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사를 총감독한 박치음 교수
오문수
우리나라의 특장의 하나는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은 평화지향성이다.
고려 때에 일본정벌군 참여는 종속 관계이던 원(元) 나라의 요구에 따른 타의의 사례에 속한다. 이런 한민족의 전통에서 박정희 정권의 베트남 파병은 크게 이질적이었다. 고려가 원제국에 의해, 박정권이 미제국에 의해 이루어진 '용병' 성격의 처지라는 자괴감은 어찌하기 어려웠다. 역사의 생체기다.
한국군은 베트남에 연인원 32만여 명이 파병되고 5천여 명의 전사자와 1만여 명의 부상자를 남겼다. 베트남군의 희생은 이보다 훨씬 많았다. 전투 상대인 군인들 뿐만이 아니었다. 80여 건의 민간인 학살 사례의 피해자 수가 9천여 명에 이른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1년 8월 23일 방한한 쩐 득 르엉 베트남 국가주석에게 "우리는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하였다. 그리고 정부지원과 민간인 도움으로 베트남 중부지방에 40개의 초등학교를 세우고 중부 5개 성에 병원을 지었다.
베트남 학살 현장에는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는 섬찍한 증오비가 서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성노예의 아픈 역사를 지닌 우리로서는 부끄럽고 참담한 역사의 한 자락이다.
베트남은 지구상에서 우리와 가장 유사한 역사를 공유한 나라이고 민족이다. 멀리는 중화주의라는 동아시아체제 속의 주변부에 있으면서 중국이라는 핵심국가와 지속적인 지배와 이에 대한 항쟁을 겪었으며, 유교와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유사한 역사궤적을 걸어왔고, 이 과정에서 각기 저항민족주의를 형성·발전시켜왔다. 곧 베트남과 조선은 서양의 근대민족주의가 형성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중앙집권적 민족통일국가를 형성해 내적으로는 민족정체성, 민족통일국가 수립 및 민족통합을 진척시켰고 외적으로는 민족자주와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전근대저항족주의의 전형을 이루었다. (주석 1)
한국에 민주화가 진척되면서 여러 분야에 걸쳐 베트남에 대한 사과와 반성, 교류와 지원이 이루어졌다. 한국 노래 운동의 1세대 싱어송라이터 박치음(국립순천대 교수)이 2001년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죄 헌정 음반인 2집 <미안해요 베트남>은 대중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왔다. 박 교수는 이 외에도 '외로운 별', '나의 별에서 너의 별까지' 등 다수의 영성 노래를 발표했다. 박치음의 '미안해요 베트남'이다.
미안해요 베트남
아름답게 만날 수도 있었을텐데
당신과 마주선 곳은 서글픈 아시아의 전쟁터
우리는 가해자로 당신은 피해자로
역사의 그늘에 내일의 꿈을 던지고
어떤 변명도 어떤 위로의 말로도
당신의 아픈 상처를 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요
그러나 두 손 모아 진정 바라는 것은
상처의 깊은 골따라 평화의 강물 흐르길
미안해요 베트남 미안해요 베트남
어둠속에서 당신이 흘린 눈물 자욱마다
어둠속에서 우리가 남긴 부끄런 흔적마다
미안해요 베트남 미안해요 베트남.
주석
1> 강정구, '미국 패권주의의 동아시아적 대안, 베트남', <황해문화>, 2002년 가을호, 73~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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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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