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김영세교육감 퇴진 집회
전교조 충북지부
교장 하려면 1000만원, 교감은 500만원... '장천감오'의 시대
S씨의 성매매 여인숙 폭로 이후 전직 교장·교감 출신으로 구성된 사도회(충청북도사도회)에서 김영세 비리를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사도회가 제기한 내용은 성매매 여인숙 임대와 1998년 12월 S씨가 준 뇌물 200만 원 건 이외에도 여럿 있었다.
우선 재산형성과 관련한 의혹이 제기됐다. 보통 평생 교직에 몸담은 사람이 모을 수 있는 돈이 2억~3억 원이라면 김영세는 2000년 당시 천문학적 수준이었다. 2000년도에 김영세 재산으로 제기된 것은 1985년에 구입한 북문로 2가 은하여인숙 건물(1997년 철거)이 대표적이다.
1989년 우암동의 대지 102평을 매입해 1991년 지하 1층 지상 4층, 연건평 410평(약 1357㎡)의 건물을 지어 교연학원에 임대했다. 1996~1997년에는 5층으로 증축했다. 공교육 강화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교육지도자가 현직 교장과 교육감(1995.12.4.~2002.4.2.) 재직시절에 대형 사립학원에 자신의 건물을 임대해 임대료를 받은 것이다(충청북도사도회, '성명서', 2000.11.22.).
위의 북문로 여인숙(70평)이나 우암동 교연학원 대지(102평)는 당시 평당 약 1000만 원대로 시가가 각각 7억 원과 9억 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1996년 상당구 수동 60평 I빌라는 장남 명의로, 1998년 금천동 59평 N아파트는 차남 명의로 구매했다. 이외에도 김영세와 그의 장남과 차남 명의의 재산목록은 여럿이 있다. (충북사도회 외, '공개청원서', 2000.11.23.).
성매매 여인숙 파문 이후 가장 크게 문제 된 것은 인사채용과 관련한 뇌물 문제였다. 김영세 교육감 당시 교육계에서 떠도는 말이 있었다. '장천감오(長千監五)'였다. 즉 교장이 되려면 1000만 원을, 교감이 되려면 500만 원을 뇌물로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충북도교육청 소속 교사들의 인사권은 교육감에게, 직원들의 인사권은 부교육감에게 있었다. 그런데 직원들 인사권마저 김영세 교육감이 행세했다는 불만이 도교육청 간부로부터 터져 나왔다.
이외에도 김영세 교육감 비리에 대한 제보는 사도회와 현직교사, 교육청 관련 건설업자, 납품업자들로부터 봇물 터지듯이 이어졌다. 심지어 충청북도교육청 산하의 과학연구원장이 뇌물 1200만 원을 김교육감에게 줬다는 양심고백을 하기도 했다. 김영세는 비리의 온상처럼 인식되었다.
상장 반납 운동도 전개
김영세 교육감의 비리가 언론에 공개되고 국회 국정감사에서 도마에 오르자 시민사회단체가 움직였다. 청주도시산업선교회와 참교육학부모회 충북지부, 청주KYC, 천주교 청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앞장섰다.
이 단체들은 충청북도 교육의 수장인 교육감이 매춘여인숙을 소유한 점과 인사 비리, 뇌물수수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김영세 교육감 퇴진 운동의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정진동 목사와 참교육학부모회 진옥경 지부장이 총대를 맨 격이었다.
한편, 사도회에서는 김영세 교육감 비리에 대한 자료와 정보를 수집해 '공개 질문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사도회에서는 정진동에게 김영세 교육감 개인 비리뿐만 아니라 기존의 교육계에서 관행적으로 있었던 뇌물수수, 인사 비리, 납품 비리 등의 고질적 문제에 대해서 자기 고백했다.
정진동은 앞의 단체들과 함께 2000년 11월 22일 충북도청 기자실에서 '김영세 교육감 퇴진을 위한 기자회견'을 했고, 12월 2일에는 <노동일보>에 성명서를 기고했다. 12월에는 충북도교육청 앞에서 퇴진 시위를 벌였으며 충북여성민우회 사무실에서 퇴진 대책회의를 진행했다.
퇴진 운동에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은 2001년 들어서다. 전교조 충북지부와 민주노총 충북본부가 퇴진 운동에 합류하면서부터다. 김수열이 전교조 충북지부장에 취임하면서 경선 때 자신이 공약으로 내세웠던 '김영세 교육감 퇴진 운동'을 이행하면서부터다.

