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원 들 일이 5천 원에... 이 맛에 고칩니다

[은살남] 수리 필요하면 나부터 찾는 아내, 뭐든 고치는 맥가이버가 됐습니다

등록 2025.03.19 18:00수정 2025.03.1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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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한 고령화와 충분치 않은 노후대비는 노후생활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1955년생, 은퇴 후 전업 살림을 하는 남편으로서의 제 삶이 다른 퇴직자와 은퇴자들에게 타산지석과 반면교사가 되었으면 합니다.[기자말]

 찢어진 방충망
찢어진 방충망 이혁진

작년 오래된 집을 대수리 했지만, 그리고 나서도 안심하기는 어렵다. 지난 2월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싱크대 오배수관이 얼어 해동작업을 하느라 업자를 부르고 생고생을 치렀다(관련 기사: [연재] 베이비부머의 집수리 https://omn.kr/29vze )

올해 여름장마도 사실 걱정이다. 수리업자는 오래된 집은 수리를 했더라도 방수작업은 별도로 주기적인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심한 틈을 타 집에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는데, 늘 긴장하면서 해결책을 고민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일일이 업자에게 작업을 맡길 수 없는 법이고, 이들의 인건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작업자들은 한두 시간 작업에도 재료비는 얼마 되지 않는데 하루치 인건비를 거의 청구한다. 웬만하면 내가 직접 고치거나 수리하려는 이유이다.

물론 내 역량을 벗어난 어려운 작업은 전문가에게 할 수없이 맡기지만 가만 보니 그럴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듯했다.

집수리 이후 아내에게 버릇 하나가 생겼다. 어디 하자나 문제가 없는지 매의 눈으로 찾아내는 것이다. 집안을 새로 단장했으니 보다 가꾸려는 마음에서 생긴 변화이다.

또한 조그만 문제가 있으면 나더러 고쳐볼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이는 공사비를 조금이라도 아껴볼 심산에서 나온 것이다.


며칠 전, 아내가 작은방 방충망이 찢어진 것을 발견하고는 나를 불러 이것을 고쳐보라고 말했다. 그런데 왜인지 귀찮게만 들리지 않았다.

직접 해본 사람만 아는 뿌듯함... 아내도 '엄지 척'


 방충망시트와 테이프
방충망시트와 테이프 이혁진

희한한 일이다.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일단 방충망 시트를 찾으러 철물점을 찾으러 다녔다. 그런데 답은 가까이 있었다.

방충망 시트를 창틀에 부치면 완성되는 제품이 최근에 나온 것이다. 그래서 방충망 작업을 단돈 5천 원 정도로 해결했다. 재단하고 부치고 청소하는 등 작업시간도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사람을 불러 작업을 시켰다면 최소 인건비 등 10만 원은 족히 들었을 것이다. 이 뿌듯함은 직접 해본 사람이 아니고는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아내에게 한번 시공한 것을 보라고 했더니, 처음엔 내 솜씨를 의심하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내 맥가이버로 정식 인정하다며 '엄지 척'을 했다.

집수리를 하기 전만 해도 아내가 집 일을 시키면 한숨부터 나왔다. 짜증을 낼 때도 있었고, 가끔은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다. 아내의 요청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뭔가 돈 되는 일감을 찾은 듯 기쁘다. 내가 이렇게 변했다니 나 자신도 그 이유를 잘 모를 일이다.

심지어 고친 후 실력을 평가받고 싶어서, 고친 뒤엔 어떠냐고 되물을 정도로 여유까지 생겼다. 마치 유명 가전회사 엔지니어들이 수리 후 서비스 설문조사를 요구하듯이 말이다.

새로 만든 방충망을 보더니 아내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 또한 기분이 좋았다. 이것이 '은살남(은퇴 후 살림하는 남자)'이 맛보는 희열과 보람이 아닐까 싶다.

또 한 번은 화장실 욕실 바닥 배수가 잘 되지 않아 샤워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아내의 민원(?)이 있었다. 아버지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실제 보니 바닥이 '한강수'를 이루고 있었다. 옛날이었으면 이런 광경에 겁부터 먹고 도망갔을덴데, 한 번 어떻게든 해결해 보겠다고 나섰다.

작은 성공들을 경험하다 보니 이젠 문제가 생겨도 별 게 아니고, 일단 방법을 찾아 막힌 곳을 뚫으면 된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예전엔 실로 상상할 수 없던 변신이다.

욕실 배수도 배관업자를 부르지 않고 간단히 해결했다. 아내는 집에 배관해결사가 생겼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나아가 새로운 도전과제를 찾았다. 오는 6월, 장마에 대비해 페인트방수를 직접 해보는 것이다. 천천히 며칠 작업하면 인건비 백여만 원은 족히 건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내가 조금 움직이면 인건비를 버는 것이다. 집에서 가족들로부터 따뜻한 환대와 대접을 받는 일이기도 하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은살남 #방충망 #욕실배수 #맥가이버 #페인트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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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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