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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평 분양 받았는데 21평... 건축주의 최후

[정진동 평전] 1990~1991년 옥산빌라 불법·사기 분양, 뭉쳐 싸워 승리한 입주민들

등록 2025.03.24 13:27수정 2025.03.2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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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동을 아십니까. 농촌선교(1958~1971)에서 도시산업선교(1971~2004) 활동까지, 정진동은 충북 지역 민주화운동의 어른이었습니다. 정진동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가 꿈꿨던 공동체 사회,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 민중해방의 사상을 살펴봅니다.[편집자말]
"쾌적한 환경 최신식 시설, 옥산빌라" 1990년 10월, 충북 청주 옥산면사무소 정문과 옥산면 마을 곳곳에 빌라 분양 광고 현수막이 내걸렸다. 평생을 단독주택에서 살아온 이들에게는 관심을 끌 만한 일이었다. 총천연색 광고지도 주민들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옥산빌라 44세대 분양 마감 임박! KS(Korean Standards) 제품만을 사용했습니다'라는 문구가 돋보였다.

'KS 제품'이라는 것

당시 KS(한국공업표준규격) 제품이라면 신뢰도 0순위였다. 좋은 제품을 사용한 연립주택이 옥산면 소재지인 가락 2구에 들어선다니 주민들의 가슴은 한껏 부풀어 올랐다. 광고지에는 4층 건물 3개 동의 옥산빌라 조감도가 있었다. 옥산면에서는 옥산빌라 분양이 주민들의 추석 밥상에 올랐다. 너도나도 옥산빌라 문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청원군 옥산면 오산리에 사는 정아무개는 아이들이 크면서 살고 있던 집이 협소해 불편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옥산빌라 분양 광고가 나자 뛸 듯이 기뻤다. 아내와 함께 분양을 전담한 복덕방(공인중개사 사무실)으로 갔다. "사장님, 잘 오셨습니다. 이제 미분양이 31평형, 21평형 각각 한 채씩밖에 남지 않았습니다"라고 했다.

"그래요?" 18평형도 분양대상이었으나 이왕 이사하는데, 21평형을 염두에 뒀던 정아무개는 '다행'이라며 안심했다. 그렇지만 경제적 형편을 고려하면 흔쾌히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수는 없었다. 면소재지에서 자전거포를 운영하는 그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정씨가 주저하자 복덕방 사장은 "지금 계약했다가 되팔아도 프리미엄 500만 원을 벌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프리미엄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옥산빌라가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말에 더 마음이 끌렸다. 그렇지만 매사에 신중한 정아무개는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라며 분양 사무실을 나왔다. 그날 밤 정아무개는 가족회의를 열었다. 분양 받자는 것에 만장일치 의견을 봤다.

계약금 500만 원은 매일 5000원씩 옥산신협에 저금한 적금통장을 해약해 해결하기로 했다. 문제는 중도금과 잔금. 21평형 분양가는 3100만 원이었다. 계약금 500만 원을 제하면 중도금과 잔금이 2600만 원이었다. 현재 사는 집은 팔아도 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집의 땅값이 전부였다. 땅값 시세가 2000만 원이기에 결국 600만 원은 빚을 내야 했다. 적금 깨고 땅 팔고 빚내야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었던 것. 그렇게 전체 소용 비용과 충당할 방법을 강구한 정아무개는 다음날 아내와 함께 복덕방에서 계약을 했다. 복덕방비(부동산 중개 수수료)는 15만 원이었다.

사실 옥산빌라 44세대 분양 계약자 대다수가 정아무개와 형편이 비슷했다. 평생을 농사짓거나 건축 현장에서 막일을 하거나 면소재지에서 영세자영업을 했다. 이들의 경제적 형편은 숨 쉴 여유가 없었으나 옥산빌라 입주를 앞둔 그들의 꿈은 누구보다 작지 않았다.


31평 분양받고 입주했더니... 10평이 좁았다

사기분양 사기분양 문제를 취재한 새누리신문. 1991.8.17
▲사기분양 사기분양 문제를 취재한 새누리신문. 1991.8.17 새누리신문

31평형에 입주하기로 한 가락리 최아무개는 당황했다. 1990년 11월에 착공한 빌라가 원래 계약한 대로 1991년 4월 말에 입주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이 살고 있던 집에 새 주인이 이사 오기로 한 것은 5월 1일이었다.

