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아이는 조각난 세계를 삽니다 - 돌봄부터 자립까지,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이 함께 사는 법, 윤서 (지은이)
한겨레출판
상세한 의료적 정보는 작가의 땀과 눈물 값이다. 나무의 첫 발병 시 원인을 찾아 얼른 아이를 낫게 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아이의 치료를 위해 찾은 병원에서는 아이가 아니라 엄마에게 집요한 질문이 날아왔다. 엄마의 성격, 병력, 생활 및 양육 태도 등, 마치 아이의 병이 엄마가 만든 죄업이라도 되는 양 그녀를 추궁했다. 이런 식으로 의료진으로부터 다그쳐진 황당하고 불쾌한 경험은 엄마들이라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이 지경이니 작가가 아이의 병을 알아내기 위해 공부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찾아낸 나무의 병명은 카그라스 증후군이었다. 작가는 나무의 조현병 발병 원인을 뇌의 문제로 본다. 뇌의 기능이 교란되며 문제를 일으키면서 조현 증상이 발현됐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무가 첫 증상을 보였던 초등 6년생 때까지, 아이는 잘 놀고 잘 먹고 공부도 운동도 잘하는 보통의 아이였다.
나무의 경우처럼 조현병이 뇌의 병이라는 의료적 접근과 다른 경험도 있다. 뇌의 문제가 앞서 발생해 조현 증상을 발현시킨 것아 아니라, 원인이 된 충격적 사건이나 누적된 폭력이 먼저 있는 경우다. 물론 후자의 경우라도 사건 이후 뇌에는 문제가 생긴다.
책 <나는 숨지 않는다>에서 조현병을 앓고 있는 묘현의 경우가 그렇다. 그녀는 성폭력을 겪은 후 충격과 고통을 누구에게도 토로하지 못한 채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환청을 겪으며 조현병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심각함을 감지하고 스스로 찾아간 병원에서 병증을 조기에 치료하면서 완화시킬 수 있었다. 어려움은 있었지만 지금은 보통 사람처럼 직장을 다니며 아이를 키우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조현병의 경험으로 미루어, 조현병이 '뇌의 질환'만 강조하게 될 때 사회 구조적 문제가 만드는 개인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조현병과 무관한 증상으로 간주하게 될 우를 경계했다.
조현병은 완치가 어렵지만 그렇다고 일상을 유지할 수 없는 병은 아니다. 이 명백한 사실을 묘현과 나무가 보여주고 있다. 나무 역시 쉽지 않았지만 18년간 병과 함께하며 학교를 다니고, 친구를 사귀고, 좋아하는 일상을 즐기고, 할 수 있는 일을 해내고 살아왔다.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지 못할 낯설고 무서운 조현병 환자가 아니라 평범하게 아픈 이웃으로서 말이다.
그가 보통의 어른이 되기까지 그에게 필요한 건 가족의 지지와 사랑만이 아니었다. 아픈 그의 존재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사회적 환대와 조력이 절실했다. 나무에겐 그의 투병과 성장을 지켜본 좋은 친구들과 선생님과 이웃이 있었다. 조현병자도 일이 필요하고 동료가 필요한 사회적 인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있다.
조금 취약한 타인을 돌보는 일은 결국 또 다른 누군가를 돌보는 마음으로 번져가며 조금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모두가 취약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사회적 상호 돌봄이라는 자장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더 안전할 수 있다.
내 아이는 조각난 세계를 삽니다 - 돌봄부터 자립까지,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이 함께 사는 법
윤서 (지은이),
한겨레출판,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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