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층 개별 면담에서는 장소를 최대한 안정감 있고 밝은 곳으로 선정했고 피해자측 변호인, 조사관 2인, 심리전문가가 조사에 참여했고, 피해자와 라포가 형성된 다큐감독이 촬영을 담당해 피해자에게 촬영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하려했다. 촬영의 목적은 ① 피해자가 같은 고통을 반복해서 말하지 않도록, 진술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이는 기억을 보존하고, 동시에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다 ② 조사 이후, 일부 가해기관은 진술이 조작됐거나 피해자에게 악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상 기록은 그 주장의 신빙성을 반박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김진희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묻고 있는가
호주는 아동 성폭력 피해를 조사하기 위해 '왕립위원회(Royal Commission)'를 설치했다. 그들은 진술을 받는다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다시 질문했다. 진술 전에는 상담이 있었고, 진술 중에는 심리적 동행이 있었으며, 진술 후에는 치유를 위한 연계가 이어졌다. 증언이 다시는 상처가 되지 않도록, 철저히 피해자의 리듬에 맞춘 조사를 설계했다. 모든 조사관은 트라우마 인식 기반 교육을 이수했고, 피해자의 이야기에 개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뉴질랜드와 캐나다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피해자의 증언을 단지 '기억'이 아니라 '공공 기록'으로 간주했고, 국가가 먼저 움직이는 직권조사 방식을 택했다. 이는 단순한 절차의 문제가 아니었다. 국가가 가해자였음을 인정한 사회에서만 가능한 윤리적 선택이었다. 신청주의가 아닌 책임주의, 이것이 그들이 만든 새로운 규범이었다.
이러한 방식이 가능했던 이유는 제도 그 자체보다는 태도에 있었다. 이들 국가는 기억을 기술이 아닌 윤리의 문제로 다루었다. '기억은 공공재'라는 사회적 합의, 그리고 그 기억에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에 대한 공동체의 태도. 질문을 던지는 방식, 말을 듣는 방식, 침묵을 다루는 방식, 그 다정한 태도가 결국 제도를 만들었다.
우리는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
한국의 구조는 피해자에게 스스로를 입증하라고 요구한다. 신청서를 쓰는 것에서부터 법정에서의 반복 진술까지, 피해자는 언제나 '증명하는 사람'으로 호출된다. 국가는 단 한 번도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다. 피해자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진실이 아니라, 책임을.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은 단순히 기구의 존속 여부가 아니다. 필요한 건, 상설조직이 아니라 다정한 정부기구다. 피해자를 다시 불러내는 기계적 절차가 아니라, 그들을 존엄하게 초대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조사란 이름의 시스템이 고통을 반복시키는 장치가 아니라, 회복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조사관은 청문인이 아니라 동행자여야 하고, 조사는 고백이 아니라 연대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간 다양한 방식을 시도해왔다. 단체진술, 개별심층면담, 심리전문가의 개입까지. 그러나 아직도 이것이 '정답'이라 말하긴 어렵다. 우리가 찾아야 할 건 정답이라기보다 함께 질문하는 방식이다. 피해자, 실무자, 전문가가 손을 맞잡고, 더 나은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정답은 완성이 아니라 과정이다.
이제 우리는 피해자의 말을 듣는 것을 넘어서, 국가의 말하기를 요구해야 한다. 침묵은 언제나 가해자의 언어였다.
*필자인 김진희는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수용시설 인권침해를 담당했던 조사관이며 현재 선감학원피해자협의회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 조사 과정을 피해자의 회복 과정으로 다시 설계했을 때, 그들의 얼굴에 번졌던 미소는 말보다 먼저 회복을 증명했다. 그것은 꽃보다 환했고, 오래 억눌렸던 삶의 빛이 처음으로 얼굴 위에 떠오른 순간이었다.
김진희

▲ 피해자를 ‘적극 민원인’이 아니라,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 존중받아야 할 사회의 어른으로 대했을 때, 그들은 스스로의 상처를 돌보고 더 멀리 나아갔다.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생존자들은 진실규명 이후 한글교육을 받으며 이름 석 자를 또렷이 써내려갔고, 트라우마 센터의 상담을 통해 고통에 이름을 붙였으며, 선감인권상을 제정하고 정기 학술대회를 여는 등 이제는 스스로를 치유하고 사회에 목소리를 건네는 ‘존엄한 주체’로 서고 있다.
김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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