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의 현수막 청주도시산업선교회 담벼락에 게시한 옥산빌라 항의 현수막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추진위원회는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정진동 목사 조언대로 각 동별로 2명씩의 추진위원을 선임했다. 가동(31평형 4세대, 21평형 8세대), 나동(18평형 16세대), 다동(18평형 16세대)에서 각각 2명이 추진위원회 심부름꾼에 선임됐다. 이들은 44세대 약 200명의 주거공간 문제해결 책임에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다. 1991년 7월 9일이었다.
추진위원들은 입주자 전체회의를 열어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해 토론했다. 논의 초기에는 울분에 찬 이들의 건축주 성토대회장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는 현실적인 대안이 주로 논의됐다. 몇 차례의 논의과정을 통해 추진위원회의 요구는 다음과 같이 정리됐다.
계약서상에 명기된 분양 평수에서 모자라는 평수만큼의 분양가를 반환하라. 즉 31평으로 알고 입주한 이들은 실제 21평에 입주했기에 1550만 원(평당 분양가 155만 원×10평)을 반환하라는 것이다.
또한 부실공사를 속히 해결하라는 것과 복덕방비(부동산 중개 수수료) 15만~20만 원을 돌려달라. 만약에 위의 요구 사항이 받아들이기 어려우면 위약금(계약금의 두 배)과 중도금을 물어내라.
하지만 가~다동의 건축주 3인은 입주자들의 요구에 귀를 닫았다. 다만 청원군청의 시정명령에 현실성 없는 보완 공사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입주민들에게 공사 기간에 집을 비워달라고 억지를 썼다. 추진위원회는 이를 '돌부처가 박장대소할 일'이라고 규정했다.
추진위원회는 정진동의 도움을 받아 진정서를 작성해 충북도청, 청원군청, 청주지방검찰청에 발송했다. 주민탄원서를 작성해 관계기관에 보내기도 했다. 매주 일요일 오전에는 주민들이 청주도시산업선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오후에는 청주와 옥산면에서 선전전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겨레신문, 기독교신문, 새누리신문, 청주신문 등에 옥산빌라 사기 분양 사건이 보도됐다. 그해 8월 14일 정진동은 '옥산빌라 사기 분양문제에 대한 청주도시산업선교회의 공개서한'을 관내 지역구 국회의원, 청원군의원, 충북도의원, 청원군수, 충북도지사에게 발송했다. 4.19혁명 이후 부활한 지방의회선거가 치러진 해였다.
옥산빌라 주민들과 청주도시산업선교회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일심동체였다. 추진위를 구성해 합의할 때까지 약 80일간 매주 일요일 청주산선에서는 옥산빌라 주민들이 예배를 드렸다. 단순한 예배가 아니라 추진위원회 활동 보고와 향후 대책에 대한 토론의 장이었다. 9월 3일에 청주산선 교인들은 주민들에게 격려편지를 보냈다. 편지를 받은 주민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완전한 승리'

▲기도회 옥산빌라 문제해결을 위한 기도회에 참석한 옥산빌라 주민들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추진위원회 활동이 이어지고 언론에서 사기 분양 사건을 공론화하자 관련자들이 사법 처리됐다. 건축주 3명 중 2명이 구속됐고, 건축사 사무실이 6개월간 영업 정지를 당했다.
싸움 두 달 만인 9월 6일 옥산면장이 정진동을 찾아와 문제를 속히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옥산면장한테 행정적인 권한이 없었기에 축포를 터트리기에는 일렀다. 그런데 9월 17일에 사건 해결의 서광이 비쳤다. 청원군청 담당 과장과 계장이 청주산선을 찾아왔다.
드디어 9월 28일에 건축주와 추진위원회 임원들이 만나 합의를 봤다. 계약해지의 귀책 사유가 건축주에게 100% 있음을 확인했다. 그 결과 계약금 500만 원의 2배인 1000만 원을 배상하고, 중개수수료를 반환하며, 세대당 이사비용 5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주민들의 완전한 승리였다.
옥산빌라 주민들은 9월 29일 청주산선에서 '승리예배'를 드렸다. 정진동과 주민들은 서로를 얼싸안았다. 세상의 변화는 민중의 힘에서 이뤄진다는 정진동의 신념이 다시 한번 확인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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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평 분양 받았는데 21평... 건축주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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