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묻는 방식은 어떠해야 하는가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 조사의 전환을 위하여

등록 2025.04.01 10:19수정 2025.04.0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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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처음 집단수용시설 조사 업무를 맡았을 때, 나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조사 과정에서 마주한 것은 과거에 갇힌 사람들이 아니라, 그 상처로 인해 현재도 무너져 내리는 사람들이었다. 문제는 조사를 통해 이들이 과거의 고통을 다시 겪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조직은 그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나는 그 고통에 대해 너무도 무지했다.

조사 방식, 법령 안에 구조화된 행정 편의주의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시행령'에 따라 이루어진다. 시행령 제3조는 진실규명 신청이 신청주의에 따라 이루어져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피해자가 스스로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거나, 구술로 신청할 경우 위원회가 조서를 작성한다. 이는 국가가 직권으로 나서는 방식보다 피해자가 스스로 국가폭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구조다. 직권조사는 가능하다고 법에 명시돼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또한 시행령 제7조 제2항은 "조사대상자 및 참고인에 대한 진술청취는 위원회의 사무실에서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제3의 장소에서 조사를 진행하려면 반드시 위원회 의결을 받아야 한다. 접근성과 정서적 안전보다 행정적 절차와 통제가 우선되도록 설계된 구조다. 지방 거주자, 고령자, 문해력이 낮은 피해자들에게 '서울'은 너무 멀었고, 좁고 닫힌 조사실은 그들에게 또 하나의 수용시설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피해자 조사를 담당한 조사관들은 사전에 심리나 인권에 대한 어떤 교육도 받지 않았다. 대부분은 수사기관의 조사 방식에 익숙한 채 현장에 투입되었다. 피해자의 언어는 오랫동안 억눌려 있다가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말이었다. 그 말 앞에 훈련되지 않은 질문이 무례하게 개입할 때, 피해자는 회복되기는커녕 다시 부서질 수도 있었다.

내가 맡았던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은 피해신청이 260건이 넘는 집단수용시설 사건이었다. 조사 초기, 오랜 시간 수용시설 피해를 연구해온 한 전문가는 단체진술 방식을 제안했다. 그는 피해자들과 라포를 형성해온 명망 높은 전문가였고, 조직은 그 제안을 따르기를 원했다. 나는 고민했지만 내 방식보다는 전문가의 방식을 믿었다. 그가 권한 것은 20명에서 30명씩 묶어 한꺼번에 조사하는 방식이었으나 최대 4인까지만 조사하는 것으로 조정했고, 동의하지 않은 이들은 단독 조사로 진행했다. 그것이 내가 피해자들께 드릴 수 있었던 유일한 타협이자, 지금도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작고 불완전한 변명이다. 내 선택에 대한 유일하고 불완전한 설명일 뿐이다.

우리는 누구를 위한 전문가였을까. 피해자를 위한 것이라 믿었지만, 어쩌면 스스로를 위한 전문성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오랜 시간 피해자들과의 신뢰를 쌓아왔지만, 그것이 곧 진실에 도달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그때 나는 몰랐다. 단체진술이 피해자에게는 또 다른 방식의 침묵일 수 있다는 것을. 한 사람의 고통이 다수의 말 속에서 희석될 때, 고통은 증언이 아니라 통계가 된다. 삶에서 가장 어두운 순간을 타인 앞에 꺼내는 일은, 단지 말하는 것만으로는 치유되지 않는다. 그 과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피해자들의 동의를 구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내 양심을 지키기 위한 아주 얇은 보호막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보호막이 사라졌을 때, 나는 질문을 바꾸기 시작했다.


피해자 중심으로의 전환, 그 필연적 요청

뒤늦게 우리는 조사라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선감학원 조사를 전환점 삼아, 우리는 피해자 심리안정 프로그램을 구축했고 조사관도 가능한 2인 1조로 편성했다. 한 명은 피해자와 깊이 있는 소통을 하고, 다른 한 명은 정서 반응을 관찰하며 조사 흐름을 조절했다. 조사관은 듣는 이가 되고, 질문은 수단이 아니라 공감의 형식이 되는 조사를 기획했다.

서울시립여성수용시설의 조사에서는 이보다 더 정밀한 접근이 필요했다. 피해자 대부분이 40년 이상 장기 수용되어 있었고, 그중 상당수는 가족관계가 단절된 상태였다. '피해자'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받아들이기까지도 시간이 필요했다. 조사 초입에는 집단면담 방식을 도입해 상호 신뢰를 확보했고, 이후 개별 면담으로 넘어갔다. 심리전문가가 면담을 주도하고, 인지선별검사와 상태 진단을 병행했다. 조사는 단순히 진술을 얻는 과정이 아니라, 과거를 회복 가능한 서사로 재구성하는 과정이 되었다.

