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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5.03.27 15:53수정 2025.03.2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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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22일 토요일 오후 2시, 순창군 풍산면 유정마을 이충영씨 집 앞에서 '응답하라 1999' 행사가 열렸다.
최육상
"농민, 학생 하나 되어 농민 세상 앞당기자!"
1999년 여름, 서울여대 20대 학생들이 전북 순창군에서 농촌 봉사활동을 하며 외쳤던 구호다. 26년이 흐른 2025년 3월 22일, 중년이 된 그 학생들이 순창군에 모여 똑같은 구호를 외쳤다. 이들이 순창군을 다시 찾아 '농민 세상'을 외친 이유는 무얼까?
햇볕이 따스하던 지난 3월 22일 토요일 오후 2시, 순창군 풍산면 유정마을 이충영씨 집 앞. 마을 길이 지나는 집 밖 담벼락에는 색이 바랜 농악대 모습과 한자로 된 '농자천하지대~' 글자가 희미하게 그려져 있었다. 빛이 바래고 희미해진 그림과는 달리 벽화 오른쪽 아래에 쓰인 '99 여름 서울여대 농활대' 글자만큼은 유독 선명했다.
'99 여름 서울여대 농활대' 주인공 수소문

▲ 농민학생 연대활동 ‘응답하라 1999’
최육상
지난해, 순창군농민회와 순창군여성농민회는 '99' 숫자를 바탕으로, 1999년 벽화를 그렸던 서울여대 농활대를 수소문했다. 다행히 농민회 청년이 당시 농활대 학생과 연락이 닿았고, 농활대였던 몇 명이 지난해 9월 순창군을 방문했다. 이들은 빛바랜 벽화를 확인하고, 자신들이 그린 건 아니지만 2025년 봄에 벽화를 복원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후 '99~' 글자를 직접 썼던 주인공을 찾아냈다.
이날 벽화복원 행사는 '응답하라 1999'라는 이름으로 진행됐다. 행사에는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서울여대에 입학했던 여섯 명이 참가했다. '99~' 글자를 쓴 학생은 1998년 입학한 막내로, 일행 중 유일하게 '풍산면'에서 농활을 하며 벽화를 그린 주인공이었다.
농활대 학생이던 중년들과 농민회원, 주민들은 길놀이 풍물 공연에 이어 '농민가'를 부르고, "농자천하지대본!", "농민, 학생 하나 되어 농민 세상 앞당기자!"라는 구호를 합창하며 26년 전 농민-학생 연대활동을 재현했다.
"'내란수괴 윤석열' 수십년 전 과거로 퇴행"
한 농민회원은 "행사 날짜를 잡은 오늘까지 '내란수괴 윤석열 파면' 결정이 나오지 않을 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라며 "행사로 인해 토요일 오후 서울에서 열리는 '윤석열 파면' 시위에 참석하지 못하게 됐지만, 목숨으로 지켜온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짓밟고 유린한 윤석열과 그 패거리들의 처단을 위해서라도 행사를 힘차게 진행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 ‘윤석열 처단’ 깃발을 대문에 건 집주인이 “윤석열을 파면시키고 농민 세상을 앞당겼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최육상
농민회원인 집주인 이충영씨는 "평생 농사밖에 모르고 살았는데, 먹고 사는 게 힘든 건 그렇다 쳐도, 지금 '내란수괴 윤석열' 때문에 나라가 수십 년 전 과거로 돌아간 것 같아 정말 울화통이 터진다"라며 "(26년 전)그때 농활 와서 고된 농사일을 도와줬던 학생들이 의젓한 중년이 돼 다시 만나니 고맙고, 든든한 마음이 든다"라고 말했다. 이어 "어서 빨리 윤석열을 파면시키고 함께 힘을 합쳐 농민 세상을 앞당겼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마을 어르신들과 참석자들은 농민회가 준비한 부침개와 돼지고기, 김치 등에 막걸리를 한 잔씩 주고받으며 서울여대 농활대를 포함한 청년들이 벽화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 ‘응답하라 1999’ 벽화복원 행사는 마을 잔치로 열렸다.
최육상
벽화 속 만장의 '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本은 숨어있음) 글자 복원은 '농민'인 풍산면 용내리 주민이 담당해 의미를 더했다. 안타깝게도 집주인은 건강이 좋지 않아 사다리에 오를 수 없어 작업에 동참하지는 못했다.
26년 전 외쳤던 "농민 세상 앞당기자"
복원된 벽화 '99 여름 서울여대 농활대' 글자 아래에 '2025년 3월 22일 복원'이라는 새로운 문구가 쓰였다. 벽화 왼쪽 아래에는 '한국외대 민주동문회' 문구도 새롭게 새겨졌다. 한국외대 농활대도 순창군 다른 면에서 농활을 했었는데, 이날 벽화복원에 함께 했다.
농활대 학생이던 이들은 과거를 회상하며 "농활이 가장 활성화됐던 시기가 1998, 1999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시엔 농활대 학생들이 마을회관에서 지내며 '푸세식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면서 "그때 시골농촌에서 처음 농활하던 여학생들에게 푸세식 화장실이 곤욕스러웠던 건 맞지만, 봉사활동 의지로 극복했던 기억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참가자는 "우리는 26년 전 정치적인 이념을 떠나 순수한 마음으로 농촌 봉사활동을 하며 '농민 세상 앞당기자'고 외쳤었다"면서 "그런데, 아직도 벼농사를 짓고는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는,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나빠진 듯한 농촌 현실을 보면서 정말 무거운 마음이 든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강산도 바뀌었을 30년 가까운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우리 자녀가 '키세스' 시위를 하며 '내란수괴 윤석열 파면'을 요구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 중년이 된 이들이 26년 전 벽화를 복원하고 있다.
최육상

▲ ‘99 여름 서울여대 농활대’ 글자를 썼던 주인공이 어느덧 중년이 돼 벽화복원 작업에 참여했다.
최육상
'99' 글자를 쓴 주인공은 유정마을을 둘러본 후 "마을 길이나 집들, 논밭 풍경은 예전 그대로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곁에 있던 선배는 "그때 농활을 오면 반겨주시는 청년 농민들과 주민들이 많이 계셨는데…, 집주인분도 그렇고 주민들 모두 연세가 많은 어르신으로 변한 걸 보니, 고령화된 농촌 현실이 얼마나 어려울지 짐작이 된다"라고 말했다.
"농민 생존권 지키는 세상 만들자"
행사를 마치며 한 순창군민이 "앞으로 30년 후, 서울여대 농활대 학생들이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도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또다시 복원행사를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그러자, 다른 순창군민은 벽화를 바라보며 독백하듯 나지막이 읊조렸다.
"저 담벼락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집주인께서 돌아가시면 쓰러질 텐데… 고령자와 독거노인만 늘어가고… 일할 청년은 없고… 자꾸 소멸해가는 농촌 현실에서 '농자천하지대본' 벽화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한 농민회원은 "유정마을의 낡은 벽화를 볼 때마다 왜소해지는 농촌의 현 상황을 나타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라며 "마침 서울여대 농활대 출신 민주시민들이 뜻을 같이 해줘서 낡았지만 소중한 벽화를 되살렸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내란수괴 윤석열을 하루빨리 끌어내리고, 식량 생산 주체인 농민들의 생존권을 지킬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벽화 복원 전 담벼락(위)과, 26년 만에 벽화를 복원한 서울여대 농활대 여섯 명.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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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9... 26년 만에 복원된 순창 유정마을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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