▲성매매 여인숙 뇌물수수 의혹 해명 요구 성매매 여인숙 뇌물수수 의혹 해명을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관련 기사. 충청리뷰 2002.6.16
충청리뷰
퇴진 운동 조직은 청주시민행동(21개 단체)을 포함해 충청북도 전역으로 확대됐다. '김영세 교육감 퇴진을 위한 도민행동'이 꾸려졌다. 청주에서는 매주 화요일마다 집회를 가졌고, 한 달에 한 번 개최한 토요집회는 대규모로 진행했다.
충북도교육청 정문에서 약 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퇴진 촉구대회가 열렸다. 대회사를 맡은 정진동은 나라의 근간인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사자후를 토했다. 김영세 비리에 대해 조목조목 열거하다가 갑자기 엉뚱한 이야기가 튀어 나왔다.
"교육감이 뽀얀 다리만 좋아한다." 정진동의 풍자에 집회 참석자들이 배꼽을 잡았다. 2001년 2월 1일 <추적 60분>이 김영세 교육감에게 성상납을 했다고 양심 선언한 C씨를 취재한 것을 놓고 이야기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김수열 증언). 퇴진 운동 집회 때마다 정진동의 연설은 거칠 것이 없었다. 그만큼 교육자의 도덕성을 중요시한 탓이다.
퇴진 운동은 여러 각도에서 이뤄졌다. 퇴진 서명부터 차량용 스티커 부착, 대학교 안 홍보와 충북의 각 시군에서의 홍보전까지였다. 전교조 충북지부의 독자적인 운동도 다양했다. 대표적인 것이 '상장 반납 운동' 이었다. 교사들이 김영세 교육감으로부터 받은 상장을 반납한 것이다. 교육감 퇴진 선언도 진행되었다.
가장 큰 활동은 단양부터 영동까지 진행된 '김영세 퇴진 교사 행진'이었다. 단양 북부지회 교사 7명이 시작한 행진은 각 시·군에서 행진할 때 현지 교사들이 합류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밥을 해 먹고 텐트를 쳐 잠을 잤다. 조끼를 맞춰 입은 이들의 배낭에는 '김영세 퇴진'이라는 작은 팻말을 꽃았다. 이 행진에 참여한 교사는 연인원 수백 명이었다.
"신변 정리하시오"
퇴진 운동이 장기화되자 전교조 김수열 지부장이 교육감실 농성에 돌입했다. 교육청 정문에서는 전교조 교사들과 도민행동 회원들이 교육감 출입을 막았다. 교육감이 출근할 때는 교육청 직원들이 출동해 정문의 인간 바리게이트를 돌파해야 했다. 하지만 교육감실에서 집무를 보지는 못했다. 김수열이 농성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감실 점거 농성은 38일간 이어졌다.
드디어 김영세 교육감 비리 문제가 사법부의 심판대에 올랐다. 정진동은 2001년 5월~6월에 개최된 3, 4차 공판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 참석해 김영세 비리에 대해 증언했다. 김영세는 자신에게 제기된 비리 혐의에 대해 일관되게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그해 12월 10일 불구속 상태에서 진행된 청주지방법원에서 판사는 김영세에게 징역 2년 6개월, 추징금 2300만 원을 선고했다. 김영세가 항소해 심판대는 대전지방법원으로 옮겨졌다.
2002년 2월 20일 열린 대전지방법원 1차 공판에서 판사는 피고 김영세에게 "다음 선고 공판까지 신변 정리해 오시오"라고 했다. 이는 교육감직에서 사퇴하지 않으면 법정구속하겠다는 의미였다.
판사는 김 교육감의 재판 지연을 질타하고 피고 측의 증인 신청을 기각한 바 있다.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김영세는 3월 9일 사퇴 입장을 공식 표명했다. 3월 13일 선고 공판 있기 나흘 전이었다. 이로 인해 김영세 교육감 퇴진 운동은 종막을 고했다.

▲신변정리 요구 대전고법에서 김영세교육감 신변정리 요구한 기사. 충청일보 2002.3.11
충청일보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
공유하기
'성매매 여인숙'에 임대료 받은 교육감, 결말은...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