 심리전문가, 3년간 동일시설에서 다큐를 찍은 다큐감독, 국가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 연구자들과 조사방식을 논의하고 설계하였다. 조사에는 심리전문가가 동행해 피해자와 조사자의 심리적 안정을 도모했다.
심리전문가, 3년간 동일시설에서 다큐를 찍은 다큐감독, 국가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 연구자들과 조사방식을 논의하고 설계하였다. 조사에는 심리전문가가 동행해 피해자와 조사자의 심리적 안정을 도모했다. 김진희
 심층 개별 면담에서는 장소를 최대한 안정감 있고 밝은 곳으로 선정했고 피해자측 변호인, 조사관 2인, 심리전문가가 조사에 참여했고, 피해자와 라포가 형성된 다큐감독이 촬영을 담당해 피해자에게 촬영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하려했다. 촬영의 목적은 ① 피해자가 같은 고통을 반복해서 말하지 않도록, 진술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이는 기억을 보존하고, 동시에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다 ② 조사 이후, 일부 가해기관은 진술이 조작됐거나 피해자에게 악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상 기록은 그 주장의 신빙성을 반박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심층 개별 면담에서는 장소를 최대한 안정감 있고 밝은 곳으로 선정했고 피해자측 변호인, 조사관 2인, 심리전문가가 조사에 참여했고, 피해자와 라포가 형성된 다큐감독이 촬영을 담당해 피해자에게 촬영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하려했다. 촬영의 목적은 ① 피해자가 같은 고통을 반복해서 말하지 않도록, 진술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이는 기억을 보존하고, 동시에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다 ② 조사 이후, 일부 가해기관은 진술이 조작됐거나 피해자에게 악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상 기록은 그 주장의 신빙성을 반박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김진희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묻고 있는가

호주는 아동 성폭력 피해를 조사하기 위해 '왕립위원회(Royal Commission)'를 설치했다. 그들은 진술을 받는다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다시 질문했다. 진술 전에는 상담이 있었고, 진술 중에는 심리적 동행이 있었으며, 진술 후에는 치유를 위한 연계가 이어졌다. 증언이 다시는 상처가 되지 않도록, 철저히 피해자의 리듬에 맞춘 조사를 설계했다. 모든 조사관은 트라우마 인식 기반 교육을 이수했고, 피해자의 이야기에 개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뉴질랜드와 캐나다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피해자의 증언을 단지 '기억'이 아니라 '공공 기록'으로 간주했고, 국가가 먼저 움직이는 직권조사 방식을 택했다. 이는 단순한 절차의 문제가 아니었다. 국가가 가해자였음을 인정한 사회에서만 가능한 윤리적 선택이었다. 신청주의가 아닌 책임주의, 이것이 그들이 만든 새로운 규범이었다.

이러한 방식이 가능했던 이유는 제도 그 자체보다는 태도에 있었다. 이들 국가는 기억을 기술이 아닌 윤리의 문제로 다루었다. '기억은 공공재'라는 사회적 합의, 그리고 그 기억에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에 대한 공동체의 태도. 질문을 던지는 방식, 말을 듣는 방식, 침묵을 다루는 방식, 그 다정한 태도가 결국 제도를 만들었다.

우리는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

한국의 구조는 피해자에게 스스로를 입증하라고 요구한다. 신청서를 쓰는 것에서부터 법정에서의 반복 진술까지, 피해자는 언제나 '증명하는 사람'으로 호출된다. 국가는 단 한 번도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다. 피해자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진실이 아니라, 책임을.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은 단순히 기구의 존속 여부가 아니다. 필요한 건, 상설조직이 아니라 다정한 정부기구다. 피해자를 다시 불러내는 기계적 절차가 아니라, 그들을 존엄하게 초대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조사란 이름의 시스템이 고통을 반복시키는 장치가 아니라, 회복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조사관은 청문인이 아니라 동행자여야 하고, 조사는 고백이 아니라 연대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간 다양한 방식을 시도해왔다. 단체진술, 개별심층면담, 심리전문가의 개입까지. 그러나 아직도 이것이 '정답'이라 말하긴 어렵다. 우리가 찾아야 할 건 정답이라기보다 함께 질문하는 방식이다. 피해자, 실무자, 전문가가 손을 맞잡고, 더 나은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정답은 완성이 아니라 과정이다.

이제 우리는 피해자의 말을 듣는 것을 넘어서, 국가의 말하기를 요구해야 한다. 침묵은 언제나 가해자의 언어였다.

*필자인 김진희는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수용시설 인권침해를 담당했던 조사관이며 현재 선감학원피해자협의회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조사 과정을 피해자의 회복 과정으로 다시 설계했을 때, 그들의 얼굴에 번졌던 미소는 말보다 먼저 회복을 증명했다. 그것은 꽃보다 환했고, 오래 억눌렸던 삶의 빛이 처음으로 얼굴 위에 떠오른 순간이었다.
조사 과정을 피해자의 회복 과정으로 다시 설계했을 때, 그들의 얼굴에 번졌던 미소는 말보다 먼저 회복을 증명했다. 그것은 꽃보다 환했고, 오래 억눌렸던 삶의 빛이 처음으로 얼굴 위에 떠오른 순간이었다. 김진희
 피해자를 ‘적극 민원인’이 아니라,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 존중받아야 할 사회의 어른으로 대했을 때, 그들은 스스로의 상처를 돌보고 더 멀리 나아갔다.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생존자들은 진실규명 이후 한글교육을 받으며 이름 석 자를 또렷이 써내려갔고, 트라우마 센터의 상담을 통해 고통에 이름을 붙였으며, 선감인권상을 제정하고 정기 학술대회를 여는 등 이제는 스스로를 치유하고 사회에 목소리를 건네는 ‘존엄한 주체’로 서고 있다.
피해자를 ‘적극 민원인’이 아니라,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 존중받아야 할 사회의 어른으로 대했을 때, 그들은 스스로의 상처를 돌보고 더 멀리 나아갔다.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생존자들은 진실규명 이후 한글교육을 받으며 이름 석 자를 또렷이 써내려갔고, 트라우마 센터의 상담을 통해 고통에 이름을 붙였으며, 선감인권상을 제정하고 정기 학술대회를 여는 등 이제는 스스로를 치유하고 사회에 목소리를 건네는 ‘존엄한 주체’로 서고 있다. 김진희
#수용시설 #인권침해 #피해자조사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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