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틈을 내는 철학책> (황진규) 인간의 폭력의 기원, 신체 - "인간은 존재 자체가 이미 폭력이다"
이윤정
인간은 필연적으로 타인의 죽음을 통해서만 살아갈 수 있다는 근본적인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자명한 폭력만이 존재하며 구분할 수 있다고 착각하며 말이다. 그렇다면 폭력으로부터의 근본적인 도피를 위해서는 죽음밖에 없는 건가? 다행히 메를로퐁티는 해법을 제시해 주었다.
메를로퐁티는 폭력 그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다. 그것은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삶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중략) 인간에게 폭력은 숙명이다. 그래서 우리는 "순진무구함(비폭력)과 폭력"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폭력의 종류를 선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해야 할 폭력은 어떤 종류의 폭력일까? 두 가지 폭력을 선택해야 한다. '더 작은 폭력'과 '인간적인 폭력'. 이 두 가지 폭력이 우리를 조금 더 기쁜 삶으로 안내할 폭력이다.
<틈을 내는 철학책>(황진규) p. 176
'더 작은 폭력'으로 눈길이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황진규는 '조금 더 적게 삼겹살을 먹는 것 혹은 남기지 않을 만큼 삼겹살을 주문하는 것'이라고 쉬운 방법을 제시한다. 감사히 먹고,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은 매우 훌륭한 실천 전략이다.
'인간적인 폭력'은 부당한 지시와 폭력에 저항하는 대안적인 폭력을 말한다. 오히려 부당한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저항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공모자가 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건강한 부채감'
"우리가 신체를 가지고 있는 한 폭력은 숙명이다." 즉, '나는 존재 자체가 폭력이다.' 메를로퐁티의 이 짧은 말에 모든 답이 있다. 이 삶의 진실을 아프게 자각할 때, 건강한 부채감과 부단한 자기성찰의 틈이 열린다. 건강한 부채감을 기꺼이 껴안고 자기성찰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타자들을 섬세하게 대하며 최대한 '더 작은 폭력'과 '인간적인 폭력'을 행사하려고 애를 쓰며 살아갈 수 있다.
<틈을 내는 철학책>(황진규) p. 181
점심으로는 돈가스를 먹었다. 왕 돈가스 크기에 맞게 푸짐하게 나온 음식을 다 먹지 못했다. 내가 남긴 접시에서 벼의 죽음, 옥수수의 죽음, 양배추의 죽음, 돼지의 죽음이 보였다.
나는 조용히 '더 작은 폭력'을 떠올리며 남은 음식을 싸서 식당을 나왔다. 그리고 나의 생활에서도 철학의 틈이 한 뼘 생겼다고 '의미 부여'를 하자 조금은 기쁜 마음이 들었다.
틈을 내는 철학책 - 삶의 궤도를 바꾸는 전방위적 철학 훈련
황진규 (지은이),
철학흥신소,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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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죽음을 취해야만 하는 인간, 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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