 모른다.
그들끼리 이물감 없이 오가는 혐오 표현들이 단지 재미있다는 이유로 퍼져나가 어엿한 소통 수단이 되었다. 그 말들을 모르면 그들 간 대화에 끼어들기 어렵다. 혐오 표현은 범죄에 대한 그들의 인식마저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 근래 딥페이크 영상의 제작과 확산에 연루된 범죄자의 태반이 10대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이 그다지 놀랍지 않았던 이유다.
간과하기 쉽지만, 학교에서 전자기기의 자유로운 사용이 가져올 가장 심각한 폐해는 따로 있다. 아이들이 다 함께 어울려 지내는 법을 잊어버렸다는 것! 학교의 존재 이유는 과거의 지식을 미래 세대에게 전수하는 데에 있지 않다. 그건 인터넷 강의를 통해 얼마든지 '독학'할 수 있다. 공동체 생활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곳이 학교다.
요즘 아이들은 모둠활동을 통한 협동학습에 서툴다. 친구들과 협력해 과제를 수행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걸 무척 어려워하고, 솔직히 말해서, 싫어한다. 각자의 의견을 공유하고 수렴하는 과정 자체를 번거로워할뿐더러 시간 낭비라고 여긴다. 하여 수학 공식에 대입하여 하나의 분명한 정답을 찾을 수 있는 방식의 과제를 선호한다.
해결책을 찾아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도 보기 힘들다. 생각하기 전에 검색부터 한다. 교과서를 찬찬히 읽어보면 금세 알 수 있는 지식도 스마트폰에 의존한다. 스마트폰이 손에 쥐여 있는 한 토의와 토론을 통한 지식의 확장과 갈등의 해결을 기대하긴 어렵다. 스마트폰이 오락과 휴식, 백과사전 기능을 넘어, 교사와 친구 역할까지 대체하고 있다.
급기야 스마트폰만 있으면 혼자일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대학에 갓 진학한 제자는 두 명이 같은 방을 쓰는 기숙사 생활이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비용 부담이 커서 울며 겨자 먹기로 견디고는 있는데, 조만간 어떻게든 '독립할' 거라고 말했다. 놀랍게도, 그는 지금껏 룸메이트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고 했다.

▲ Cellphone Skype on laptop
tirzavandijk on Unsplash
'교육청에서 개인별로 지급한 태블릿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일과 중 사용을 제한하는 이유는 스마트폰과 같지만, 이럴 거면 왜 교육청이 관내 모든 학생에게 일괄 지급했는지를 따져보려는 거다. 기실 이는 교사가 우선 교육청에 묻고 싶은 바다. 교육청이 이러한 혼선과 부작용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예상하고도 그랬다면 무책임한 것이다.
교육청이 아이들의 개인별 정보 활용 능력의 격차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태블릿을 일괄 지급한다는 방침을 밝혔을 때, 교사들 대다수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태블릿이 없어서 공부를 못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거다. '사고는 교육청이 치고 뒤치다꺼리는 학교에서 한다'는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는 와중에, 인권위의 소명 요청까지 받게 되니 그저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사족. 일각에선 '교통사고 우려된다고 자동차 운전을 금지할 순 없지 않느냐'며 모든 책임을 학교의 부실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으로 돌린다. 전자기기를 악용하는 경우 아이들 스스로 책임지게 하면 된다며, 그것도 교육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자녀가 '면허를 따기도 전에 운전대를 맡기는' 부모들이 태반인 사회에서 학교 교육만 탓할 순 없는 노릇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공유하기
학내 스마트폰 사용 제한 논란, 교사인 제 생각은요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