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제복지원재단에서 2002년 설립한 중증장애인요양시설 '실로암의 집'
형제복지원 자료집 14권
진실화해위 조사의 한계
이렇듯 수도권과 강원권에 있었던 여러 집단수용시설에서 이러한 인권침해가 흔했다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조사된 시설에서 지금까지 진실화해위원회에 자신의 피해를 신고해 진실결정을 받은 사례는 전무하다. 이것은 집단수용시설의 피해사건이 이전의 다른 과거사 사건과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의 이행기정의 개념과 제도의 확장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이행기정의는 국가폭력으로 발생한 인권침해로 이해되는데, 여기에는 일제강점기 하에 발생한 강제노동, 위안부, 그리고 정치적 억압 등의 사건이나, 한국전쟁을 전후한 민간인 학살, 권위주의 시기의 정치적 자유와 억압, 그리고 반대파에 대한 숙청, 학생, 노동, 사회운동에 대한 탄압이 포함된다. 이러한 이행기 정의 프레임에 부랑인 및 장애인 등 소수자 문제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2기 진실화해위가 출범할 수 있었던 것은 형제복지원에서 발생한 사건들이 너무 끔찍해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는 것과, 피해생존자와 시민사회의 헌신적인 활동 덕분이었지만, 위원회 내부에서도 여전히 형제복지원과 같은 집단수용시설 문제에 대한 이해는 제한적이다. 2기 위원회에서 형제복지원과 같은 집단수용시설 문제는 부랑인 문제라 인식된다. 일반적으로 '부랑인'은 '홈리스homeless'라고 인식되는데, 위원회에서도 집단수용시설에 수용된 이들 중 홈리스나 도시 빈민만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형제복지원에 대한 기존 연구들 뿐만 아니라, 필자가 수행한 용역조사를 통해 집단수용시설에 수용된 '부랑인'이라는 범주 속에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홈리스뿐만 아니라 생계능력이 없고, 자신을 부양할 자가 없는 다양한 이들이 포함되는데 여기에는 장애인 등도 포함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수용은 아직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적으로 보면 이행기정의 프레임에 장애인, 선주민 등 사회적 배제와 집단수용시설의 문제가 중요해지고 있는 추세이다. 2022년 진실화해위원회의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 조사 해외동향 연구' 보고서는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서의 사례들이 소개되었다.
국내외 집단수용시설 사건의 피해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이들은 오랜 집단수용시설의 수용에서 발생된 장애, 질병, 사회적 배제, 가족과의 단절, 교육기회의 박탈 등으로 자신의 피해나,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여전히 집단수용시설에 수용된 이들은 조사를 인지하더라도 시설 관리자의 눈치를 봐야하기에 신청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 한국의 진실화해위의 조사는 당사자 또는 유족 등의 조사 신청이 있고, 내부적인 검토를 통해 조사 결정을 해야만 조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애초에 피해자들은 이행기정의적 제도에서 배제되어 있다.
한편 진실화해위원회는 제한된 기간, 제한된 예산과 인력으로 신고된 사건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당사자의 집단적인 활동도 중요하다. 충분한 피해자 인원이 되는지, 이들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가 조사의 실행에 비공식적인 참고자료가 된다. 한국의 식민지 경험과 전쟁 및 독재의 경험은 다양한 종류의 피해들을 만들었고, 위원회 내부에는 예산과 인력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경쟁이 존재한다. 하지만 집단수용시설 피해자의 경우, 여러 이유로 자신의 피해를 사회적으로 발언하기가 매우 힘들다. 즉 진실화해위원회라는 제도는 형제복지원 등 집단수용시설 사건의 조사에 있어 여러 성과를 내고 있음에도, 구조적인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중단 없는 조사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이제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도 그 기한을 다해가고 있다. 여전히 신청된 많은 사건들이 조사되지 않았으며, 더 많은 사건들이 아직 신청조차 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형제복지원이나 선감학원, 그리고 영화숙·재생원 사례를 봤을 때 심지어 여론에서 주목받아 자주 언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청기간을 놓친 이들도 적지 않다. 그렇기에 집단수용시설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이행기정의적 인식과 제도의 개선이 필요한 것이다.
중단 없는 조사와 제도적 보완 필요
2024년 필자가 수행한 또 다른 용역조사에서는 시설에서의 피해로 인한 트라우마는 피해생존자들을 평생 따라다니며 괴롭히며, 주변 이들과의 관계 맺기를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억울한 죽음들, 피해들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와 사과, 그리고 더 나은 사회로의 변화를 위해서는 중단 없는 조사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여러 제도적 한계가 있지만 진실화해위원회는 집단수용시설 사건의 조사에 나름 최선을 다했고 성과를 보여왔다. 그럼에도 신청되었지만 아직 조사되지 않은 사건도 많다.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사건들을 위해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의 연장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럼에도 진실화해위원회는 여러 제도적 한계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동시에 집단수용시설문제의 해결을 위해 새로운 조사기구에 대한 논의도 시작되어야 한다.

▲ 2023집단수용시설피해생존자구술채록최종보고서 표지
진실화해위원회
*필자인 김재형(hyungjk7@knou.ac.kr)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한센인의 격리와 낙인·차별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논문으로는 <'Big Brother' at Brothers Home: Exclusion and Explitation of Social Outcasts in South Korea>, <한국 집단수용시설의 법제도와 인권침해, 그리고 국가 책임>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질병, 낙인: 무균사회와 한센인의 강제격리>, 공저로는 <절멸과 갱생 사이: 형제복지원의 사회학> 등이 있다. 2021년부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집단수용시설와 관련한 3개의 용역조사에 연구책임자 등으로 참여했으며, 현재는 '영화숙/재생원 피해생존자 지원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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