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소풍 간 아이들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사창동 골목유아원'은 1984년 '꿈나무 어린이동산'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동화구연과 노래를 가르치고 사방치기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전래놀이를 했다.
봄·가을 소풍은 기본이고 매년 어린이날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아이들이 받는 용돈 중 일부를 저금하게 해 아이들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었다. 이른바 경제교육을 한 것이다. 이외에도 그림 그리기, 악기연주, 노래 부르기, 한글 교육, 학예 발표회를 통해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즐겁게 뛰어놀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일반 유치원에서 하는 프로그램 못지않게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정진동의 교육 철학과 전문성 있는 정광옥, 김계숙, 차재남, 박애경, 김홍미 교사들의 자질과 열정 덕분이었다.
1981년 5월 4일 '보육일지'에 의하면 아이들 간식으로 '빠다빵(버터빵)과 보리차'를 줬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청주시는 교사 인건비만 책임지고 운영비, 프로그램비, 간식비 일체를 지원하지 않았다. 그나마 인건비조차 1981년도에 2개월만 지원했을 뿐이다. 다행히도 1982년도에 KNCC 인권위원회 권호경 목사의 주선으로 독일에서 운영비를 지원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주교육지원청은 1984년도에 동네 골목유아원에 '무인가 교육기관 양성화 촉구' 공문을 내려보냈다. 학교 시설 설비 기준령에 근거해 시설과 교구를 갖추라는 것이다. 사실 교육청이 공문을 보낸 것은 1984년에 있었던 내덕동·운천동·송정동 주민싸움에 청주산선이 깊숙이 개입했기에 보복 차원에서 한 것이다.
학부모회장과 조순형은 청주교육지원청을 항의 방문했다. "우리는 그만두겠다. 대신 우리 아이들이 기존에 했던 것처럼(프로그램 등) 똑같이 운영해라." 청주시의 지원 실태를 잘 알고 있던 청주교육지원청은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청주시 지원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결국 1987년까지 운영한 '꿈나무 어린이동산'은 꿈을 접고 폐원할 수밖에 없었다.
"아~ 하세요"

▲치과 진료 접이 의자 두 개 위에서 치료받는 아이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엄마의 손을 잡은 꼬마가 진료실 앞에서 주춤거렸다. 엄마의 노크에 "들어 오세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재원아. 들어가자" "싫어!" 엄마가 아들을 번쩍 들어 안으려고 하자 발버둥을 쳤다. 엄마는 눈을 부릅떴다가 이내 온화한 표정으로 "진료 잘 받으면 짜장면 사줄게"라고 했다. 짜장면 소리에 아이의 표정이 180도 바뀌었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재원이를 반갑게 맞이했다. 이내 진료 의자에 앉은 재원이는 긴장했다. 어른들도 치과 진료를 하면 긴장하게 마련이니 5세에 불과한 재원이는 말할 것도 없었다. 입을 꾹 다문 재원이에게 의사가 "아~ 하세요"라고 했다.
"충치네요." "재원아. 앞으로 하루에 세 번 꼭 양치질 해야돼"라며 치아 모형에 양치질 방법을 시범을 보였다. 모든 진료가 끝나자 재원이 엄마가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사전에 진료가 무료라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이대로 가도 되는지 몰라서다.
그러자 눈치를 챈 의사가 "얼릉 가세요"라고 했다. "이렇게 치료해 주셨는데, 그냥 가기 죄송해서유" 의사는 재원이 엄마의 등을 떠밀듯이 했다. 청원군 북일면(현재의 내수읍) 정하리 장재원(당시 5세)이 청주도시산업선교회에서 치과 진료를 받은 것은 1980년대 초반이었다.
청주도시산업선교회에서 치아 진료를 하게 된 계기는 1982년 서울대학교 치대생들이 교수들의 지도를 받아 행해진 여름방학 의료봉사였다. 당시 서울지역의 의대생들은 영등포도시산업선교회 의료봉사에 이어 청주산선에서도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진료는 발치, 충치, 치석 치료였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여름방학 내내 진료 봉사를 한 학생은 김현덕(현재 서울대학교 교수), 김영희, 김형돈 등이었다.
1983년에는 정진동이 대전으로 가 치과 진료기기를 구입했다. 주민들에게 무료진료를 하는 마당에 보다 높은 진료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다. 19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의료보험(건강보험)이 전국민에게 실시되지 않아 치과 진료 비용은 무척 비쌌다. 그러다 보니 웬만큼 아파서는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양치질을 포함한 치아 관리도 엉망인 게 당시의 세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청주도시산업선교회에서 무료 치과 진료를 한다는 소식은 복음(福音)이었다. 청주산선 인근의 사창동 주민뿐만 아니라 청주시 일원과 심지어 청원군에서도 청주산선을 찾았다. 청주산선이 노동선교, 민중선교에서 주민들에게 가까이 가 그들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해결 해주는 '공동체 운동'으로까지 나선 것이다. '사창동 골목 유아원'에 이은 주민공동체 운동의 실천이었다.

▲치과기기 치과기기를 정리하고 있는 의대생
청주도시산업선교회
단국대학교 의대생
청주산선 인근 주민들은 매년 여름과 겨울만 목타게 기다렸다. 방학 때만 치과 의료봉사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방학 중에 청주산선을 찾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자 1984년부터는 방학 중 봉사와 주말 봉사를 병행하기 시작했다.
1993년도부터는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 의대생들이 의료봉사의 배턴을 이어받았다. 의료 봉사에 참가한 의대생들이 노동현장에서 산업재해와 직업병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이들은 이후 사문화된 산재와 직업병이 근로복지공단에서 현실화되는 데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때 국민건강보험법이 시행이 되자 청주산선에서의 무료 치아 진료 활동은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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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뛰놀고 의대생 봉사까지... 이런 교회 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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