본의 아니게 거짓말쟁이가 돼버린 그는 상대편에게 거듭 사과를 했다. 건축주 측이 다시 약속한 6월 말에 이사하는 것으로 양해를 구했다. 44세대 모두가 최씨마냥 혼란에 놓였고, 순진한 입주자들은 약속을 위반한 건축주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지도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최씨는 손 없는 날을 택해 이삿짐을 옥산빌라에 풀었다. 31평형이면 지금 살고 있는 집 면적의 2배에 달했기에 김칫독 하나 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현관문을 들어선 최씨 가족은 어리둥절했다. 먼저 앞 베란다가 없었다. 뒤 베란다도 없고 다용도실이 부엌 한 귀퉁이에 있었다. 누가 봐도 31평(102.3㎡)은 어림도 없었다.

창틀에는 시멘트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연립주택 복도 벽도 마찬가지. 도배는 전문업자가 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천연색 광고지에 그려져 있던 조감도는 장밋빛 청사진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그 시간부로 다시 이삿짐을 쌀 수도 없는 일이었다.

최씨를 포함한 입주자들이 이삿짐을 푼 때는 장마철이 막 끝날 때였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이 집 저 집에서 빗물이 샌다고 아우성이었다. 연립주택 마당은 빗물이 한강(?)을 이뤘다. 배수로가 부실공사 된 탓이다. 폭우도 아닌 장마에 담장도 흔들거렸다. 총체적 난국.

장마가 끝나고 햇빛이 내리쬐던 날 입주자들이 빌라 마당에 모였다. 한결같이 입이 댓발만큼 나왔다. 노가다(건설노동자)하는 사람이 실측한 결과 31평형(4세대)은 21평형(전용면적 59.56㎡+공용면적 10.8㎡)에 불과했다. 즉 계약서보다 10평(33㎡)이 좁았다. 21평형(8세대)은 실제 14평형으로 7평이 줄었고, 18평형(32세대)은 12.4평으로 5.5평이 줄었다.

부실공사의 '끝판왕'

불법분양 기사 옥산빌라 불법분양 문제를 기사화 한 청주신문 1991.8.2
▲불법분양 기사 옥산빌라 불법분양 문제를 기사화 한 청주신문 1991.8.2 청주신문

공사과정을 유심히 지켜본 입주자들의 부실공사 증언이 이어졌다. 기초공사로 "공구리(콘크리트) 치기(붓기) 전에 구리스(호박돌)를 넣어야(깔아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어유"라고 했다. 어떤 이는 "슬라브(콘크리트)를 치고 기와를 이어야 하는데, 나무(서까래) 위에 기와를 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기와가 밀려나 있었다.

계약서상의 면적보다 실제 공간이 5~10평이 줄어든 것과 온갖 부실공사는 며칠 뒤 밝혀진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부실공사의 끝판왕은 '44세대가 입주한 옥산빌라의 준공검사가 나지 않은 것'이었다. 건축주가 입주해도 된다고 해서 이사했는데, 준공검사가 나지 않은 건물이었던 것이다. 즉 불법 건조물에 입주했으니 불법행위를 저지른 격이었다(옥산빌라 대책위원회, 진정서, 1991).

1991년 7월 3일 청주MBC가 옥산빌라 사기 분양 사건을 취재했다. 문제의 핵심은 사기 분양이었다. 이 과정에서 준공검사가 나지 않은 문제도 공론화됐다. 지역뉴스에 방송되자 다급해진 것은 감독권이 있는 청원군청이었다. 청원군청은 분양면적이 축소된 것과 설계도대로 건축하지 않은 것에 시정조치 명령을 내렸다.

행정관청의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는 없는 법. 옥산빌라 건축주들은 입주민들에게 "시정 명령대로 공사를 해야 하니 집을 비워달라"고 했다. 공사 불편의 대가로 300만~50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당장 거주할 공간이 없기에 응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건축주들은 '입주민들 때문에 공사를 할 수 없다'며 부실공사의 향후 대책에 대한 책임을 입주자들에게 떠넘겼다. 더욱 황당한 일은 '준공검사도 끝나지 않은 빌라에 입주한 주민들 때문에 문제가 됐다'며 일부 입주민을 고소하기까지 했다.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격이었다.

결국 옥산빌라 문제는 입주민 개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게 확인됐다. 주민들은 1991년 7월 9일 '옥산빌라 사기 분양 피해주민 추진위원회(아래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주민들이 청주시 사창동 소재 청주도시산업선교회를 방문한 직후였다.

