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목줄 없는 개를 만든 인간들

[아동 문학을 읽는 즐거움] 생명 존중과 동물권에 관한 경고, 조원희 <들개>

등록 2025.03.31 21:18수정 2025.03.31 21:18
0
원고료로 응원
우수한 아동 문학을 소개합니다. 어른에게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아동 문학을 통해 우리 아동 문학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문학 속에 깃든 아이들의 마음과 어른의 모습을 들여다 봅니다.[기자말]
문학 작품의 의미는 독자에게 미학적 감동을 주며,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삶의 진실들을 마주하게 하는 데 있다. 그래서 좋은 문학 작품 앞에서 독자들은 코끝이 찡하고 가슴이 시린 감동을 한다. 누군가 들려주는 어쭙잖은 교훈 한 마디보다 마음을 울린 책의 글귀가 인생을 더 성찰하게 하고, 삶의 방향까지 바뀌게 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아동 문학도 다르지 않다. 아니, 더 쉽게 독자의 마음을 건드린다. 어린 독자의 맑고 깨끗한 마음에 동화가 삶을 그리고, 동시가 감성을 뿌리게 되는 것이다. 아동 문학을 읽는 어른 독자 역시 무방비 상태가 된다. 어떠한 지식에 대한 탐구도 해석적 노력도 필요 없이,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책장을 열게 되고, 그러다 훅 들어온 감동에 속절 없이 당하게 된다.


작품이 '그림책'일 때는 조금 더 그렇다. 그림이 주는 감동이, 글과 그림의 절묘한 조화가, 힘들이지 않아도 생각과 마음을 건드리며 오감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글 없는 그림책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온전히 그림으로 독자를 맞이한다. 독자는 그림책을 감각적으로 만나고 예술의 즐거움을 향유하고 다가오는 메시지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면 된다. 그것이 무엇이든 삶의 한 조각으로 맞이하면 되는 것이다.

176쪽 그림책의 서사의 힘

 들개 LOB 4, 조원희(지은이)
들개 LOB 4, 조원희(지은이)

디픽투스(dPICTUS)는 전 세계 그림책 출판 관계자들이 신진 작가와 새로운 작품을 발굴하고 교류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독창적이고 예술성이 뛰어난 그림책이 세계 시장에 더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세계적인 그림책 평론가 12명이 해마다 최고의 그림책 100권을 선정하는데 '2025년 우수 그림책'의 하나로 대한민국 작가 조원희의 <들개>가 선정되었다(오는 3월 31일부터 4월 3일까지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열리는 '볼로냐 아동 도서전'에 전시될 예정이다).

조원희의 작품은 늘 세상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그저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울리는 감동과 메시지를 느끼게 한다. <들개>역시 그런 작품이다. 좋은 예술 작품이자 문학 작품의 요소를 충분히 갖춘 셈이다. 무려 176쪽이나 되는 이 글 없는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독자도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면서 마치 소리를 입힌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온라인 서점에서 이 책의 분류는 그래픽 노블,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화집 등으로 되어 있다. 대부분의 그림책을 검색할 수 있는 '유아' 분류에서는 검색조차 되지 않는다. 책을 출간한 출판사의 고뇌가 묻어있는 대목이다. 주제가 철학적이거나 어른을 겨냥하였어도 대부분의 그림책이 '유아', '그림책', '100세 그림책' 등의 분류에서 만날 수 있는 것에 비하면 의외의 선택이다.

그림책 작가와 그림책을 출간한 출판사에 딴지를 걸자는 건 아니지만, 이 분류가 못내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마치 '전체 이용가' 할 수 있는 책을 '15세 이상' 딱지를 붙인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또, 작품의 예술성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나 수긍할 수밖에 없다.


이야기는 제목에서 이미 알 수 있듯이 동물권에 관한 현실을 보여준다. 펫숍에서 인간의 품으로 가게 된, 주인의 즐거움이었던 강아지가 어떻게 버려지고 들개가 되어야만 했는지 그 과정이 낱낱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림책 속 반려견의 시선이 되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파렴치한지, 얼마나 뻔뻔하고 잔인한지를 가슴 저리도록 느낄 수 있다. 그저 그림을 따라가기만 하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는 어렵지 않은 서사다. 아이들이 보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흐름이며, 현실적인 그림이다.

단순함 속에 담긴 반려견의 절절한 마음을 담은 조원희 작가의 감각적 표현이 어른과 아이를 따지지 않고 소중한 생명에 대한 미안함을 느끼게 한다.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어른의 모습을 들킨 것 같기도 하다.

길들여짐과 길들여짐의 위험에 관해

 들개, 조원희(지은이)
들개, 조원희(지은이)

인간은 원하는 동물을 원하는 모습으로 교배하여 만들어내고, 그 생명을 사고판다. 사들인 동물과 적당히 즐기다가 낡은 물건을 버리듯 쉽게 버리기도 한다. 입양과 유기가 일상처럼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기에, 동물 보호소에는 안락사의 위기에 처한 동물들이 넘쳐난다고 한다.

그림책의 첫 흐름 역시, 사고 놀다가 버리는 입양과 유기의 장면들이다. 버려진 아이는 여전히 인간을 믿는다. 다시 인간의 호의에 속아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그렇게 인간의 호의에서 다정함이 아니라 두려움을 느껴야 했을 그 아이는 인간에게서 멀어져 들개가 된다.

