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1화 中 시장에서 양배추를 파는 관식과 애순
넷플릭스 캡쳐
어머니 광례가 하는 물질만큼은 아니지만, 땅이 척박한 제주에서 농사 짓기는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현무암과 화산재로 이뤄진 제주 토양에서는 논농사를 짓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따라서 농민들은 쌀보다는 보리, 메밀, 콩 같은 밭작물을 주로 길러 식량으로 활용했다.
제주 지역 제삿상에 빵을 올리는 풍습도 부족한 쌀밥을 보릿가루를 익반죽해 찐 떡으로 대체한 것이 유래다. 다만 제주의 기후는 무, 당근, 감자, 양배추 같은 특용 작물을 기르기에 유리하다. 오늘날에도 전국 양배추 생산량 1위를 차지하는 지역이 바로 제주특별자치도다.
드라마 속 농사 짓는 장면을 보면, 한겨울 눈밭에 양배추가 자라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월동을 거친 양배추는 한결 달고 식감 역시 아삭하다. 양배추라는 작물이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구한말 무렵으로, 본격 재배가 시작된 것은 1950년대의 일이다.

▲양배추 결구를 이룬 노지 양배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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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일어날 때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서민들에게 양배추는 낯선 채소였다. 6.25 발발로 유엔군이 주둔하자 이들을 중심으로 수요가 늘기 시작해 자연스럽게 재배면적도 늘어났다.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내수 시장이 커진 것도 양배추를 대중화시킨 요인이다.
경양식집 돈가스에는 채 썬 양배추 사라다가 딸려 나왔다. 소스는 주로 케첩과 마요네즈를 반씩 섞은 것이다. 치킨무와 함께 곁들이기도 하고, 샌드위치 속재료로도 쓰이는 등 쓰임새는 점차 다양해졌다. 최근에는 양배추가 위장 질환을 막아주는 건강식품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양배추채 경양식집 등에서 샐러드 재료로 쓰이는 양배추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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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의 대학 진학을 책임졌다는 감귤만큼은 아니지만, 양배추와 같은 특용 작물역시 제주도민들의 오랜 빈곤을 해소해 준 고마운 존재라 할 수 있다. 애순, 관식 같은 어르신들의 땀과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 제주 양배추는 달콤함과 알찬 영양을 머금게 됐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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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에서 국제경제, 유통, 산업 등 여러 부서를 거치다 현재 프리랜서 음식 작가로 활동중입니다. 두 권의 음식 단행본을 출간했으며 역사와 음식, 기타 잡지식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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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녀 애순이는 왜 하필 양배추를 심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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