건축주는 현실 불가능한 말만... 똘똘 뭉친 입주민들

항의 현수막 청주도시산업선교회 담벼락에 게시한 옥산빌라 항의 현수막
▲항의 현수막 청주도시산업선교회 담벼락에 게시한 옥산빌라 항의 현수막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추진위원회는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정진동 목사 조언대로 각 동별로 2명씩의 추진위원을 선임했다. 가동(31평형 4세대, 21평형 8세대), 나동(18평형 16세대), 다동(18평형 16세대)에서 각각 2명이 추진위원회 심부름꾼에 선임됐다. 이들은 44세대 약 200명의 주거공간 문제해결 책임에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다. 1991년 7월 9일이었다.

추진위원들은 입주자 전체회의를 열어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해 토론했다. 논의 초기에는 울분에 찬 이들의 건축주 성토대회장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는 현실적인 대안이 주로 논의됐다. 몇 차례의 논의과정을 통해 추진위원회의 요구는 다음과 같이 정리됐다.

계약서상에 명기된 분양 평수에서 모자라는 평수만큼의 분양가를 반환하라. 즉 31평으로 알고 입주한 이들은 실제 21평에 입주했기에 1550만 원(평당 분양가 155만 원×10평)을 반환하라는 것이다.

또한 부실공사를 속히 해결하라는 것과 복덕방비(부동산 중개 수수료) 15만~20만 원을 돌려달라. 만약에 위의 요구 사항이 받아들이기 어려우면 위약금(계약금의 두 배)과 중도금을 물어내라.

하지만 가~다동의 건축주 3인은 입주자들의 요구에 귀를 닫았다. 다만 청원군청의 시정명령에 현실성 없는 보완 공사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입주민들에게 공사 기간에 집을 비워달라고 억지를 썼다. 추진위원회는 이를 '돌부처가 박장대소할 일'이라고 규정했다.

추진위원회는 정진동의 도움을 받아 진정서를 작성해 충북도청, 청원군청, 청주지방검찰청에 발송했다. 주민탄원서를 작성해 관계기관에 보내기도 했다. 매주 일요일 오전에는 주민들이 청주도시산업선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오후에는 청주와 옥산면에서 선전전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겨레신문, 기독교신문, 새누리신문, 청주신문 등에 옥산빌라 사기 분양 사건이 보도됐다. 그해 8월 14일 정진동은 '옥산빌라 사기 분양문제에 대한 청주도시산업선교회의 공개서한'을 관내 지역구 국회의원, 청원군의원, 충북도의원, 청원군수, 충북도지사에게 발송했다. 4.19혁명 이후 부활한 지방의회선거가 치러진 해였다.

옥산빌라 주민들과 청주도시산업선교회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일심동체였다. 추진위를 구성해 합의할 때까지 약 80일간 매주 일요일 청주산선에서는 옥산빌라 주민들이 예배를 드렸다. 단순한 예배가 아니라 추진위원회 활동 보고와 향후 대책에 대한 토론의 장이었다. 9월 3일에 청주산선 교인들은 주민들에게 격려편지를 보냈다. 편지를 받은 주민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완전한 승리'

기도회 옥산빌라 문제해결을 위한 기도회에 참석한 옥산빌라 주민들
▲기도회 옥산빌라 문제해결을 위한 기도회에 참석한 옥산빌라 주민들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추진위원회 활동이 이어지고 언론에서 사기 분양 사건을 공론화하자 관련자들이 사법 처리됐다. 건축주 3명 중 2명이 구속됐고, 건축사 사무실이 6개월간 영업 정지를 당했다.

싸움 두 달 만인 9월 6일 옥산면장이 정진동을 찾아와 문제를 속히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옥산면장한테 행정적인 권한이 없었기에 축포를 터트리기에는 일렀다. 그런데 9월 17일에 사건 해결의 서광이 비쳤다. 청원군청 담당 과장과 계장이 청주산선을 찾아왔다.

드디어 9월 28일에 건축주와 추진위원회 임원들이 만나 합의를 봤다. 계약해지의 귀책 사유가 건축주에게 100% 있음을 확인했다. 그 결과 계약금 500만 원의 2배인 1000만 원을 배상하고, 중개수수료를 반환하며, 세대당 이사비용 5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주민들의 완전한 승리였다.

옥산빌라 주민들은 9월 29일 청주산선에서 '승리예배'를 드렸다. 정진동과 주민들은 서로를 얼싸안았다. 세상의 변화는 민중의 힘에서 이뤄진다는 정진동의 신념이 다시 한번 확인된 순간이었다.
#옥산빌라 #사기분양 #부실공사 #준공검사 #박장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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