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 표지 이미지
출판사클
- 변호사님이 맡았던 사건들을 보면서 이것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자체를 바꾸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국가정보원 정년 차별 사건 같은 경우는 승소함으로써 정년이 연장되고 부당해고 된 다른 사람들도 복직하게 되었다.
"국정원의 구조를 보면 여성이 주로 일하는 직군과 주로 남성이 주로 일하는 직군이 나뉘어 있는데, 여성들이 많이 일하는 직군의 정년은 43세고 남성들이 많이 일하는 직군은 정년이 57세로 정년 차등이 있었다. 이 여성 직원들이 차별에 맞서 싸워 이긴 사건이다. 이 사건이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고 정리하면 쉬운데 실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요즘엔 노골적으로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하는 방식이 아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직군을 나누고, 직군 간의 차등을 둔다. 명백하지만 교묘하다. 이런 식으로 하는 일을 분리하고 그 일 자체를 차별하면 눈에 보이는 성차별이 아니기 때문에 입증이 까다롭다. 이 사건 같은 경우도 여러 과정이 있었지만 결국엔 간접차별도 성차별이라는 판결을 받아낼 수 있었다. 이 사건을 승소한 덕분에 국정원 내 직군 정년 차별이 없어지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도 뿌듯한 마음이 있다."
- 말씀하신 사례가 일종의 젠더 갑질에 속하는 영역인 것 같다. 직장갑질119에서 했던 '젠더 갑질'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가 1위로 나오기도 했다.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는 직장갑질119에도 정말 많은 문의가 들어온다. 그런데 이것도 노골적으로 여성이기 때문에 임금을 적게 주는 방식으로 가는 게 아니라 승진을 안 시킨다거나, 성과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주는 방식으로 임금 차이를 두는 경우가 많다. 보다 근본적으로 차별하는 경우도 있는데 애초에 채용을 할 때 남성만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식이다. 실제 대전 MBC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하는 일은 차이가 없는데 여성 아나운서는 프리랜서로, 남성 아나운서는 정규직으로 뽑았다. 그래서 지금은 이런 남녀 임금 차별이 단순한 임금을 떠나 고용 그 자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 같은 업무를 하는데 여성보다 승진도 빠르고, 임금도 더 많이 받는다면 굳이 이 문제에 함께 싸우고, 연대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는 남성들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우선 자본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웃음) 젠더차별은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일자리 그 자체의 문제다. 처음 기간제가 생기고 여기에 많은 사람이 침묵한 덕분에 기간제는 파견제로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야말로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프리랜서가 넘쳐난다. 이를테면 지금 배달노동도 플랫폼화 되지 않았나. 이로 인해 여성 다음으로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이들이 청소년이었다. 결국 안 좋은 일자리들은 약한 사람'만' 공격하는 게 아니라, 약한 사람'부터' 공격한다. 이후 공격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영역은 점점 확대된다. 그래서 나는 이런 문제가 남녀의 대립구조로 가는 걸 경계한다.
예를 들어 처음에 좋은 일자리가 80개였다면 남성이 50개, 여성이 30개를 가져가고, 여기에 들어가지 못하는 여성이 20명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남성이 좋은 일자리 60, 70개를 가져가는 게 아니라 좋은 일자리 자체가 줄어든다. 좋은 일자리에 들어가지 못하는 남성도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대표적으로 앞서 말씀드린 대전MBC가 그렇다. 처음엔 여성 아나운서만 프리랜서로 뽑았지만 어느 순간 남성 아나운서도 프리랜서로 뽑게 되었다. 나쁜 일자리가 여성에게 돌아가는 걸 당연하게 여기면 이 폐해는 돌고 돌아 우리 모두를 공격하게 된다."
- 말씀을 들어보니 갑갑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우선 여성에 관한 구조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이런 차별이 남성에게는 이익이라거나, 그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비슷한 맥락으로 가정 내에서의 성평등도 중요하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출산과 육아는 여성의 몫이다. 여성의 일자리가 나쁜 일자리가 되는 중요한 원인도 출산 문제다. 정부에서 저출생 얘기하면서 출산율을 올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여성들의 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 하나, 젠더차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나쁜 일자리들을 줄여나가야 한다. 노동의 사각지대를 줄여나가는 방식, 노동권이 존중 받는 방식으로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 이승윤 교수께서 '액화노동'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 말은 노동이 녹아내린다는 의미다.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사이로 마치 액체처럼 스멀스멀 빠져나가는 노동자들이 너무 많다.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에서도 다뤘지만 통신 판매업자, 보험 영업 노동자, 택배 노동자들 등등 이런 직군이 너무나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개인사업자로 분류되고, 문제가 생겨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노동제도, 법이 필요하고,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 현재 직장갑질119의 대표인데, 노동문제로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어떤 곳인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소개해달라.
"직장갑질119는 박근혜가 탄핵되던 해인 2017년에 만들어졌다. 그때 수많은 이들이 광장에 나와 민주주의를 외쳤는데 그들이 정작 본인 일터에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직장갑질119는 '광장에서의 민주주의가 왜 일터에서는 이뤄지지 않는가?', '자기 일터로 돌아가면 왜 작아지는가?' 이런 고민에서 시작했다. 이참에 일터 민주주의를 살리고 직장 갑질을 없앨 수 있는, 일하는 사람들의 소방수 역할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결국 많은 활동가와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논의한 덕분에 무사히 문을 열 수 있었다. 사실 갑질은 괴롭힘보다 훨씬 폭넓은 개념이다. 부당한 대우부터 차별, 임금 미지급, 착취 기타 등등 노동자들의 권리를 빼앗는 모든 현실에 대해 상담하고 이를 토대로 제도 개선, 법률 개선까지 나아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9년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만들어질 때 우리 단체의 역할이 컸다고 본다.
우리가 만나는 분들은 노조 밖에 있는 노동자,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부분인데 이런 분들이 기댈 곳이 별로 없다. 이분들을 상담하면서 기댈 곳의 역할을 하고 있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에 '직장갑질119'를 검색하면 누구나 익명으로 질문하고 상담 받을 수 있다."
"노동은 모두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직장갑질119가 주최한 국회토론회
윤지영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거듭 말씀드리지만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에 실린 이야기는 내 문제일 수 있고, 내 친구의 문제, 내 가족의 문제, 내 형제자매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럴 때 이 문제를 해결하는 건 누구였냐? 하고 물어보면 뭐가 됐든 변호사는 아니었다. 물론 나도 열심히 했고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 위로해 주는 사람,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결국엔 당사자들이 싸우겠다는 의지가 가장 중요했다. 암울한 노동 현실을 그렸지만 분명 이기는 사람들이 있다. 포기하지 말고 싸우시라고, 연대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노동은 모두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같이 힘을 모으면 좋겠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부분 중에 하나의 싸움은 다 같이 해결하는 거라는 내용이 있다. 혼자 싸우는 게 아니다. 곁에 사람이 있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의지가 되면 좋겠다."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 - 노동인권 변호사가 함께한 노동자들의 법정투쟁 이야기
윤지영 (지은이),
클,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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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법대-대형 로펌 출신인데 월급 100만원만 받는 '이상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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