길들여짐은 믿음이다. 인간을 믿었기에 인간의 손에 자신의 생명까지 맡기는 것이 반려동물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믿음에 동요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소유욕을 채우고, 필요가 사라졌을 때는 가차 없이 버린다. 생명이 없는 물건처럼 버려지는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버려진 반려견들은 살아남기 위해 야생성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숲에서 동물들을 사냥하고 배가 고프면 인간의 농장에 동물들을 사냥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끼를 낳고 본능의 삶을 살아간다. 유해 동물이 되어 인간의 적이 된다.

인간은 길들인 동물에 관해 잘 안다. 그래서 길들인 동물의 약점에 관해서도 잘 안다. 들개들이 닭이든 무엇이든 인간의 소유물을 뺏어가면 그들을 잡아 복수할 방법도 완벽하게 안다. 새끼들을 살리기 위해 먹을 것을 구하러 갔던 들개는 새끼를 미끼로 잡은 인간에게 잡힐 위험에 처한다. 가장 졸렬한 방법, 새끼를 잡아 어미까지 잡아들이는 인간의 모습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검은 실루엣으로만 표현된 인간의 모습들이 마치 죽음의 사자들 같다. 이미 도시 괴담이나 시골 공포가 되어버린 들개들의 이야기보다 더 서늘한 것은 마음껏 길들이고, 마음껏 버리는 인간들의 모습이다. 무해했던 생명이 길들여지고 버려져 유해 동물 낙인이 찍히는 현실은 그들이 아니라 오직 인간의 탓인 것이다.

파랑을 버리다

 들개, 조원희(지은이)
들개, 조원희(지은이)

그림책의 표지는 온통 파랑이다. 앞표지에 달리는 작은 개 한 마리가 있을 뿐, 앞뒤 모두 파랗다. 조원희 작가는 파랑을 많이 사용한다. 그의 전작들에도 파랑은 늘 그의 색이다. '인사이드 아웃'의 '슬픔이'가 파랑이고, 흔히 우울증을 표현할 때 '블루'로 표현되는 것처럼 이 책에서도 파랑은 부정적 색깔이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파랑의 이미지는 '속박'이다. 인간이 주는 먹이통도 파랑, 펫숍의 간판도 파랑, 인간의 모자와 가방도 파랑이다. 같이 놀자고 인간이 굴려주는 공조차도 파랑이다. 인간이 채워준 목줄도 파랑, 배고픔에 지쳐 음식물 쓰레기 앞을 전전할 때 쫓아내는 인간의 빗자루도 파랑이다. 주인에게 버려진 그 아이를 유혹하여 잡아가려는 올가미도 파랑, 새끼를 가둔 철장도 파랑, 도망가는 들개를 잡으려는 그물도 파랑이다.

버려져 들개가 되었던 그 아이는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마침내 인간이 채워준 파란 목줄을 끊는다. 목줄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영역으로 달린다. 인간에게 느꼈던 일말의 사랑과 믿음이 모두 끊어지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시원하게 끊겨버린 목줄 앞에서 미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파랑을 버려야 진정한 삶을 찾는 들개,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집으로 불러들이는 반려동물들은 인간의 집에서 과연 행복할까? 파랑을 버려야만 행복해지는 건 아닐까? 잠시 생각이 깊어진다.

아동문학과 성인 문학의 경계

문학의 경계는 항상 모호하다. 작가와 출판사의 결정이 아동 문학이 되고, 청소년 문학이 되고, 일반 문학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 설정이 때로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이런 책을 읽혀도 되는 것인가' 이슈가 되는 책이 생기기도 하고, 어른이 더 감동을 받는 아동 문학이 생기기도 한다.

학자들이 아동 문학과 일반 문학의 차이로 꼽는 뚜렷한 특징은 내포 독자의 한정이다. 작가가 어린 독자들을 겨냥하고 글을 썼고, 등장인물 대부분이 아동이며, 공간적 배경 역시 아동이 속한 학교나 놀이터 등이 주요 공간이라면 아동 문학으로 결정한다.

표현 방식도 당연히 조금 다르다. 어린 독자들을 위해 문장의 길이나 단어 선택 서술 방식도 쉽고 편하게 설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설정이 성인 독자의 접근을 막을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이미 많은 아동 문학들이 성인의 손에 들려 읽혀지고 일반 문학보다 더 큰 감동을 주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이 옛날보다 조금 더 현실과 가까워지고 신랄해졌다는 방증이 되기도 할 것이다.

아동 문학을 읽는 어른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만날 세상이 어떤지, 아이들이 느끼는 세상이 어떤지, 대체 어른인 우리들이 만든 세상이 어떤 꼴인지, 아이들과 함께 느끼고 알아갔으면 좋겠다.

들개

조원희 (지은이),
롭, 2024


#조원희 #들개 #생명존중 #동물권 #아동문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박근혜 팔아 돈 벌더니 집 가압류?"... 가세연의 '비정한 애국' "박근혜 팔아 돈 벌더니 집 가압류?"... 가세연의 '비정한 애국'
  2. 2 이 대통령 "나를 엮어보겠다고 녹취록 변조까지 하더니" 이 대통령 "나를 엮어보겠다고 녹취록 변조까지 하더니"
  3. 3 태어나보니 백기완 손주였다 태어나보니 백기완 손주였다
  4. 4 각 잡고 만든 대작, 복수극 좋아하면 참기 힘들 겁니다 각 잡고 만든 대작, 복수극 좋아하면 참기 힘들 겁니다
  5. 5 공소기각에 환히 웃은 곽상도 "난 피해자, 그만 좀 괴롭혀라" 공소기각에 환히 웃은 곽상도 "난 피해자, 그만 좀 괴롭혀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