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이 고른 숫자, 서른하나. 케이크 위 초는 조용히 타올랐다.
심은혜
가볍게 던진 말이었다. 그런데 아버님은 망설임도 없이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서른 하나. 너를 낳았던 해."
순간, 말이 잠시 멈췄다. 그 말은 케이크 위에 꽂은 초보다 훨씬 따뜻하고 환했다.
어떤 말은, 듣는 순간 마음 깊이 오래 남는다.
아버님의 그 한 마디가 그랬다.
어느 순간은, 시간이 흘러도 마음에 그대로 남는다.
아버님에겐 첫 아이를 처음 품에 안았던 그 순간이 그랬다.
팔순을 앞둔 아버님이 고른 가장 살고 싶은 해는, 서른하나.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그 안엔 젊음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무언가 아주 특별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남편이 웃으며 물었다.
"아빠, 동생도 있는데 섭섭해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세요."
아버님은 조용히, 그러나 단단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무리 그래도, 첫아이 낳던 해하고는 다르지."
그 말엔, 아버지로 처음 살아낸 시간들이 담겨 있었다. 누군가의 아들이자 남편이었던 남자가, 처음으로 '아버지'라는 이름을 품었던 해. 기쁨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시간.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인 채, 묵직하게 시작되었을 그 시절.
아버님은 1947년생. 그 시대를 생각하면 결혼이 이른 편은 아니었다. 지금보다 모든 것이 부족했고,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시절. 남들보다 늦게 품에 안은 첫아기였기에 그 해는 더 특별했고, 더 선명하게 마음에 남았을 것이다.
기회가 되면 물어보세요
아버님은 종종 말씀하신다.
"명절 때 이렇게 모여 앉아 맛있는 거 먹으며 얘기하는 지금이 제일 좋아. 무탈한 게 제일이야."
젊은 날의 꿈이나 성취보다 지금 이 순간의 평온함이 더 귀하다는 것을 아버님은 이미 오래전에 알아차리셨던 것 같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무탈함'이란 얼마나 많은 고단함과 성실한 날들 위에 놓인 선물인지. 그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 건, 아버지로서 살아온 긴 시간의 무게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날, 케이크 위에 하나씩 꽂은 초들이 조용히 타올랐다. '서른 하나'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그 시절로 향했다. 초를 바라보며, 나 역시 첫아이를 안았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요즘 아버님이 자주 하는 말씀은, 아파서 애들에게 고생시키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날 아버님이 고른 '서른 하나'는 가장 힘있고, 가장 사랑이 컸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처럼, 아버님의 몸과 마음이 오래도록 따뜻했으면 좋겠다.
당신의 부모님는 어떤 순간을 가장 살고 싶어했을까요?
물어볼 수 있다면, 꼭 물어보세요.
그 대답은 생각보다 오래, 마음 깊은 곳에 남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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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터울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마음이 닿는 순간, 글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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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생 시아버지가 가장 살고 싶은 나이는 서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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