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 파운드케이크 쑥 가루를 넣은 초록빛 파운드케이크
김현진
쑥을 생각하던 나의 시야에 어느샌가 쑥 파운드케이크 레시피가 들어 왔다. 모임(20대, 30대, 40대로 세대가 다른 여섯 명이 모여 글쓰기를 함께한다)에서 친구들과 나눠 먹고 싶어 케이크를 굽기 시작했다.
파운드케이크는 버터와 밀가루, 달걀과 설탕을 동일 비율로 넣어 섞으면 되기 때문에 초보자도 만들기 쉬운 케이크 중 하나. 그렇게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웬걸, 이번 레시피는 공정이 복잡하다. 달걀흰자를 따로 휘핑하여 머랭(달걀흰자에 설탕을 첨가하여 단단해질 때까지 거품 낸 것) 상태로 반죽에 섞어 구운 뒤 겉면은 화이트초콜릿 가나슈로 감싸 마무리한다.
흰자를 휘핑하여 섞는 건 전체적인 식감을 가볍게 해주기 위해서다. 봄은 아무래도 묵직한 파운드케이크보다 포근한 시폰 케이크와 잘 어울린다. 따스해진 기온만큼 얇아진 겉옷, 딱딱한 나무껍질을 뚫고 솟아나는 여린 싹과 꽃, 그 모두의 위로 부드럽게 번지는 햇살처럼. 케이크 겉면을 덮는 화이트초콜릿의 색과 맛도 가벼운 쪽을 향한다. 실제로 화이트초콜릿은 다크 초콜릿보다 낮은 온도에서 녹고 입안에서 느껴지는 결도 매끄럽고 얇다.
케이크를 마무리하느라 모임 약속에 늦고 말았다. 헐레벌떡 도착해 케이크 상자를 책상 위에 놓으니 다른 멤버들도 하나둘 가방에서 간식을 꺼냈다. 나누고 챙겨주고 싶은 마음으로 모임은 시작된다. 좋아하는 마음과 만남의 기쁨을 열렬히 표현하는 사람들, 그런 이들이라는 걸 알아 이 모임에선 나의 속내를 드러내도 걱정이 되지 않는다.
이번 모임의 글 주제는 '감각'이었다. 각자가 써온 '감각'에 대한 글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멤버 중 하루님은 향수를 좋아해 수집하는데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에 어울리는 향수를 고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 가지고 있는 향수를 정리하는 데만 2시간이 넘게 걸렸다니 향수에 쏟는 그녀의 마음이 진심이구나 싶어 감탄했다.
무언가를 유난한 애정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삶에 대한 긍정적 에너지가 느껴진다. 이 세상에 누군가가 좋아하는 무엇이 있다는 사실이 내게도 그처럼 좋아할 구석이 있을 거라는 가능성으로 읽힌다.
젤덕님과 단풍님은 바쁜 직장인임에도 불구하고 수영에 빠져 새벽마다 물살을 가르는 재미를 전했다. 두 사람은 온몸을 물에 담글 때의 신선함과 힘차게 물을 가르고 난 뒤에 찾아오는 몸의 가벼움을 찬양했다. 함께 수업을 듣는 수영인들끼리 눈빛과 낯빛, "출발하시죠~" 하는 말 한 마디로 나누는 교감과 샤워실에서 엿듣는 할머니들의 농밀한 입담에 담긴 삶의 지혜는 덤이라고.
그 집 누구누구가 어떻고, 하며 한참 흉을 보다가도 "그래도, 짠 혀~"라고 끝나는 이야기에서 인간이 그럴 수도 있지, 라는 경계 없는 포용을 배운다고. 수영인들과 물속에서 주고받는 응원과 격려, 그리고 샤워실에서의 인간적인 대화까지, 수영장에서 나누는 그 모두가 돌봄과 회복, 공감과 연대가 아닐까 싶다. 어디든 사람들이 모이면 공기처럼 그런 일이 오간다.
예민한 청각 때문에 고생했던 섬하님은 감각신경성 난청이라는 슬픈 진단을 받은 사실을 고백했다. 특정 주파수는 약하게 들리는데 크고 날카로운 소리에는 고막이 자극받아 불안을 일으키는 원인불명의 상태.
그녀의 글에 묘사된 것처럼 접시 부딪히는 소리, 매직 긁히는 소리에 귀를 막고 몸을 흔드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다 보면 누구나 말할 수 없는 예민한 구석이 있고, 쉽사리 넘어지지 않는 이상한 선이 있겠지, 하는 깊은 공감에 닿았다. 자신의 예민함을 솔직하게 토로하는 글을 읽었을 뿐인데 어느새 내 안의 까칠하고 기괴한 면까지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서로의 삶을 알아채며 느끼는 위안과 용기
모임에서 글을 나누는 일은 나를 표현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나를 열어 타인을 내 세계로 초대하는 순간, 나를 적은 글은 폐쇄적인 공간이길 포기한다. 또한 타인의 초대에 응해 그의 글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엔 나의 경계가 미세하게 자라난다. 내 곁에 나란히 또는 어슷한 자리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되면서. 보이지 않던 타인의 세계가 내 곁에 옹기종기 모여 있음을 깨달으면서. 멀리서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하나의 줄기에 매달린 꽃차례처럼 보일지 모른다.
나를 들어주는 이들이 있고, 내게 곁을 내어주는 또 다른 삶이 있어 힘을 얻는다. 모든 순간을 함께 하지 않고, 각자 떨어져 분투하는 시간이 더 많지만, 그렇게 삶을 걷고 있는 누군가를 알아채는 것으로 위안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 모여서 자라는 쑥처럼, 모여서 피어나는 쑥의 꽃차례처럼.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 돌봄과 회복, 공감과 자유 그리고 연대를 실천하고 있나 보다.
쑥 파운드케이크를 글친구들과 함께 먹었다. 포슬포슬한 케이크의 식감 사이로 쑥의 풋풋한 향이 떠올랐다. 케이크 겉면의 화이트초콜릿이 봄날의 햇살처럼 녹아내렸다. 공감하는 눈빛과 진솔한 대화, 재치있게 곁들이는 농담이 공기 방울처럼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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