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판결의 결과 그 자체보다, 만약 탄핵이 기각되어 한국이 아시아 정치 변동의 여러 경로 중 ‘만성적 갈등 유형’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더 두렵다. 통치 과정에서 군사적 수단을 일상적으로 동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고, 이는 곧 민주주의의 명백한 궤도 이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조희연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정치 변동 유형으로 접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내가 참여했던 아시아 민주화 과정 비교 연구(<복합적 갈등 속의 아시아 민주주의>, 한울, 2008)에서 태국과 미얀마는 '만성적 갈등' 유형에 속한다고 분류되었다. 이들 국가는 특정 시기마다 정치적 역류 현상이 반복되었다. 예컨대 태국은 1970년대 군사 쿠데타 외에도 1991년, 2006년, 2014년에 쿠데타가 발생했으며, 미얀마 역시 2020년 11월 총선에서 압승한 아웅산 수치 정부가 2021년 군부 쿠데타로 전복된 바 있다. 이 쿠데타는 세계적으로 비판적 주목을 받았다.
반면, 한국은 그동안 아시아에서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나라로, 많은 아시아 민주화 활동가들이 한국의 민주화를 학습 모델이자 선망의 대상으로 여겼다. 성공회대에 재직하던 시절, '아시아 NGO대학원과정(MAINS)'에 매년 10~15명의 아시아 활동가들이 참여했는데, 한국 민주주의의 역동성을 배우는 일이 그들에게 중요한 교육 과정이었다.
선거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는 아시아의 나라들 중에서도 한국은 모범사례로 인식되었다. 예컨대 일본의 민주주의가 '수동적 안정유형'이라고 한다면, 한국은 일종의 '역동적 안정' 유형으로 평가되었다. 이는 한 정당의 장기 집권보다 정권 교체가 비교적 잦으면서도 높은 수준의 안정성과 평화적 갈등 해결 역량을 보여줬다는 의미다.
물론 이런 일반화는 위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는 만성적 갈등 유형에 빠지기보다, 격렬한 민주화 투쟁이 상시적으로 일어나면서도 헌정체제와 사법체제, 정치체제의 안정성을 유지해온 점을 세계가 높이 평가해왔다.
원래 선거 민주주의란 국민이 일정 기간 국가를 이끌 지도자를 선출해 국가의 방향을 결정하는 절차다. 이때 승자는 정파의 대표에서 국가 지도자로 자리를 옮기고, 패자는 결과를 수용한다. 승자 또한 국가를 대표한다는 인식 아래 국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과 탄핵 기각이 현실이 된다면, 지금까지 한국 민주주의가 걸어온 길과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리게 될 것이다.
12·3 비상계엄은 '윤석열의 전광훈화'라고 평가할 수 있는 사건으로서, 대통령이 의회 다수당인 야당 전체와 여당 내 반대 분파를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해 구금 또는 처단하려 시도한 사건이다. 이 시도가 실패하고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리자, 이번에는 대통령 측에서 헌법상의 비상대권을 들어 "경고성 계엄이었다"고 주장하는 형국이다.
나는 탄핵 판결의 결과 그 자체보다, 만약 탄핵이 기각되어 한국이 아시아 정치 변동의 여러 경로 중 '만성적 갈등 유형'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더 두렵다. 통치 과정에서 군사적 수단을 일상적으로 동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고, 이는 곧 민주주의의 명백한 궤도 이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탄핵 기각은 민주주의의 명백한 궤도 이탈을 공식화

▲헌재 앞 경찰저지선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선고가 임박한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 경찰의 저지선이 설치되어 있다.
이정민
사실 12·3 비상계엄 자체가 이미 '궤도 이탈'이지만, 만약 탄핵이 기각된다면 이는 그 궤도 이탈을 공식화하고 전 세계에 확인시켜주는 일이 된다. 그렇다면 각종 민주주의 지표에서 한국이 추락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실제로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2024'에서 한국은 계엄 여파로 전년 22위에서 32위로 떨어졌다. 아직 탄핵 상황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향 조정된 수치로 알려져 있다. '스웨덴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의 V-Demo 지수 역시, 2019년 한국을 18위로 평가했으나 2024년 3월 발표한 보고서에선 47위까지 떨어졌다. 이는 비상계엄 이전 상황만 반영한 결과다.
여기에 탄핵 기각과 그 이후의 혼란까지 고려한다면,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이 훨씬 더 빠르게 추락할 것임은 자명하다. 물론 지표 하락이란 통계적으로만 보면 단순한 변화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뒤따를 국가적 피해가 훨씬 더 문제다.
얼마 전 비즈니스를 하는 한 지인과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그 지인은 현재까지 한국에 투자를 하는 많은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사회가 탄핵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역량이 충분하기 때문에, '이탈(exit)'을 선택하기보다는 긍정적 관망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일 탄핵 기각이 현실화되면, 대대적으로 외국 투자 자본이 이탈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물론 상식적인 예측이 될지, 혹은 과도한 예측일지는 미래의 일이다. 더구나 그동안 한류 문화가 전 세계적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한국이 성공적인 산업화 국가인 동시에 성공적인 민주화 국가이며 민주주의 발전의 역동성과 안정성에 대한 세계적 인식이 깔려 있었다. 만약 국제 신인도가 떨어지고, 한국이 만성 갈등 국가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면, 이는 경제, 증권시장 및 한류 문화 확산에도 거대한 역풍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역동적 역량이 이번 위기에도 발휘되길

▲광화문에 등장한 '탄핵' 깃발22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16차 범시민대행진에서 '탄핵' 깃발이 입장하고 있다.
남소연
돌이켜보면, 한국은 변방의 후진국에서 서구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까지, 모방과 추격을 통해 성장해왔다. 이러한 과정은 되돌아보면 상대적으로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한 방향으로 매진하면 그에 따른 성과가 자연스럽게 뒤따랐기 때문이다. 이제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선 지금, 대한민국은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새로운 도전 앞에 서 있다.
이번 비상계엄이라는 돌출적이고 비상식적이며 반민주적인 사건이 그 단적인 예다. 대한민국이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바로 그 도전의 중심에 있다. 나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보여준 역동적 역량이 이번 위기에서도 발휘되어, 이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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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탄핵 결과 그 자체보다 더 두려운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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